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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자 Oct 24. 2021

[그림책 여행지 12]
내가 여기에 있어

숨은 그림과 내용의 연결

글그림 아드리앵 파를랑주

웅진 주니어

2020


안녕하세요! 그림책 여행 가이드 해방자입니다. 

한 주동안 잘 지셨나요? 춥지만 청명한 하늘이 아름다운 오늘, 소소한 디테일로부터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의 여행지는 2020년 볼로냐 라가치상 스페셜 멘션 수상작 <내가 여기에 있어>입니다. 지난주 <도서관>에서는 그림 속의 디테일을 통해서 캐릭터의 특성을 읽어 냈다면, 이번에는 그림 속 디테일로 이야기를 엮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표지를 가로지르는 하얀색 띠 모양의 아주 인상적입니다. 글을 오른쪽 상단에서부터 왼쪽 하단으로 읽어가는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 긴 띠의 뾰족한 끝에 시선을 두고 구불구불한 선 위, 뭉뚝한 끝까지 따라갈 터입니다. 그리고 머리에 이르러서 이 것이 뱀이구나를 알 수 있겠지요. 정 중앙에 위치한 '내가 여기에 있어'라는 제목은 하단이 선으로 이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흰색과 갈색으로 채색되어 있어, 뱀의 형태 사이사이에 갈색으로 그려진 새와 별과 달과 통일감을 줍니다. 일반적으로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로서 새를 사냥하는 뱀이 이 표지에서는 그들을 몸에 품고 보호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흰 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표지에서 꼬리를 먼저 찾아낸 것처럼 책은 소년과 뱀의 꼬리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뱀이 소년을 톡톡 침으로서 둘의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이 책은 특이하게도 글과 그림이 분절된 공간에 배치되어 있고, 흰 뱀이 그 위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글은 뱀이 아닌 소년의 시야와 행동을 묘사하고, 그림은 곡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새하얀 뱀의 몸통을 묘사합니다. 이는 긴 파노라마 형태의 판형과 어우러져 여러 요소를 걸쳐 있는 뱀의 몸이 의미 없이 배치된 게 아닌 잔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첫 장부터 끝장까지 틀을 넘어 연결된 뱀의 몸통은 그림 한 장 한 장를 단편적이기보단 연속된 상황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단순한 드로잉에 텍스쳐가 입혀진 그림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연상시키며 그림의 맛을 끌어올렸습니다. 번역된 우리나라 책에는 글자가 디지털 타이핑으로 올려져 있지만, 원서에서는 그림과 같이 텍스쳐가 입혀져 있지 않을까 궁금하게 하기도 합니다.


소년과 뱀이 만나고, 뱀의 몸처럼 구불거리는 글자로 표현된 이 페이지는 책의 클라이맥스입니다. 글은 소년이 뱀에게 찾아오면서 보았던 것들을 다루며 시각적으로 책 전반에 걸쳐 있던 뱀의 형태와 연결됩니다. 글이 만드는 곡선을 따라 읽으며 저 또한 그림에서 미쳐 읽어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앞의 페이지와 이 장을 오가면서 작가가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 이야기를 찾고, 그 외에 다른 내용도 있지 않을까 그림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소년은 뱀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주고 작은 동물들을 보호해주는 선의이자 인연이라고 합니다. 


뱀과 소년은 그들만의 소통방식을 약속하며 친구가 되고, 뱀의 모습은 그림의 칸 안에 온전히 들어가는 모습으로 변합니다. 면지에서 보이는 X자의 모양은 뱀과 나누기로 한 "내가 여기에 있어"라는 둘만의 신호이지요. 면지와 내용 모두 시각적으로 촘촘히 얽혀, 세상에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소소한 것들로 타인과 나,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긴 판형, 글,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읽은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준 아름다운 그림책 <내가 여기에 있어>로의 여행은 어떠셨나요? 항상 곁에 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의 작은 인연으로서 다음 주 일요일 여기서 다시 뵙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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