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도로 한복판의 멘붕 (feat. 삐져버린 푸조)
니스의 푸른 바다를 뒤로하고 베르동 협곡으로 향하는 길.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오다 그만 '드르륵'. 출고 3일 만에 내 차 옆구리를 긁어버렸다. 미안하다, 푸조야. 사실 돈 걱정은 없었다. 리스 차량은 '슈퍼 풀 커버' 보험이라 차가 반파돼도 면책금 0원인 사기급 조건을 자랑하니까. 다만 주인 잘못 만나 3일 만에 상처 입은 녀석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단단히 삐진 것 같다. 니스를 빠져나가는 시내 도로에서 부드럽게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좁은 도로 한복판에서 '시스템 종료'를 선언했다.
"삐-익!" 경고음과 함께 계기판에 'System Error'가 뜨더니 핸들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시동은 꺼지지도 않고, 엑셀도 먹통.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제 여행 시작인데, 여기서 끝인가? 사고라도 나면? 가장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쳐 지나갔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라는 투자 상품에 숨겨진 '블랙스완(예기치 못한 위험)'인가.
프랑스의 '느림'과 미스터리한 해결
급한 대로 옆 가게에 뛰어들어가 도움을 청했다. 영어가 서툰 주인아저씨였지만, 손짓발짓으로 상황을 설명하니 대신 푸조 센터에 전화를 걸어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하염없는 기다림. 한국의 '렉카'가 총알같이 달려오는 속도를 기대하면 안 된다. 프랑스의 견인차는 세월을 낚는 강태공처럼 느긋하게 도착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아까는 둘이서 기를 써도 꿈쩍 않던 핸들이 견인차가 오자마자 스르륵 풀리며 시동이 정상적으로 걸렸다는 것이다.
일단 푸조 서비스 센터까지 따라가서 점검을 받아봤다. 결과는 "이상 없음". 센터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거 참... 아직 50일 넘게 이 차를 몰아야 하는데 시한폭탄을 안은 기분이었다. 나는 허탈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채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래, 기계도 한 대 맞아서 삐진 거라 치자. 화 풀렸지?' 찜찜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엑셀을 밟았다.
지옥 끝에서 만난 절경, 베르동 협곡
차량 고장의 공포를 뚫고 좁은 산길을 올라가니, 또 다른 차원의 절경이 펼쳐졌다. 베르동 협곡. '유럽의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별명답게 압도적인 스케일이었다. 좁은 도로를 운전하느라 내 손엔 땀이 찼지만, 창밖 풍경에 감탄하는 아내를 보니 긴장이 녹아내렸다.
협곡을 내려와 마주한 생 크로와 호수는 물감을 풀어놓은 듯 비현실적인 에메랄드빛이었다. 알고 보니 자연 호수가 아니라 인공 호수란다. 살짝 김이 샜지만, 인간이 만든 것치고는 꽤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오리배를 빌려 호수 위로 나아갔다.
5살 딸, 효녀가 되다
호수 위는 평화로웠지만, 배가 나가려면 엔진은 필요했다. 하필이면 아내가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건 5살 딸 서은이었다. "엄마는 아프니까 내가 할게!" 고사리 같은 발로 열심히 페달을 굴리는 딸아이의 뒷모습. 그 작은 등 뒤로 베르동의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아빠의 자본(여행 경비)과 딸의 노동력(?)이 만들어낸 완벽한 가족의 합작품이었다.
무스티에 마을과 '타이어' 맛 소고기
호수 놀이를 마치고 무스티에 생트 마리 마을로 향했다. 절벽 사이에 별이 걸려있는 아름다운 마을. 그런데 주차 시스템이 낯설었다. 나갈 때 내는 게 아니라, 머무를 시간을 예상해서 미리 돈을 내고 티켓을 대시보드에 올려두는 '선불제'였다. 게다가 주차 정산 기계 절반은 고장 난 상태. '이것이 유럽의 낡은 시스템인가...' 불편했지만, 낡은 마을이 자아내는 풍경만큼은 감탄스러웠다. 수도원까지 올라가 내려다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야심 차게 소고기를 샀다. '프랑스 현지 소고기 스테이크'를 꿈꾸며 에어비앤비 주방에서 고기를 구웠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이거 고기야, 고무 타이어야?" 프랑스 소고기는 내 턱관절을 파괴할 만큼 질겼다. 마블링 가득한 부드러운 한우가 사무치게 그리운 밤이었다.
친절한 할아버지 호스트가 있는 아늑한 숙소. 빨래를 돌려놓고 널어야 하는데, 우리 가족은 타이어 같은 고기를 씹다 지쳐 또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빨래는...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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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 박운서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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