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이렇게 하다가 아이가 나중에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요?”
해야 하는 것을 놓고, 해야 하는 만큼 해야 하는 것이 본인의 예상을 넘어설 때 나오는 어머님들 질문이다. 여기서 '이렇게'는 아이와 타협이 쉽지 않은, 남들보다 더 애써야 하는 만큼일 것이다.
부모님들에게 몇몇 환상이 있다. 그중 하나가 '좋아해야 잘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영어, 수학, 피아노, 책 읽기 등등 아이의 성장을 바라는 영역마다 아이가 그것을 ‘좋아하길’ 바란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잘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좋아해야 잘하게 되는 것도 있고, 잘하게 되면서 좋아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무엇을 잘하기 위한 출발선에서, 단지 잠깐의 동기 부여에 영향을 줄 뿐이다. 영어도, 수학도, 피아노도, 독서도, 그리고 그 무엇도 잘할 수 있기 위한 필수 조건은 잠깐의 동기부여가 아니라 지속적인 '꾸준함’이다.
나는 부모님들과 영어교육에 대해 소통하는 사람이니 ‘영어’를 두고 말해보자. 부모님들이 영어교육을 놓고 고민하는 것이 영어를 좋아하게 만드는 묘책을 찾는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들이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은 ‘좋아한다’가 아니라 ‘잘한다’가 아니던가. 그런데 흔히들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놈의 영어를 '정말 잘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 동안 남들보다 더한 애씀이 필요하다. 그 무엇도 좋아한다고 해서 '저절로' 잘하게 될 리 없으니까. 남들만큼 해서 잘하게 될 영어였으면 처음부터 고민하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어머님들께 자주 하는 질문도 있다. 아이의 영어 교육에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 영어를 좋아하는 아이가 목표인가? 아니면, 영어를 잘하는 아이가 목표인가?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언제까지 부모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나? 아이에게 영어가, 좋아하지 않으면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도 좋은 영역인가?
“이렇게 하다가 아이가 나중에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요?”
무엇을 시도함에 있어서 이 걱정이 떨쳐지지 않는다면, 나만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를 마음껏 보호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것, 피아노를 잘 치는 것, 영어를 잘하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 모든 것을 잘하지 못해도 지장 없는 삶이 많으니까.
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 영어를 시작했다. 집에서. 당시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취학 전까지 영어노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하면서 ‘영어가 싫어지면 어쩌나’ 그런 고민을 한 적 없었다. 아이에게 영어라는 것이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영어 습득을 위한 싸움은 장기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가 싫어질 수도 있는 영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아이가 '해야 하는 것'에 꾸준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르고, 옳은 길에 대해 고민했다. 단순한 '교과목'이 아니라 소통의 도구인 '언어'가 되어야 하는 영어인데, 기존 방법으로 하라는 대로 했다 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과는 '실패'일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정도’라고 정해 놓은 길에서 벗어났던 거다.
단 한 번도 아이에게 영어가 좋은지/싫은지 묻지 않았다. 순간적인 감정에도 솔직한 아이에게 굳이 선명함으로 '선 긋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좋아하지 않아서 하기 싫다’라는 핑계가, 해야 하는 일을 피하는 아이의 면피 문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이가 좋아하는지 아니면 싫어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아이 눈치를 살핀 적도 없었다. 매일의 실천을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방법을 이해시키며 설득하고, 해야 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에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던 것은, 영어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이가 영어를 잘할 수 있기 위해 견뎌야 하는 꾸준함을 위해서였다.
모진 엄마였을까? 모질다면 모질었을 8년의 꾸준함으로 사교육 경험 없이, 아이에게 영어는 모국어만큼 편한 ‘삶의 도구’가 되었다. 20대 후반에 들어선 아이가 영어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단지 영어를 ‘잘’ 하는 것이 꽤 큰 득이라는 것을 때때로 직접 경험하고 있다. 힘들었지만 꾸준했던 어느 시기의 자신을 칭찬하며.
아이를 교육하며 부모의 시선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혹은 ‘좋아해서’라는 전제로 아이의 가능성에 ‘선 긋기’를 하지 말자. 좋아하지 않아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자. ‘잘한다’는 목표를 향해 옳은 길에서 매일 꾸준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영어도, 피아노도, 책 읽기도 아이가 좋아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있다. 부모님들은 유독 ‘수학’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잘하기를 바란다. 정말이지 좋아해야 잘할 수 있는 것이 수학일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