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편 12 : 이탈리아 - 티볼리,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까지. 자동차 이름 여행

by 박운서

티볼리에 대한 예의

로마를 떠나 향한 곳은 티볼리(Tivoli). 우리가 여길 온 이유는 단순하다. 아내의 차가 '티볼리'라서다. "우리 차 유래가 된 곳인데 한번 가봐야 예의 아니겠어?"

먼 거리는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도착한 빌라 데스테(Villa d'Este)는 생각보다 엄청난 곳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의 걸작. 알고 보니 이 별장의 주인인 '이폴리토 2세' 추기경이 교황 선거에서 탈락하고, 그 분풀이(?) 겸 권력 과시용으로 만든 거라고 한다.

"내가 교황은 못 됐지만, 사는 건 교황보다 더 폼나게 살겠다!" 이런 야망이 서려 있어서일까? 규모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특히 놀라운 건 분수다. 500개가 넘는 분수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데, 이게 전기 펌프 하나 없이 오직 강물을 끌어와 중력과 수압만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토목 기술을 갈아 넣은 것이다. 나중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로마 여행의 여파로 다리가 아팠지만, 교황을 꿈꿨던 남자의 집념이 만든 물소리와 경치 덕분에 꾹 참고 걸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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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행 '구토' 열차와 피자

나폴리로 내려가는 길에 들른 코리(Cori)라는 마을.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조식을 어마어마하게 챙겨줘서 장을 안 봐도 될 정도였다. 석양이 질 때 신전과 가로등이 어우러진 풍경은 예술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거기까지였다.

다음 날 아침, 나폴리로 향하는 차 안에서 딸이 울상을 지었다. "아빠, 어지러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웩. 30분도 안 돼서 토를 시전했다. 다행히 시골길이라 밖에서 처리했지만, 조수석에 태워봐도 소용없었다. 가는 길에 또 한 번 오바이트. 하루에 두 번이나 토하며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딸을 보니 멘탈이 바스라졌다. 혹시 몰라 챙긴 봉투가 신의 한 수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나폴리(Naples). 길을 잘못 들어 차 빼느라 진을 뺐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첫인상은...

"어설프고 너저분하다."

지금까지 본 이탈리아 도시들과 다르게 무질서 그 자체였다. 부랑자들도 많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니하오"를 날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거리에는 담배 꽁초들과 쓰레기들이 날렸고, 좁은 골목을 마구 달리는 오토바이 소음에 귀가 따가웠다. 이게 그 악명 높은 나폴리의 매력인가.

그래도 나폴리 피자는 죄가 없었다. 유쾌한 아저씨가 만들어준 피자와 리조또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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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의 할머니와 현실 자각

숙소는 폼페이 근처. 할머니 호스트가 딸을 격하게 안아주며 반겼다.

"오늘 밤 8시에 행사가 있으니 같이 가자." (라고 번역기가 말했다.)

저녁을 먹고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어서 나가보니, 할머니는 그냥 길만 알려주고 쌩하니 가버렸다.

"뭐지? 같이 가자며?" 아마도 번역기의 오류였나 보다. 머쓱해진 우리는 그냥 씻고 빨래나 널었다.

그리고 쉴 수가 없었다. 유럽 본토 여행은 그때그때 다니면서 즐기면 되지만, 바다 건너 영국과 미국으로 가는 건 미리미리 예약해야 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싸매고 파리에서 런던 가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결국 비행기로 가기로 결정. 가성비 좋게 예약을 마치고서야 하루를 마무리했다.


폼페이의 비극과 "꼬추 내놓은 할배"

다음 날,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지만 기대하던 폼페이(Pompeii)로 향했다. 10시에 도착한 폼페이는 찜통이었다. 더 일찍 왔어야 했다. 여긴 그늘이 없는 곳이다.

길도 미로 같아서 찾기가 정말 어렵다. 거기서 나눠준 종이 지도보다 구글맵이 훨씬 정확했다. 3시간 동안 돌무더기와 씨름하며 보고 싶었던 곳을 다 돌았다.

특히 화산재에 묻힌 일가족의 석고상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숙연해졌다.

'얼마나 끔찍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안고 있었구나.'

하지만 슬픔도 잠시, 아이의 시선은 달랐다. 책에서 보고 아이의 석고상인 줄 알았던 '파우노의 집'에 있는 동상. 알고 보니 집의 장식물이었는데, 하필 다 벗고 있는 모습이었다.

딸이 한마디 했다.

"아빠, 저 할배 꼬추 내놓고 있어."

빵 터졌다. 아이의 눈엔 역사적 비극이고 뭐고 그냥 '발가벗은 아저씨'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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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의 배신과 13,000원짜리 아이스크림

현금이 필요해 ATM에서 20유로를 뽑았는데, 자동 환전 기능이랑 꼬여서 수수료만 만 원 넘게 날렸다.

"아, 내 돈..." 눈물이 났지만, 그 돈으로 잔돈이나 만들 겸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3개에 8유로(약 13,000원). 미친 물가.

점심은 가는 길에 보인 맥도날드를 찍고 갔는데, 웬 대형 쇼핑몰이 나왔다. 알고 보니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었다. 푸드코트에서 슈니첼과 아란치니로 배를 채웠다. 양이 너무 많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딸은 유적지보다 쇼핑몰을 더 좋아했다. 역시 애들은 역사고 뭐고 시원한 에어컨이 최고다.


소렌토의 교통지옥

마지막 코스는 소렌토(Sorrento). 역시나 한국 차(쏘렌토)의 유래가 된 곳이라 가봤는데...

"굳이 올 필요 없었다." 니스랑 분위기가 너무 비슷했고, 레몬 사탕이랑 레몬술(리몬첼로) 산 거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생지옥이었다. 차가 미친 듯이 막혀서 50분 거리를 3시간 넘게 기어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반. 오늘은 운전 별로 안 할 줄 알았는데, 폼페이 행군에 운전 노동까지 겹쳐 녹초가 됐다.

가만 보면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탈리아 도시 이름을 참 좋아한다. 티볼리, 소렌토부터 시작해서, 도요타의 시에나, 닛산의 무라노 등등, 이탈리아 지도를 펼쳐놓으면 이게 지도인지 자동차 카탈로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름만 갖다 붙이면 차가 더 잘 나가는 줄 아나 보다. 정작 여기 도로는 꽉 막혀서 차가 나가질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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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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