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편 14 : 이탈리아 - 베네치아, 돌로미티

by 박운서

13년 만의 베네치아, 성공한 인생?

대망의 베네치아(Venice). 13년 전, 학생 시절 허름한 야상을 입고 배낭 하나 메고 왔던 그곳에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다시 왔다. 종탑의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뜨며 이만하면 인생 성공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서둘렀지만 출근길 정체는 피할 수 없었다. 주차 후 바포레토(수상 버스) 1일권을 끊었는데 2명에 50유로였다. 다행히 아이는 무료였지만 확실히 비싸다. 중간에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환승 끝에 무사히 부라노 섬(Burano)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만난 일본인 관광객 3인방은 중국인보다 더 시끄러워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왔을 땐 날씨가 흐려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대성공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 형형색색의 집들이 반짝였고, 아내는 아이처럼 뛰어다니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나에게 베네치아는 초등학생 시절 타자연습 게임의 이름이었고, 학창 시절 만화 'ARIA'를 보며 환상을 키웠던 공간이다. 파란 하늘 아래 다시 마주한 풍경은 그 추억들을 모두 현실로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본섬의 산 마르코 광장과 리알토 다리는 예전 분위기 그대로였지만, 관광객은 그때보다 훨씬 많아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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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첫 발치, 베네치아에서의 치아 추억

저녁은 아내가 삼겹살을 구워줬는데, 이탈리아 돼지고기는 우리 입맛엔 좀 아쉬웠다. 사과도 별로고.

샤워를 하는데 딸 입에서 피가 났다.

"아빠, 이가 너무 흔들려..."

흔들린 지는 한참이 지났고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치과 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한 달 이내로 빠질 거라고 했었다. 때가 된 것이다. 겁이 났지만 유튜브를 찾아보고 공부했다. 손수건으로 이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톡. 너무나 쉽게 빠져버렸다. 딸도 별로 아파하지 않았다. 빠진 이를 보니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내가 이 아이의 첫 이를 뽑아주다니. 딸이 이렇게 성장했다니.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딸에게 고마웠다.

그때 딸이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 베네'치아'에 오니까 '치아'가 빠졌네?"

베네치아와 치아라니. 아이의 기발한 언어유희에 아내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 빠진 유치는 잘 챙겨서 한국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안녕, 정든 유모차

베네치아를 떠나며 큰 결심을 했다. 유모차와의 이별이다. 앞으로 갈 돌로미티나 스위스는 험한 길이라 유모차 쓸 일이 거의 없고, 트렁크에 매번 실을 때마다 묘하게 공간이 부족해서 테트리스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다. 호스트에게 버릴 만한 데가 있냐고 물어보니 두고 가면 기부하겠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넘겨주기로 했다.

딸 어렸을 때부터 내가 제일 많이 끌었던, 정품 '요요' 짝퉁인 '요야' 유모차. 국내 여행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까지 우리 딸의 발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 딸과 유모차의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유럽의 다른 아기에게 가서 또 사랑받길 바란다."


비 내리는 돌로미티와 브라이에스 호수

돌로미티로 향하는 길. 비가 오고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다.

"안 돼!"

하지만 비구름 사이로 펼쳐진 풍경은 장관이었다.

먼저 브라이에스 호수(Lago di Braies)로 갔다. 다행히 비가 잠깐 멈췄다. 15분 무료 주차 찬스를 이용해 후딱 구경했는데, 물빛이 정말 놀라웠다. 공짜로 눈 호강 제대로 했다. 하지만 케이블카는 비 때문에 썸머 패스도 못 사고 포기. 숙소는 위치가 좀 애매했지만 넓고 따뜻해서 좋았다. 아내가 만들어준 짜파게티와 신라면, 그리고 볼로냐에서 포도 주스인 줄 알고 잘 못 산 팩 와인으로 위로받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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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 치메의 기적과 라가주오이의 재난 영화

이틀째. 비는 그쳤지만 구름은 여전했다. 딸이 멀미로 토할 것 같다고 해서 잠깐 쉬며 네잎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트레 치메(Tre Cime)로 가는 길. 딸이 하늘에 대고 기도를 했다.

"하늘아, 맑아져라!" 기도가 통했는지, 트레 치메에 도착하니 파란 하늘이 드러나며 압도적인 풍경을 보여줬다. 아시아의 산과는 또 다른 매력. 딸은 쌓인 만년설을 보고 신이 났다. 눈 맛도 보았다. 그리고 조약돌을 하나 주웠다. '돌'로미티니까 '돌'을 챙겨가야 한다고 말이다. 유쾌한 딸이다.

절경을 배경으로 아내가 싼 주먹밥을 먹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기세를 몰아 라가주오이(Lagazuoi) 케이블카를 탔다. 비싼 돈 내고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 구름에 갇혀서 한 치 앞도 안 보였다. 아내는 "이건 재난 영화 현장 같다"라고 했다. 에베레스트 등반 체험한 셈 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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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 긁어먹은 날과 ESTA 신청

3일째 아침. 거짓말처럼 맑게 갠 날씨. 하지만 숙소가 너무 멀어서 왔던 길을 또 가야 했다. 내가 피곤해해서 아내가 운전을 맡았는데, 꼬불꼬불한 산길 운전에 아내도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오른쪽에 너무 붙어서 쿵! 내려서 보니 휠이랑 타이어를 긁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리스 계약서를 확인하니 자동차의 모든 파손에 대해 '풀 커버'. "역시 푸조 리스 최고다. 차만 굴러가면 된다!" 한 달도 안 된 새 차에 상처가 많이 났지만, 우리 가족 무사하면 그만이다.

서쪽으로 넘어가니 스키장이 보이고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와, 여기서 스키 타면 끝내주겠다."

잠든 아내와 딸을 뒤로하고 혼자 드라이브를 즐겼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중요한 일을 처리했다. 미국 ESTA(전자 여행 허가) 신청. 트럼프가 수수료를 21불에서 40불로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 전에 후다닥 신청해 승인까지 받았다.미국 갈 준비도 착착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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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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