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 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나 봐요"라는 한탄 섞인 하소연에 익숙하다. 재능과 노력, 뭣이 중헌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재능 vs 노력'은 영원한 숙제와 같다. 이 고민에 때때로 기름을 들이붓는 학자들이 있다.
2008년 발표된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저서 《아웃라이어, Outliers: The Story of Success》에 등장한 "1만 시간의 법칙"은 현대 대중 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 아웃라이어(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서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표본, 즉 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은 사람)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선천적인 재능보다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만 시간’은 위대함을 낳는 매직 넘버로 퍼져 나갔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이다.
이 ‘1만 시간’은 1993년 미국의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글래드웰이 자신의 저서에서 에릭슨의 연구를 인용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런데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에릭슨과 '대중적 확산'을 일으킨 글래드웰 사이에는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에릭슨은 글래드웰이 자신의 연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오해했다고 비판하며, 2016년 《1만 시간의 재발견; 노력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가, Peak: Secrets from the New Science of Expertise》를 출간해 바로잡고자 했다.
두 사람의 논쟁 중간 즈음인 2014년에 1만 시간의 법칙에 반하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등장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잭 햄브릭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에서 ‘노력이 실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이론이 나왔다. 햄브릭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음악, 스포츠, 체스 등의 분야는 실력의 차이에서 차지하는 노력 시간의 비중이 20~25%이며, 학술 분야에서는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이 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력으로 설명되는 부분은 평균적으로 20% 내외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노력 이외의 다른 요인(유전, 지능, 시작 연령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햄브릭 교수의 연구 결과에 많이 놀랐고 쉽게 동의되지 않았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에, 특히 학술 분야 4%는 충격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그토록 바라는 ‘공부를 잘하는 것’에 ‘노력’ 이라는 변수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선척적으로 공부 재능을 물려줄만한 4% 부모가 아니었으니까.
아이와 비슷한 주제로 꽤 깊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유학 첫해인 2013년, 본격적으로 현지 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 교수님께서 생각을 키워가는 일반적인 교육과정과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나라 교육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하신 말씀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노력보다는 재능을 우선시한다’는 말이 아이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단다.
아주 어려서부터 어떤 재능이 있는지 다각도로 체험해 보게 하고, 심지어 재능으로 길러주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 투자도 서슴지 않는 동양과는 달리, 그곳의 부모들은 그저 아이의 재능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학교에서도 아이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억지로 유도하거나 함께 하려 하지 않고 인정하고 만다 하니, 나같이 뼛속까지 그들이 말하는 동양 사상이 뿌리 박힌 엄마는 혹시 선생님이 내 아이를 무시하는 거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겠더라.
아이가 충격이 컸던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이 지나온 모든 과정은 노력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엄마도 아빠도 '타고난 재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노력 밖에는 없다'고 강조했었고, 스스로도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얻은 결과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문화적 차이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뭔가 뒤통수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당시 기준) 50년을 동양 사상으로 뿌리 박힌 엄마는 이렇게 말해줬다.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엄마는 노력 없는 재능은 꽃피우기 어렵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네가 지금까지 자라온 과정을 돌이켜 보면 노력이 90% 맞다. 하지만 노력했지만 안 되는 것도 분명 있었다. 그런 면에서 네가 노력해서 만족할 만한 성과나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은 작게라도 잠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학습적인 것 이외의 것을 생각해 보면, 넌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 8년 동안 매일 피아노를 연습했다. 같은 선생님과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중간에 다양한 이유로 전부 그만두었지만, 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4년쯤 지났을 때,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니다'라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씀을 인정하고도 꾸준하게 애써줬잖아. 덕분에 지금은 피아노와 기타 연주를 즐길 줄 알게 되었고, 때로 힘들고 지칠 때 그것들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유전적으로 또는 타고난 재능이 크지 않았기에 전문 음악인은 꿈꿀 수 없었을지라도, 노력이 뒷받침되면 원하는 목표에 닿을 수 있는 정도의 재능은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또 한 가지 예로 들자면 넌 몇 가지 운동을 시도해 봤지만 모두 흥미도 도전의식도 꾸준함도 힘들어서 흐지부지되었다. 어쩌면 천부적으로 몸으로 하는 운동에는 재능이 '너무너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도 축구를 많이 좋아하지만 직접 하는 것에 별 재능이 있어 보이지 않잖아."
아이가 피식 웃었다. 엄마 말에 동의한다는 아이만의 의사 표현 중 하나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 없이 순수 노력파'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구나 위로가 되었던 것인지, 그건 확인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엄마는 노력과 재능을 이분법으로 나누면 안 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천부적으로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주어진 환경이 그 재능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조차도 힘들 정도로 어렵다면, 그 재능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때를 놓치고 사장될 수도 있을 거야. 또 타고난 재능이 전문가를 꿈꿀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이 아주 작은 경우라 해도 노력에 의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다만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과 노력의 합이 잘 맞아주었을 때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엄마가 볼 때 너는 엄청난 재능 하나는 타고났다고 생각해.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에 꾸준하고 성실한 것! 재능 치고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찌 보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재능이 아닐까? 그리고 또 재능이 없다는 것을 노력으로 극복하고 있다면, 그만큼의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테니, 그렇게 노력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 '노력'은 '재능'이 아닐까?"
당시 새벽까지 아이와 긴 시간 이야기 나누며, 나름 위로와 용기를 주겠다는 마음으로 우리만의 결론 비슷한 걸 내린 뒤, 아이와의 대화를 정리해서 기록해 놓았었다. 때때로 그 기록을 읽어볼 때가 있는데 여전히 나는 혼란스럽다.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과 노력, 무엇이 아이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까? 과연 문화의 차이와 교육 방법에 따라 그 우선순위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일까?
아이와 이야기 나눈 그때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나는 ‘노력’에 손들고 싶다. 하지만 재능과 노력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세 학자의 주장을 종합해 보니, 조금은 수긍이 가는 대안이 나오더라. 햄브릭의 관점에서 아이가 가진 재능의 씨앗이 무엇인지 먼저 관찰하고, 글래드웰의 관점에서 그 씨앗이 싹틀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고, 에릭슨의 관점에서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으니 "그냥 열심히 해"라고 말하는 대신, 아이가 자신의 부족함을 객관적으로 직면하고 이를 극복할 구체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른 교육을 위한 최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