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

책의 재미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취의 영역이다.

by 등대지기 지니



많은 이들이 곁에 두고 싶어 하고, 또 곁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결코 누구에게나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것, 그것이 '책'이다. 영유아기부터 초·중·고, 성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을 소장하고, 수많은 책을 읽지만 '책 읽기'가 진심으로 평생의 즐거움이 되는 사람은 드물다.


독서, 운동, 도박, 게임, 유튜브, SNS 등 세상의 수많은 재미 중에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이로운 재미가 있고 해로운 재미도 있다. 흥미롭게도, 해로운 재미일수록 처음부터 재미있거나 재미를 느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 처음부터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여러 재미들과 달리, ‘책 읽기가 언제나 재미있다’는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고독한 여정이 필요하다. 의무 같기도, 공부 같기도 한 그런 시간을 꽤 오래 견뎌야 할 수도 있다. 견뎠는데도 재미까지 못 갈 수도 있고.


'책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책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들은 처음부터 책이 재미있었을까?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런 이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그들이 책에서 그와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읽어왔을 책의 권수는 상상불가다. 읽어왔을 책의 분야 또한 예측 불가다. 그렇게 책과 함께한 시간 누적 또한 계산 불가였다.


일단 어느 단계까지 올라가면 책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평양냉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슴슴한(심심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이들이 평양냉면의 진짜 맛을 느끼기까지 먹어 치운 양이 어마어마했을 거라는 거다. 슴슴한 책의 깊은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을 소화하는 시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책의 재미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읽기 양과 시간의 누적이 있어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성취의 영역이다.




일부 부모님들은 아이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하는 것도 많아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독서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틈틈이 보는 것이 책이라고 아이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현재의 세상은 일상 틈틈을 채워줄, 책 보다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아이들이 그 틈틈이에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책 보다 다른 것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의 재미는 틈틈이로 감당할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일부 부모님들은 자신이 '아이의 독서 취향을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취향이라는 것은 아이가 지금까지 했던, 아주아주 짧고 좁은 경험 속에서 결정된 것이다. 아이의 독서 지도를 계획할 때 취향이 무색할 정도로 재미있는 책을 만날 확률을 높이는 노력이 좋을까, 아니면 취향에 매몰된 편중 독서를 응원하는 것이 좋을까? 이 질문에 대부분이 전자를 답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전자로 답을 했으면서 흥미 유지를 위한 '타협'이라며, 아이의 편중 독서를 부추기는 엄마의 책 추천(혹은 용인) 또한 적지 않다.


편중 독서가 필요할 때가 있긴 하다. 어느 한 분야에 깊어져야 하는 시기다. 그러한 ‘깊이’에 이미 다다른 이들은 깊어지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넓이'를 꼽는다. 세상을 넓게 바라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하는 것이라 한다. 취향에 매몰되지 않고 넓고 다양하게 경험할 기회를 높이는 것이 장기적인 독서의 재미를 발견하는 열쇠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부모 세대는 지금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무료했던 환경에서 살면서도 책의 재미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경험해 봤다. 그런데도 틈틈이를 가득 채워줄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지금 세상에 내 아이가 '그렇게 되기까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집안 가득 책이 넘쳐나니까, 엄마는 틈나는 대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으니까, 아이는 당연히 책을 좋아할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지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버리는 이유를 또다시 세상 탓으로 돌린다.




어려서부터 1인 1 스마트폰이 익숙한 지금의 아이들이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머릿속 생각이 가슴에 닿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최근 몇 년의 기술 발달로 더 이상 손가락도 필요 없어졌다. 말만 하면 원하는 것을 대령하는 AI 비서가 있으니까. 그렇게 궁금함을 마음에 품기도 전에, 상상이 끼어들 틈도 없이 즉각적인 만족으로 확인되는데, 기승전결의 흐름을 따라가 서사에 감동하며 책의 재미를 켜켜이 쌓아가는 경험을 아이들에게 쉽게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세상이니 어쩔 수 없다'고, 세상 탓 하면서 핑계 뒤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는 내 아이를 '교육'하고 있는 부모인데. 먼저, 책의 재미는 꿀잼 게임이나 영상처럼 처음부터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 필요량'을 채우는 능동적인 성취의 영역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 아이가 혹여 책 읽기를 재미있어하지 않고, 그저 의무감이나 공부처럼 느끼고 있다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책을 읽는 그 시간은 책의 참된 재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절대 필요량'을 채우는 소중한 견딤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언젠가 "책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발판이 될 것이다.


아이의 손에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스마트폰 대신, 평생 지속될 지적 만족을 선물하는 책을 쥐여주는 그 끈기 있는 여정, 부모로서 우리는 마땅히 그 길을 아이와 함께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부모)는 왜? 해주지 못하면 죄책감마저 든다는 '책육아'를 시작으로, 초·중·고 내내 아이의 독서력(누군가는 권수)에 긴장하며, 아이의 '책 읽기'에 몸도 마음도 끌려다니는 걸까? 그냥 '책 많이 읽은 아이'가 목표는 아닐 텐데.. 다음 글에서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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