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츠, 트리어, 엘츠성, 본, 쾰른. 독일 3대 대성당 투어
슈파이어와 하이델베르크
오늘은 먼저 슈파이어로 가서 성당을 구경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공사 중이다. 유럽 사람들은 비수기만 되면 온 동네에 비계를 설치하고 공사판을 벌이는 게 종특인가 보다. 가는 길에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가 매우 좋아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다. 성당과 구시가지가 작아서 금방 둘러보고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매번 밖에서 겉핥기만 하는 것 같아 이번에는 큰맘 먹고 하이델베르크 성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하필 일요일 오후라 주차장이 만차여서 한참을 대기하다 겨우 주차했다. 푸니쿨라를 타고 10분 정도 기다려 성에 올라갔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좀 특이하다. 17세기에 프랑스군한테 탈탈 털리고 폭격당한 데다가 벼락까지 맞아서 반파되었는데, 이걸 굳이 복원하지 않고 그 무너진 잔해를 그대로 뒀다. 근데 오히려 그 박살 난 모습이 쓸쓸하고 낭만적이라며 옛날 시인들이랑 예술가들이 엄청 빨아줬단다. 부서진 붉은 사암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구시가지 경치가 아주 훌륭해서 아내가 참 좋아했다. 성 지하에는 옛날에 세금 대신 거둬들인 와인을 보관하던 22만 리터짜리 초대형 와인 술통도 있었다. 얼마나 술에 진심이었으면 집채만 한 술통을 만들었을까.
모기와의 사투, 유럽 화장실에 대한 분노
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귓가에 모기가 위잉거린다. 잘 때 빛 한 줌, 소음 한 방울도 허용 못 하는 극강의 수면 예민보스인 나에게 이건 테러나 다름없다. 불을 켜고 사투 끝에 겨우 한 마리를 잡고 자려는데 또 한 마리가 위잉거린다. 반지하라 그런지 모기 놈들 전투력이 남다르다. 결국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섰지만 수면 부족으로 몸이 천근만근이다. 마인츠에 도착했는데 날씨마저 우중충하고, 일요일이라 가게들도 싹 다 문을 닫아 도시 전체가 축 처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마인츠 대성당과 광장은 멋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차장에서 화장실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맸다.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 것도 열받는데 찾기조차 힘든 유럽의 화장실 시스템은 진짜 겪을 때마다 욕이 나온다. 여긴 돈 쓰고 며칠 여행이나 올 곳이지, 내 방광을 지키며 오래 살 동네는 절대 못 된다.
다음 목적지인 트리어로 향하는 길, 사고가 났는지 아우토반이 주차장으로 변했다. 모기 때문에 한숨도 못 잔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겼다. 아내가 운전하는 동안 조수석에서 기절하듯 잤다. 트리어에 도착하니 다행히 날씨가 맑아졌고 광장에도 활기가 넘쳤다. 성당 두 군데를 알차게 찍고 숙소로 가는 길, 창밖으로 예쁜 꽃밭과 풍력발전소가 어우러진 경치가 피로를 씻어준다. 다행히 이번 숙소는 지상이 확정된 넓고 쾌적한 곳이다. 저녁엔 아내가 동그랑땡을 부쳐줬는데 진짜 눈물 나게 맛있었다. 매일이 알차지만 체력은 점점 갉아 먹히는 나날이다.
엘츠 성의 한복 공주와 하리보 천국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를 뚫고 엘츠 성에 도착해 아이를 준비해 간 한복으로 갈아입혔다.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보고 미소 지으며 예쁘다고 난리다. 내 딸이지만 진짜 숲속의 공주가 따로 없다. 성 자체는 산속에 숨겨져 있어 꽤 볼만했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내부도 보자 싶어 오디오 투어를 결제한 게 화근이었다. 한국어 지원이 안 돼서 영어 투어로 들어갔더니, 수능과 토익으로 단련된 내 활자용 영어 실력으로는 원어민의 쏼라쏼라를 반도 못 알아들었다. 끙. 돈이 너무 아까웠다.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긴 하지만 투어 가성비는 영 꽝이다.
점심은 대충 피자로 때우고 아이의 최고 기대주, 본(Bonn)에 있는 하리보 팩토리로 향했다. 여기가 바로 하리보(Hans Riegel Bonn)의 본고장이다. 도착하자마자 평소 굼뜨던 아이가 빛의 속도로 신발을 갈아 신는다. 들어가 보니 공장이라기보단 젤리계의 코스트코, 아니 하리보 천국이다. 매장 스케일이 진짜 어마어마하다. 세상의 모든 젤리를 다 모아둔 것 같다. 동생들 선물까지 핑계 삼아 젤리를 무진장 쓸어 담았다.
고딕의 절정 쾰른 대성당과 호엔촐런 다리
마지막 일정은 쾰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거대한 쾰른 대성당이 눈앞에 압도적으로 튀어나왔다. 157미터짜리 고딕 양식의 끝판왕답게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웅장함이다.
여기서 팩트 하나 짚고 넘어가자. 흔히들 쾰른, 마인츠, 트리어 대성당을 묶어서 독일 3대 성당이라고 부른다. 사실 역사적으로 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3대 성당(카이저돔)은 슈파이어, 마인츠, 보름스 성당을 뜻하지만, 관광객들 입장에선 압도적인 스케일의 쾰른, 천년 역사의 마인츠,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 시대의 트리어 성당을 3대장으로 쳐준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이번 여행에서 그 어마어마한 놈들을 다 찍었으니 사실상 독일 성당 투어의 끝판왕 퀘스트를 깬 거나 다름없다.
쾰른 대성당의 재밌는 건 성당 색깔이다. 나는 원래부터 새까만 흑마법사 성당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밝은 사암으로 지은 게 산성비와 산업혁명 시대의 석탄 그을음을 맞고 시꺼멓게 변색된 거란다. 근데 때가 타서 더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검은빛 덕분에 다크 판타지 최종 보스 던전 같은 시크함과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 건축의 완성은 그을음인가.
웅장한 성당 안을 홀리하게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와 아이가 또 투닥투닥 싸우기 시작했다. 유럽 최고의 신성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모녀의 난. 여행 피로가 쌓이니 사소한 일에도 불똥이 튄다. 둘 다 불러다 놓고 따끔하게 혼냈더니 양쪽 다 뾰루퉁해졌다. 어휴.
어색해진 공기를 수습하며 성당 바로 뒤에 있는 호엔촐런 다리로 향했다.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이 거대한 철교 옆면에는 전 세계에서 온 커플들이 채워놓은 사랑의 자물쇠가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저 무거운 철덩어리를 달아놨겠지만, 철저한 팩트와 통계에 기반해 볼 때 저 커플들 중 절반은 이미 헤어졌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커플지옥 솔로천국.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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