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게는 국민에게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교육을 공교육, 사교육으로 분리하여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없다. 사교육을 놓고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필요악’으로 몰아붙이기에는 공교육의 미미한 존재감이 부끄러워진다. 시대적 변화에도, 정부의 교육개혁에도 가공할 정교함과 빠른 속도로 대안을 찾아 제시하는 곳은 사교육 시장이다. 수십 년을 급한 대로 땜질하며 누덕누덕 기워 나간 흔적들만 빼곡한 공교육 입장에서 싸워볼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 골리앗이 되어버렸다. 전체를 갈아엎기 전에는 변화를 기대 못할 공교육 시스템이다.
아이들 교육의 무게가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치우치면서 미취학 연령부터 시작되는 속도 경쟁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시작해서 가장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지만, 투자한 시간, 비용, 노력에 비해 결과가 가장 만족스럽지 못한 교육을 뽑아보라면 단연코 ‘영어’라 할 수 있다. 취학 전부터 시작해 20년 이상을 영어와 씨름하지만, 투자 대비 실질적인 영어 활용 능력 향상은 미미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참혹한 결과의 근본적인 원인은 명확하다. 소통과 사고의 도구인 영어를 ‘언어’로 생각하지 않고, 국영수사과로 묶어, 오직 시험과 평가를 통해 줄 세우는, 하나의 ‘교과목’으로 취급하는 현행 교육 시스템이 주범이다. 이제 수십 년간 지속된 이 잘못된 프레임에서 영어를 놓아주고, 실질적인 언어 습득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할 때이다.
영어를 하나의 교과목으로 취급하는 이상, 앞으로 어떤 정책 변화를 만들어내도 참혹한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공교육을 믿지 못해 사교육에 매달린다 해도 투자 대비 가장 효율이 적을 것 또한 자명하다. 이제 영어를 '학교 교과목'에서 놓아주자. 그것이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최선이며, 영어교육이 실질적인 아이들의 영어실력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럴 때가 되었고, 그래도 좋은 세상이 지금이다.
'과도한 선행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영양가 없는 외침을 비웃듯, 사교육 1번지에서 불문율로 통하는 말이 '유유익선(幼幼益善)'이라 한다. 선행학습을 시작하는 시기는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는 의미다. 그 선두주자가 국어도 수학도 과학도 아닌 ‘영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취학 전에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영어는 우선순위가 되어 서둘러 온갖 정성을 쏟아붓고 있다. 천정부지 높아지는 영어유치원 교육비부터 기어 다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백만 원 영어원서 교구세트들까지, 영어교육에 관심 있는 많은 부모들이 기꺼이 치르고 있는 비용이다. 그런데 초등입학과 동시에 학교교육만 따져서 16년 동안 따로 노는 영어수업은 그 정성을 배신하고도 남는다.
취학 전에 온갖 정성과 비용을 쏟아부은 영어였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교과과정으로 연계가 매끄럽지 않다. 초등학교 3학년에 시작해서 학교 교과목으로 4년 동안 진행되는 초등영어수업은 어떤 모습일까? 단어를 스펠까지 시험으로 확인하고, 간단한 기초회화 문장 몇 개를 반복에 반복을 하면서 암기시킨다. 교육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이런 방법으로 영어 ‘습득’에 있어,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될 최적기인 초등 6년을 참으로 어이없게 흘려보내고 있다.
내신과 수능에만 철저히 맞추어 공부해야 하는 중고등학교 영어 6년은 어떠한가? 수능은 물론이고 내신 또한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무시 못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학교 교과과정에 달리 딴지 걸 이유 찾지 말고, 무작정 따라야 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초등학교까지는 그나마 학교수업과는 무관하게 실질적인 영어실력을 위한 시간, 비용 투자가 가능했지만, 이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수시로 전 뒤집듯 바뀌는 정부정책이나, 그것을 먹이 삼아 성장하는 사교육시장이 끌면 끄는 대로 끌려가야 하고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휘둘려야 한다. 시험성적을 위한 영어, 그것 말고는 보이지 않아 기대조차 없는 6년이니까.
