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났다. 이 감정은 뭘까?
후련함일까 서운함일까 성취감일까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다. 좋은 평가도 받고, 좋은 얘기도 듣고, 공연도 무사히 끝났다.
여러 예측되는 돌발 상황이 있었지만 막상 공연 때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했다.
많은 사람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항상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해야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 예술을, 내 공연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납득시켜야 되는 일이었다.
시끄럽다고 창문을 열고 화내며 소리치는 사람을 만나고
민원이 들어왔다고 경찰 분들이 오기도 했다.
경찰 수첩에 이름과 연락처와 개인 신상이 적히는 경험도 했다. (물론 민원 들어오면 나한테 연락 주겠다고, 허가 받았다는 증명을 가지고 있으라고 좋게 말씀해주셨다.)
나는 180%를 해냈다.
너무 버거워서 그만두고 싶은 경험을 2번 했고, 너무 힘들다가 힘듦이 끝까지 올라와서 그냥 웃음이 나오는 경험은 3번 했다.
근데 그 힘듦의 순간들이 내가 성장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니니까.
그래서 너무 외로웠다. 각자의 힘듦을 내어놓고 이야기하는데 자꾸만 내가 잘못한 것만 더욱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180프로를 노력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과정적으로, 무언가 부족함은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다가 사람들은 긍정적인 것 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욱 생각하고 마음이 끌리게 되어있기 때문에 나를 위한 피드백으로, 내가 다음번엔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나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너무 필요했다.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처음인데 그정도면 대단하다고.
왜냐면 나도 내 자신을 자꾸만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스스로 힘들어하는 중이었어서.
사람들이 나를 좀 알아주길 바랐다. 나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면을 말하고 싶고, 말했다.
내가 내려가도 그들을 올려주고 싶었다. 근데 사실은 내가 그정도로 좋은 사람은 되지 못해서, 내가 이렇게 하면 누군가는 이 마음을 알아주겠지, 누군가는 내가 자신들에게 하는 것 처럼 나를 올려주겠지.
내가 힘든걸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근데 사실 긍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들었다. 그걸 받지 않고 부정적 피드백만을 되새기며 생각해보는건
내가 선택한 것이다.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사람일까?
내 공연은 어땠을까. 내가 원하는 걸 잘 전달했을까?
과정을 더 사랑하고 싶은데. 과정에서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게 되는 과정이 슬프다.
그리고 사실 그러면서 내 상처는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다.
연출이면 그래야해. 너가 선택한거야. 이걸 드러내는건 너가 능력이 없다는 걸 보이고 있는 거야.
내가 내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아서 오히려 누군가에게 더 상처를 줬던 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다 자신의 결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그 건강하지 않은 창으로 사람들을,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잘 회복하고 싶다.
내가 겪은 이 과정이, 간장종지 같은 내 마음을 밥그릇 정도로 만드는 과정이,
나에게 앞으로 어떠한 성장을 가져와줄지 기대하고 설레어하면서 받아들이고 싶다.
넓어져서 사람들한테 더 베풀고 더 줘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