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편 15 : 이탈리아 - 베로나, 밀라노&스위스

루체른

by 박운서

베로나 어게인

미국 자료 검색하느라 새벽 늦게 잤더니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두꺼운 이불 속에서 살아남아 기상 성공. 아내가 정성껏 볶아준 고기볶음밥으로 주유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딸은 살짝 감기 기운이 있었다. 기침에 콧물까지 달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낮이 되니 콧물만 좀 훌쩍이는 수준이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베로나. 나는 예전에 베네치아와 묶어서 방문한 적이 있다. 13년 만에 다시 온 이곳은, 솔직히 나는 큰 감흥이 없었다. 아레나 공연장은 공연 준비 때문인지 어수선해서 감상을 방해했다. 그래도 줄리엣의 집은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줄리엣 동상 앞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다들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려고 줄을 서 있는데, 그 부위만 하도 만져대서 번쩍번쩍 광이 난다. 이 가슴을 만지면 진정한 사랑을 찾거나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이다. 나는 이미 내 옆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으니, 이 전설의 완성본을 옆에 둔 셈이다. 아내 눈치가 보여서 나는 안 만지고 아내와 딸만 줄리엣의 가슴을 만지며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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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도시 밀라노

밀라노에서는 가이드북에서 시키는 대로 외곽 지하철역에 주차하고 대중교통으로 입성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마주한 밀라노 대성당(Duomo)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600년에 걸쳐 지어진 고딕 양식의 정점인데, 3,400개가 넘는 조각상과 하늘을 찌를 듯한 수많은 첨탑이 성당 전체를 감싸고 있다. 대리석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성당 바로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가 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해 첫 번째 왕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곳인데, 유리 돔으로 덮인 화려한 천장과 바닥의 정교한 모자이크가 마치 거대한 궁전 같았다. '밀라노의 거실'이라는 별명답게 명품 매장과 유서 깊은 카페들이 즐비해 있었다.

특히 압권이었던 건 전 세계에서 모인 패셔니스타들이었다. 그중 전신 올 블랙 패션에 검은색 대형견까지 깔맞춤한 패셔니스타를 보며, 애완견까지 패션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사진사들이 그녀를 불러 세워 열심히 셔터를 누르길래, 나도 185cm 기럭지에 나름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양인 포스를 보여주며 은근히 기대를 해봤다. 하지만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더라. 아내랑 나랑 누가 사진 안 찍어주나 내심 기다리다가 결국 삐쳐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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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앞의 한풀이 쇼핑과 스위스 할배의 부동산 떡상

물가 비싼 스위스로 넘어가기 전, 이탈리아 마트 에셀룽가에서 마지막 한풀이를 시작했다. 아내는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며 무려 3일치 장을 카트에 담았다. 역시 유럽은 유제품 물가가 저렴했다. 종류도 다양하고.

스위스 고속도로비도 미리 결제했다. 스위스는 비넷이라는 것을 사면 일정 기간 동안 고속도로비가 무제한이다. 온라인으로도 가능해서 후딱 결제했다.

스위스 땅을 밟자마자 도로 상태가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 이탈리아의 거친 노면과는 차원이 다른 정돈된 자본주의의 맛이다. 알프스 경치는 돌로미티에서 이미 만렙을 찍고 와서인지 감흥은 적었다.

첫 스위스 여행지인 루체른은 우리처럼 이미 유럽 여행 레벨이 높아진 사람들에게는 사실 볼 게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빈사자의 상과 카펠교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였다.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다.

루체른을 찍먹하고 드디어 인터라켄 숙소에 입성했다. 근데 스위스 물가는 정말 사악함 그 자체다. 1박에 30만 원은 기본으로 깔고 가니 숨이 턱 막힌다. 숙소 주인인 할배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할배 젊었을 때도 스위스가 이랬을까? 그냥 농사짓다가 갑자기 스위스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뜨면서 부동산 대박이 터진 케이스가 아닐까 싶었다. 할배의 여유로운 미소 뒤에는 떡상한 집값이 있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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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고백

아내가 차려준 저녁과 함께 스파클링 와인을 땄다. 달콤한 거품과 함께 가족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 딸이 전해준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유럽 여행이 너무 좋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엄마와 아빠한테 정말 고맙다고.

그 한마디에 지난 고생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7시간 넘는 운전도, 주차장과의 사투도, 30만 원짜리 숙박비도 결국 이 아이의 웃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딸은 그렇게 한 뼘 더 자랐다.

사랑한다 딸아. 네가 행복하면 아빠는 다 좋다.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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