상담을 받기 위한 센터로 가는 여정은 꽤나 귀찮았다.
버스를 한번 타고 내려서 약 10분을 걸은 뒤 환승을 해야 했다.
처음 센터로 가는 길을 걷다가 문득 든 생각,
'내가 주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주식을 도박처럼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헛되이 소모되는 것들을 생산적으로 쓸 수 있었겠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돈 낭비, 감정 낭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낭비.
센터로 이동하는 시간,
일을 마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동하는 에너지,
교통비,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감정,
이 모든 것이 내겐 낭비로 느껴진 것이었다.
또 버스 안에서는 역대 기록을 해치우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내 마르지 않는 등의 감촉을 느끼면서 '땀샘이 눈물샘이 되었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울보 같던 요 며칠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생각도 아니었다.
그렇게 도착한 센터는 내 마음과 대비되는 평온함 그 자체였다. 찬물로 종이컵을 가득 채우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마치 체증을 가시게 하려는 무의식처럼. ‘내가 이렇게 세게 삼킬 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물을 마셨다.
이윽고, 내 이름이 불려 상담실로 들어가 현재의 상태를 판단하는 진단검사를 했다. 그 뒤에 한 장의 종이를 받았는데 '효과사정척도'로 자신의 심리를 스스로 평가하는 문항이 있었다. 개인 생활, 대인관계 생활, 사회 생활, 전반적 행복감을 0에서 10 중에 체크하고 아래는 도박 욕구와 일주일 동안의 도박을 한 횟수, 도박에 사용한 액수의 내용을 적는 것이었다. 볼펜을 잡고 정제되지 않은 내 마음을 느끼며 고뇌를 하던 중, 상담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모두 1~2에 체크했던 거 같다. 이후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고, 난 지난 5년 간의 내 침몰 과정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처음 주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 대출을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시점, 이후 투자 스타일의 변화, 삶의 비중에서 주식이 비집고 들어오는 힘, 내 자산, 내 심정 등.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에게 어느 날 말하는 능력이 생겨 말 하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그런 장면이었다.
"선생님, 제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요. 저는 원래 굉장히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데요. 빚을 다 갚는다 해도 다시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 분은 내가 원하는 답을 해줄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상담사란 본래 그런 역할을 하지 않던가.
"당연히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갈 수 없죠."
잔잔함을 찾아가려던 내 마음의 호수에 메테오 수 천개가 빗발쳤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시겠죠. 겸손해지시고, 지금껏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실 겁니다."
신체는 배설 활동을 하는 기관이 있지만, 마음은 그런 기관이 없다. 아니 마음에 배설 기관이 있었더라도 난 복잡한 심정을 표출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쉽게 배설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나에게 이 60분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속이 시원한 시간이었다. 성찰을 좋아하는 나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상담사 분의 대답은 형용할 수 없는 용기를 뜨겁게 잉태했다.
물이 끓기 전 바닥에 기포가 맺히는 것 같이, 내 마음의 기포 몇 개가 생긴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원했던대로 별안간 듣기 좋은 편안한 대답을 들었다면?
아, 벌써 미적지근하다.
언젠가 물이 팔팔 끓어, 기포는 물밖으로 터져나갈 것이다.
언젠가 내 마음도 그렇게, 완전히 증발해 자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