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르니아 온천
시에나의 감흥과 샌드위치의 배신
아침에 일어나 익숙하게 짐을 싸고, 덜 마른 빨래를 챙긴다. 이런 생활도 2주가 넘어가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정말 바라던 삶인가?"
막연히 꿈꾸던 세계일주였는데, 현실은 매일 짐 싸고 풀기의 반복이다.
토스카나의 보석이라는 시에나에 도착했다. 캄포 광장도, 대성당도 분명 멋졌지만 감흥은 시들했다.
"음, 예쁘네. 끝." 여행 초반이었다면 "우와!"를 연발했을 텐데, 니스와 모나코, 피렌체를 거치며 내 눈은 이미 만렙을 찍어버렸다. 익숙함이란 참 무서운 거다.
점심은 구글 평점 좋은 샌드위치 가게를 찾아갔다. 그런데... 짜다. 너무 짜다. 맛도 없고 빵은 딱딱했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갑자기 얼큰한 김치찌개와 맛있는 밥이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장기간 이렇게 안 맞는 음식만 먹으며 버틸 수 있을까? 우리 가족에게 유럽은 식도락의 불모지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찍먹' 파였다
토스카나의 상징인 사이프러스 나무 길을 찾아 드라이브를 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온 그 풍경.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을 보며 우리도 사진을 남겼다. 잠든 딸 대신 아내와 오붓하게 찰칵.
거기서 아내가 중요한 고백을 했다. "여보, 나는 여행도 '찍먹'이 맞는 것 같아. 벌써 감흥이 떨어져."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우리는 1년 내내 여행하는 '부먹(푹 담그는)' 스타일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다 2주에서 한 달 정도 짧고 굵게 다녀오는 '찍먹'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짧으면 2주, 길어야 한 달. 그게 우리한테 딱이다." 막연한 환상을 깨고 우리에게 맞는 답을 찾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번 여행은 우리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다.
치비타 디 반뇨레조 : 천공의 성과 아빠의 등반
다음 날, 치비타 디 반뇨레조로 향했다. 풍화 작용으로 지반이 깎여나가 언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죽어가는 도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지브리 애니 덕후인 나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대시보드에 주차권을 올려두는 손놀림이 이제 제법 현지인 같다. 문제는 마을로 들어가는 긴 다리였다. 오르막길을 보더니 딸이 "안아줘"를 시전했다. "으차!" 아이를 안고 가파른 다리를 오르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경치는 끝내줬지만, 내 허벅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정상에서 본 풍경은 고생을 보상해 줄 만큼 신비로웠다.
사트루니아 : 도마뱀 룸메이트와 온천의 위로
졸음운전을 피해 갓길에서 쪽잠까지 자가며 도착한 사트루니아의 숙소. 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귀여운(?) 도마뱀이었다. "꺄악!"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했던가. 아내 은지는 순식간에 슬리퍼로 벌레들을 때려잡고 도마뱀을 쫓아냈다. 시골 산장이라 벌레와의 동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짐을 풀고 사트루니아 온천으로 향했다. 계단식으로 흐르는 천연 온천. 옥색 물빛과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몽환적이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그간 쌓인 피로와 '여행 권태기'가 싹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하, 좋다..." 역시 한국인은 뜨끈한 물에 몸을 지져야 한다.
다음 날 아침에도 온천욕을 하기로 기약했지만, 숙소로 돌아오니 딸 얼굴에 뭐가 나서 포기하고 푹 자기로 했다. 아이에게는 유황 성분이 너무 강했나 보다. 충전은 끝났다. 내일은 드디어 이탈리아 여행의 최종 보스, 로마로 입성한다. (벌써부터 운전할 생각에 손에 땀이 난다. ㅎㄷㄷ)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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