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편 06 : 프랑스 - 아비뇽, 님

프랑스 요리? 글쎄...

by 박운서

냉장고 폭탄과 대시보드 빨래방

장기 여행을 하니 빨래가 항상 숙제였다. 그래서 숙소를 고를 땐 늘 주차장과 세탁기 유무를 확인했다. 하지만 건조기가 없는 곳이 태반이라 밤에 널어도 다음날 아침까지 덜 마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쩔 수 없이 덜 마른 빨래는 차 대시보드 위에 널었다. 남프랑스의 뜨거운 태양이 앞유리를 뚫고 들어오니, 대시보드는 훌륭한 건조기였다. 밖에서 보면 모양새는 좀 빠지지만, 차가 있으니 이런 '생활 밀착형' 여행이 가능하다. 이것이 리스차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아비뇽 유수의 현장과 프랑스 요리의 배신

오늘의 목적지는 역사의 도시 아비뇽.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에 졸면서 배웠던 '아비뇽 유수'의 바로 그 현장이다. 교황권이 약해져 로마가 아닌 이곳에 교황청이 머물렀던 역사적 장소. 웅장한 교황청 앞에 서니 교과서 속 활자가 아닌 거대한 역사의 무게가 느껴졌다. 가족과 함께 이 거대한 유산 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감동은 짧고 현실은 비쌌다. 남프랑스 지역의 명물, '토끼 요리'에 도전했다. 그런데 이곳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주문받는 데 한 세월, 음식 나오는 데 한 세월. 야외 테이블이라 파리와 모기들이 합석을 요구했고, 드디어 나온 토끼 고기는... "이게 10만 원?" 맛은 그저 그랬고, 양은 적었다. 10만 원을 허공에 날린 기분이었지만, "역사 공부랑 화장실 값 포함이야"라며 애써 정신 승리를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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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혹은 운명?

저녁이 되자 장르가 스릴러로 바뀌었다. 아비뇽 근처에 방을 못 구해 아내가 급하게 당일 예약한 숙소. 그런데 신규 호스트가 앱이 아닌 다른 메신저로 대화하자고 유도하는 게 아닌가? "여보, 이거 100% 사기다." 하지만 당일 투숙이다 보니 대안이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일단 가보기로 했다. 잔뜩 긴장한 채 도착한 곳은 교외의 아주 안전하고 평화로운 주택가였다.

문을 열고 나온 호스트는 영어가 서툰 빡빡머리 아저씨였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를 나누는데, 집 안으로 들어선 순간 우리 부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박..."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인테리어, 마당엔 프라이빗 수영장까지. 알고 보니 도어락 고장으로 예약을 막으려고 했는데, 우리의 예약 신청을 받고 '인연'이라 생각해서 열어주었다는 것. 도어락이 안 되니 열쇠를 주면서 미안한 마음에 조식 서비스까지 제공해 주기로 했다. 의심이 확신으로, 아니 감동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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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의 고향, 님

다음 날 아침, 뒷마당엔 갓 구운 빵과 버터, 그리고 서툰 한국어로 적힌 환영 쪽지가 우리를 반겼다. 따뜻한 환대에 감동하며 우리는 남은 빵을 챙겨 님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들른 퐁 뒤 가르. 2천 년 된 로마의 수도교는 입장료가 없어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도착한 도시 님. 재밌는 사실은 우리가 즐겨 입는 청바지(Denim)의 어원이 바로 이곳이라는 점이다. '님에서 온 천(Serge de Nîmes)'이 줄어서 '데님(Denim)'이 되었다고 한다. 청바지의 조상님 격인 도시에 왔으니 뭔가 더 힙해 보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힙한 기분도 잠시, 시도한 두 번째 '프랑스 코스 요리'는 결정타를 날렸다. 구글 평점 5.0을 믿고 갔지만, 역시나 느려 터진 서빙과 그저 그런 맛, 11만 원이라는 계산서. "여보, 우리 이제 프랑스에서 코스 요리는 '손절'하자." 이틀 연속 20만 원 넘게 쓰고 얻은 교훈은 뼈아팠다. 가성비와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인에게 프랑스 미식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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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역사보다 빛났던 놀이터

배를 채우고 님 원형 경기장과 메종 카레를 둘러봤다. 로마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보존 상태는 훌륭했다. 하지만 이날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유적지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동네 놀이터. "아빠, 나 저기서 놀래!" 딸은 미끄럼틀로 돌진했고, 금세 프랑스 아이들과 섞여 까르르 웃었다. 청바지의 발상지건, 2천 년 된 원형 경기장이건, 아이에겐 그저 미끄럼틀이 최고였다. 우리는 마트에서 산 샐러드와 아침에 챙겨 온 빵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11만 원짜리 점심보다 이게 더 속 편하고 맛있는 건, 아마도 마음이 편해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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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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