대학에 가면 상황이 나아질까?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는 원서 수업을 비롯해 보고서 작성, 발표 등에 영어를 제대로 써먹어야 하는 대학영어 4년일 텐데, 초중고 어설픈 12년이었다면 전공공부 2~3배에 달하는 시간을 다시 영어공부에 투자해야 한다. 그것뿐인가. 토익, 토플, 기타 등등 입사지원 자격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취업영어 무한년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런 노력으로 영어 공인인증시험에서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아도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 이유가 이제 궁금하지도 않다. 영어를 그저 공부해야 하는 하나의 교과목으로 보고 내달린 결과다. 오랜 시간과 노력, 엄청난 비용 투자를 하고도 영어교육이 효과가 없는 이유는 이렇듯 때마다 전부 따로 놀기 때문이다.
영어는 더 이상 공부해서 평가받아야 할 '학교 교과목'의 하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워야 하는 것에 영어는 빠져도 좋은 세상이다. 학교영어 교과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평가, 시험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실용만점 영어 실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고, 경험으로 확인했으며, 10년간 설득했고 공감한 이웃 아이들이 같은 경험을 하며 영어 성장을 확인하고 있다.
설마, 학교시험이 없으면 아이들이 영어를 못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가? ‘어떤 시스템이라도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들은 안 한다"는 말을 빌리지 않아도, 그런 사고에서 멈춘 친구들이라면 시험으로 평가를 해도 영어점수는 높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점수만 높았지 실제 영어실력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예전 우리 세대처럼 영어를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 교과목이기에 불가피한, 수없이 반복되는 평가, 시험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우리말에 갇혀 있는 자신의 한계, 그 벽을 허물고 평생 지식습득과 사고확장의 ‘도구’로 영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훨씬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그것이 가능한 근사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토록 근사한 세상이기에, 정부에서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차이나 차별 없이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여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영어습득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학교 교과목 수업시수로 영어 습득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난이도를 높여 시험을 출제한다 해도 그 결과로 실질적인 영어실력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수십 년 변하지도 않고 영어가 '중요 교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영어는 언어이다. 교육의 목적을 ‘습득’에 두어야 한다. 습득은 가르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영어는 깊이 배우고 연구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다. 소통의 수단으로 도구가 되어주는 언어이다. 영어를 학문으로 생각하고 공부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대부분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 그걸 인정한다고 정부를 원망할 학부모는 없다. 원망의 대상은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고 구시대를 답습하게 만드는 '교과목 영어 교육과정의 강제수용'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익혀야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 방법에 맞게 영어 시작부터 영어 습득 완성에 이를 때까지, 노력하는 친구들이 지속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자. 그러한 시스템에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이상 모든 아이들에게 '보편적인 접근'을 보장해 주자. 학교와 가정이 서로 도와 4~5년만 정성 들여 아이들의 걸음을 관찰하고, 수정하고, 보완해 준다면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많은 아이들은 가장 편하고 '옳은 방법'으로 모국어에 가까운 영어 실력을 가질 수 있다.
취학전이나 초등저학년들을 대상으로 '잠깐의 흥미'를 위한 시스템이어서는 안 된다. 생각나면 들러서 흥미에 따라 이것저것 '경험해 보라' 하고, 관리자는 구경꾼이 되는 그런 시스템도 안 된다. 이미 그런 시스템은 존재하고 있으며, 수많은 세금을 들여 만들어놓은 그런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방법이 없었던 예전의 최선이, 지금도 최선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 말로는 기회의 평등을 외치면서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분명한 방법이 있는데 알고도 못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노력에 의해 닿을 수 있는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책임져 달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노력하면 원하는 만큼의 성장을 얻을 수 있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평등한 시스템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국민에게 교육받을 의무가 있다면
국가에게는 국민에게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