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하러 집을 나서자 느껴지는 여름 밤의 공기가 좋았다. 요 며칠 장마여서 계속 비가 오고 밤에도 습했었는데 오늘은 습한 기색도 없이 선선한 바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나오고 싶을 때 내 두 발로 걸어 나와서, 내 두 눈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보고, 내 온몸의 촉감으로 이 모든 바람과 빛을 느낄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큰 축복이구나.
그저 달리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나와서 이어폰도 두고 나왔는데, 슬쩍 웃음이 났다. 평소 같았으면 이어폰을 안챙겼다는 사실이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오늘은 왠지 이어폰을 까먹고 나왔다는게 더 좋았다.
풀벌레 소리, 귀뚜라미 소리, 여러 초록초록한 소리들이 들렸다. 서울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내가 안듣고 있었던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두 발로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
참 좋다. 이렇게 내 몸의 감각을 느끼고, 주변의 감각도 느끼고, 이런게 삶을 잘 사는거지- 하면서
내 두 발로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 산책로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산책로 뿐만 아니라 횡단보도에도, 길거리에도, 지하철에서도 보기가 힘든 사람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이렇게 밤 늦게 나오고 싶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구나.
"나 나가서 바람 쐬고 싶어" 라고 의사를 밝히고, 그럼 누군가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를 데리고 함께 나와 밤 산책을 하겠구나. 그런데 그 누군가가 없는 사람도 있을텐데. 혹은 그 누군가에게 늘 미안할 수도 있을텐데. 분명이 혼자서 하고 싶을텐데.
벌써 8년 전인가, 미국에서 큰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다. 다행히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어서 아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쇄골뼈가 골절되고 왼쪽 갈비뼈도 여러 대 금이 갔다.
나는 그 뼈들을 다치기 전까지 뼈들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인식도 하지 못하고 지냈었다. 쇄골 뼈를 다치니 오른 팔을 들어올릴 수 없었고, 긴 머리를 묶기도 쉽지 않았으며, 샤워를 할 때 머리를 감으려 팔을 들거나, 볼 일 볼 때 뒤처리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옷을 입을 때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었는데, 그 때마다 나의 사촌동생이 도와줬었지만 번번히 필요로 할 때 마다 누구를 찾아야 한다는 건 정말 불편하고 좌절감도 느껴지고 힘이 드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오랜 시간 길러왔던 긴 머리를 짧게 자를 수 밖에 없었다.
다리를 다쳤을 때는 또 어떤가.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듦에 고취되어 다리에 반깁스를 한 사람이 탄다해도 쉽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는다. 반깁스인 채로 버스를 타고 한발로 겨우겨우 중심을 잡으며 목적지 까지 갔던 적도 있다. 버스에 올라 타는 것도 힘들었다. 계단. 계단. 계단.
쇄골 뼈를 다치기 전엔 쇄골 뼈의 역할을 몰랐던 것 처럼, 다리를 다쳐보기 전까지 계단 오르는게 힘들다는 걸 느껴보지 못한 것 처럼, 산책을 할 수 있다면 산책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지금 온 몸이 다 나아서 내 스스로 원한다면 얼마든지 나가 산책을 할 수 있다. 심지어 달리기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산책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산책하지 못하는 사람도 어떻게 하면 산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보행자 도로는 지금도 좁은데 휠체어는 어떻게 다닐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자전거 도로를 다니자니 휠체어는 너무 느릴텐데? 답이 없다고 느껴져도 암울해지지말고 계속 생각해보고 싶다.
내가 어떤 불의의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 관절이 약해질 수도 있으니까.
부디 내가 걷지 못하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도 이토록 좋은 산책을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