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책을 쓰려다, 내 인생을 쓰게 됐다
대표님, 제가 쓰려던 건 이게 아닌데요?
천국과 지옥을 오간 미팅 끝에, 나는 한 출판사 대표님과 따뜻한 교감을 나눴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분은 내가 일하는 영주시까지 직접 내려오셨다.
서울의 출판사 대표가, 시골 공무원 하나를 만나러 영주까지 내려왔다. 이건 그냥 '간' 보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 진짜 일 한번 해봅시다'라는 강력한 시그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대표님이 내게 제안한 책의 콘셉트는, 내가 원래 쓰려던 것과 전혀 달랐다.
"작가님, 저는 작가님이 그냥 재테크 전문가로만 보이는 게 아쉬워요. '지방소멸' 시대에 역으로 지방에서 기회를 찾은 '청년 공무원', '30개월 육아휴직을 한 아빠', 그리고 '자산배분 투자자'. 이 세 가지 캐릭터를 녹여내서, 작가님 자체를 보여주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머릿속에서 두 개의 자아가 미친 듯이 싸웠다. '야, 튀어! 이 판은 우리가 깔아놓은 판이랑 완전 다르잖아!' 하는 재테크 전문가의 영혼과, '닥쳐봐, 일단 들어나 보자. 이 대표, 사람 보는 눈이 좀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작가 지망생의 영혼이.
나는 그냥 '족보 쎈 재테크 꿀팁'이나 풀려고 했는데, 대표님은 갑자기 내 '인생'을 통째로 해부하자고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표님의 말이 맞았다.
재테크 책이 '게임 공략집'이라면, 대표님이 제안한 건 '플레이어 탄생 비화'를 다루는 DLC 확장팩이었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낡지만, '박운서'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유일무이한 오리지널 콘텐츠였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이 시대 청년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 이건 내가 막연히 꿈꿨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이었다.
두 번째 미팅에서, 우리는 다음 만남에 계약하기로 약속했다.
2주일간의 전투, 내 인생을 원고지에 새기다
콘셉트가 확정되자,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했다. 마침 계획했던 육아휴직 기간이 시작되었다. 나의 출근지는 작은 내방이 되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 아내가 딸과 놀아주는 시간,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하루 8시간 이상, 오직 집필에만 매달렸다. 그건 글쓰기가 아니라, 내 지난 10년의 삶을 한 글자 한 글자 복기하는 치열한 전투였다.
원래 쓰려던 재테크 분량은 과감하게 압축했다. 대신 내 시각으로 본 공무원 이야기부터, 지방생활의 매력과 해외 파견 이야기와 세계여행 이야기까지 모든 에피소드를 녹여냈다. 그렇게 내 인생이라는 솥단지에 10년 치의 희로애락을 전부 때려 넣고, 2주 동안 미친 듯이 졸여낸 진한 사골 국물 같은 원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작가 박운서'가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 드디어 계약서가 내 앞에 놓였다.
"인세 10%..." "2차적 저작물 권리 저자 귀속..."
꼼꼼하게 조항들을 확인했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었다. 계약서 위 '저자' 칸에 내 이름 석 자를 쓰는 순간, 지난 모든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취업에 실패하고 영주행 버스에 올랐던 스물 다섯의 패잔병. 잿빛 성에서 '0시간의 반란'을 일으키던 스물여섯의 반골. 딸의 첫 심장 소리를 듣고 울음을 터뜨렸던 서른한 살의 아빠.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서른 여섯의 투자자. 그리고 마침내, 작가가 된 서른 일곱 지금의 나.
"작가님,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이 내민 손을 굳게 맞잡았다. 그 악수의 온기가, 모든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내 이름 옆에 '작가'라는 두 글자를 붙일 수 있는, 공식적인 라이센스를 획득한 것이다. 야호!
평범하게 살지 않아 상사에게는 눈엣가시, 부모님에게는 이해불가 괴짜 아들이었던 내가, 오히려 유니크한 캐릭터가 되어 역설적으로 재밌는 놈이 된 거다.
작년 여름, "전자책이라도 한번 내볼까?" 하고 막연하게 시작했던 '내 책 내보기 프로젝트'. 그 작은 씨앗이, 나를 알아봐 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나를 가장 나답게 돋보이게 해주는 책으로 피어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여전히 경북 봉화에 사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나는, 작가다. 무명의 공무원 아빠가 아니라, 네이버에 이름을 등재시킬 작가 아빠. 그 허황되고 속물적이던 꿈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공무원이 재테크 책 쓴 이야기> 시리즈는 이번 편으로 마무리됩니다. 책은 2025년 연말이나 2026년 초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