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vs. 행복하다
결혼을 하고 엄마로 준비됨이 부족했는지, 허락되지 않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내 아이'였다. 1998년 7월, 마취에서 깨어나 온전히 정신이 들었을 때 병실 TV는 월드컵 축구 소식으로 떠들썩했고 창밖은 후드득 굵은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출산 수술 후유증으로 호흡이 많이 불편해서, 휠체어 타고 간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처음 아이를 만난 순간, 햇수로 10년을 기다리게 한 괘씸함(?)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펑펑 울어버렸다.
남편과 단 둘이 사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가진 것에 대한 부족함, 미래에 대한 불안함, 내 것에 대한 욕심, 그런 거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자식'이란 존재를 세상에 내어놓고는 욕심이 많아졌다. 늘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해 보이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세상의 모든 욕심과 지어야 하는 죄의 근원은 아마도 내 새끼를 세상에 낳아 놓았기 때문 아닌지” 잠든 아이의 천사 같은 얼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아이에게 부모는 주어진 존재이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쌍방이 선택했으니 쌍방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부관계와 다르다. 일방적인 선택이었기에 부모는 자식에게 무한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식이 부모 인생의 종합성적표라 생각하거나 부모가 남기고 가야 할 일생일대의 작품으로 보아서도 안될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삶에 깊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정말 짧다. 관계가 나쁜 부모 자식 간에는 더 짧겠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그리 길지 않다. 부모가 자신의 삶이 복잡하고 분주하다 해서 '그 짧은 시간'을 가볍게 대한다면 긴 시간 후회를 안고 안타까움으로 아이를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아이의 힘든 하루의 무게를 위로하느라 ‘지금처럼 살면 언젠가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언젠가는’이라는 그 시간이 5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 아니면 결국 찾지 못하고 말지 알 수 없다. 행복을 상징하는 파랑새나 무지개는 억지로 찾으려 해서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저 멀리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해도 쫓아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우리는 늘 행복이란 놈을 어딘가에서 '애써' 찾아야 할 그 무엇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눈앞의 ‘행복’인 세 잎 클로버를 짓밟으며 미래 ‘행운’을 위해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중 언젠가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참고 희생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랜 시간 행복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 살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 다수는, 행복하지 않은 오랜 시간 어디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행복은 참고 기다리거나 애써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며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는 삶에서 깨닫는 것, 느껴지는 것, 그 순간순간의 충만감이라 말하면 너무 소박한 걸까? 그런 '소박함'을 행복의 정의로 인정한다면, 눈을 돌리면 보이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이에 내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의 순간순간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말이 되어 나오면 그 의미가 변질될 것 같아서,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함에 있어서 가끔은 그 사랑에 아이가 감당하기 너무 큰 '기대'를 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아이가 ‘사랑한다’는 말속에 감춰진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러워지는 날이 오면, 온전하지 않은 사랑에 상처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자주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이의 스무 번째 생일을 앞두고 아이의 성장 이야기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출간되고 받아본 첫 책에 처음으로 그 고백을 글로 남겼다.
“게으르고 틈 많은 엄마 밑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잘 견뎌준 아들 고맙다!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 많이 행복했어. 물론 지금도~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기에 너로 인해 '진짜 엄마'로 성장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기억이 별로 없지만 '널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할 수 있어서 엄마로서 더할 나위 없었다.
앞으로 엄마 아빠가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날들이 점점 많아지겠지. 먼 후일 그것이 '영원'이 된다 해도 너의 기억 속에 '엄마 아빠는 많이 행복한 부모였다' 이렇게 남길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덕분에 '오늘'도 행복한 엄마가.”
이 글을 쓰고 8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떤지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본다. "지금도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한가?" 감사하게도 그 대답은 'YES!' 아이는 다시 새로운 길을 만나 걸으면서 나아가고 있으니까.
드라마 <미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