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편 10 : 이탈리아 - 시에나, 치비타, 온천

사투르니아 온천

by 박운서

시에나의 감흥과 샌드위치의 배신

아침에 일어나 익숙하게 짐을 싸고, 덜 마른 빨래를 챙긴다. 이런 생활도 2주가 넘어가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이게 내가 정말 바라던 삶인가?"

막연히 꿈꾸던 세계일주였는데, 현실은 매일 짐 싸고 풀기의 반복이다.

토스카나의 보석이라는 시에나에 도착했다. 캄포 광장도, 대성당도 분명 멋졌지만 감흥은 시들했다.

"음, 예쁘네. 끝." 여행 초반이었다면 "우와!"를 연발했을 텐데, 니스와 모나코, 피렌체를 거치며 내 눈은 이미 만렙을 찍어버렸다. 익숙함이란 참 무서운 거다.

점심은 구글 평점 좋은 샌드위치 가게를 찾아갔다. 그런데... 짜다. 너무 짜다. 맛도 없고 빵은 딱딱했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갑자기 얼큰한 김치찌개와 맛있는 밥이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장기간 이렇게 안 맞는 음식만 먹으며 버틸 수 있을까? 우리 가족에게 유럽은 식도락의 불모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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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찍먹' 파였다

토스카나의 상징인 사이프러스 나무 길을 찾아 드라이브를 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온 그 풍경.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을 보며 우리도 사진을 남겼다. 잠든 딸 대신 아내와 오붓하게 찰칵.

거기서 아내가 중요한 고백을 했다. "여보, 나는 여행도 '찍먹'이 맞는 것 같아. 벌써 감흥이 떨어져." 나도 격하게 공감했다. 우리는 1년 내내 여행하는 '부먹(푹 담그는)' 스타일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다 2주에서 한 달 정도 짧고 굵게 다녀오는 '찍먹'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짧으면 2주, 길어야 한 달. 그게 우리한테 딱이다." 막연한 환상을 깨고 우리에게 맞는 답을 찾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번 여행은 우리 스타일을 찾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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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비타 디 반뇨레조 : 천공의 성과 아빠의 등반

다음 날, 치비타 디 반뇨레조로 향했다. 풍화 작용으로 지반이 깎여나가 언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죽어가는 도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지브리 애니 덕후인 나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대시보드에 주차권을 올려두는 손놀림이 이제 제법 현지인 같다. 문제는 마을로 들어가는 긴 다리였다. 오르막길을 보더니 딸이 "안아줘"를 시전했다. "으차!" 아이를 안고 가파른 다리를 오르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경치는 끝내줬지만, 내 허벅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정상에서 본 풍경은 고생을 보상해 줄 만큼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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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트루니아 : 도마뱀 룸메이트와 온천의 위로

졸음운전을 피해 갓길에서 쪽잠까지 자가며 도착한 사트루니아의 숙소. 문을 열자마자 우리를 반긴 건 귀여운(?) 도마뱀이었다. "꺄악!"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했던가. 아내 은지는 순식간에 슬리퍼로 벌레들을 때려잡고 도마뱀을 쫓아냈다. 시골 산장이라 벌레와의 동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짐을 풀고 사트루니아 온천으로 향했다. 계단식으로 흐르는 천연 온천. 옥색 물빛과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몽환적이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그간 쌓인 피로와 '여행 권태기'가 싹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하, 좋다..." 역시 한국인은 뜨끈한 물에 몸을 지져야 한다.

다음 날 아침에도 온천욕을 하기로 기약했지만, 숙소로 돌아오니 딸 얼굴에 뭐가 나서 포기하고 푹 자기로 했다. 아이에게는 유황 성분이 너무 강했나 보다. 충전은 끝났다. 내일은 드디어 이탈리아 여행의 최종 보스, 로마로 입성한다. (벌써부터 운전할 생각에 손에 땀이 난다.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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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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