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편 22 : 벨기에 - 브뤼셀, 겐트 & 프랑스

아미앵, 루앙, 에트르타, 옹플뢰르

by 박운서

브뤼셀 오줌싸개의 반전 추억

아침 일찍 그 지옥 같았던 안트베르펜 3층 숙소의 좁디좁은 계단에서 캐리어를 낑낑대며 내렸다. 아침부터 강제 하체 운동을 제대로 했다. 유럽 놈들은 엘리베이터의 위대함을 모른다. 짐 싣고 바로 브뤼셀 출발. 벨기에 통신망은 도대체 왜 이따위인지 자꾸 데이터가 끊겨서 폰을 껐다 켰다 난리를 쳤다.

시내에 주차를 하고 그랑플라스 광장에 들어섰는데, 사방을 둘러싼 황금빛 건물들이 꽤 웅장해서 나쁘지 않았다. 이어서 그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으로 향했다. 세계 3대 허무 관광지라길래 마음을 비우고 갔는데, 운 좋게도 마침 동상에 옷을 입히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꼬맹이 동상에 기타도 메어주고 한참 호들갑을 떨더니 갑자기 동상을 깃발로 휙 가려버렸다. 뭐지 싶었지만, 어쨌든 맨몸이 아닌 옷 입은 오줌싸개를 본 걸 다행이라 여기며 길거리 초콜릿과 와플로 달달하게 점심을 때웠다.

그런데 아까 지나쳤던 오줌싸개 동상 쪽으로 다시 가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본격적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직원이 리모컨 같은 걸로 조종을 하니 갑자기 오줌싸개 꼬맹이의 오줌발이 소방 호스처럼 거세졌다. 그러더니 모여있던 사람들 머리 위로 오줌(물)을 시원하게 갈겨버렸다.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깔깔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유쾌한 광경이었다. 허무 관광지인 줄 알았더니 졸지에 워터밤 축제 현장이었다. 권은비는 없지만. 내 인생 최고의 반전 꿀잼 관광지 등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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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보는 사극과 수건 마마

다음은 겐트(Ghent)로 이동. 원래 숙소 가는 길목이라 들른 건데 도시 자체는 크게 볼 게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아이가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졸지에 벨기에 한복판에서 한국 식자재 마트를 뒤져 김을 사 오는 기적의 관광 루트를 개척했다. 주차장에 잘못 들어가서 헤매고 있는데 지나가던 현지 아저씨가 엄청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다. 오기 전에 벨기에 인종차별 심하다는 괴담을 많이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차별은커녕 우리 아이 귀엽다고 웃어주는 동네 사람들 천지였다.

차 안에서 아이와 함께 한국 사극 드라마를 봤는데, 꼬맹이가 듣기엔 옛날 궁중 언어가 너무 어려웠나 보다. 후궁을 부르는 '숙원 마마'를 수건 마마라고 부르고, 왕을 부르는 '전하'를 여보세요 전화로 알아듣고 따라 하는데 귀여워서 아내랑 배를 잡고 뒹굴었다. 아이의 순수한 해석 덕분에 운전 피로가 싹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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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프랑스 입성과 80일간의 세계일주

국경을 넘어 드디어 프랑스에 세 번째로 입성했다. 표지판과 사람들의 말이 다시 익숙한 불어로 바뀌었다. 야금야금 몽생미셸까지 전진하는 본격적인 프랑스 소도시 여행의 시작이다.

루앙으로 가기 전, 차 안에서 아이에게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에 대해 역사 교육을 시켰다. 그런데 잔 다르크가 억울하게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는 대목에서 아이가 감정을 주체 못 하고 으앙 울어버렸다. 와, 우리 딸 공감 능력 최소 F 100%다.

루앙 가는 길에 들른 아미앵 대성당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고 웅장했다.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동네마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어서 헷갈리는데, 노트르담(Notre-Dame)은 프랑스어로 우리의 귀부인, 즉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파리뿐만 아니라 웬만한 도시의 대성당은 다 마리아를 모시는 노트르담 성당인 셈이다. 특히 이곳 아미앵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이 아미앵은 아주 흥미로운 도시다. 바로 소설가 쥘 베른이 여생을 보낸 곳이다. 쥘 베른이 쓴 가장 유명한 소설 제목이 바로 '80일간의 세계일주' 아니던가.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지금 하고 있는 이 험난한 여행도 정확히 80일짜리 세계일주다. 아미앵 한복판에서 쥘 베른의 흔적을 밟으며 우리가 80일간의 세계일주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니 기분이 참 묘하고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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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과 잔 다르크의 진실

루앙은 사람도 많고 엄청나게 번화한 도시였다. 이곳의 대성당도 웅장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루앙이 잔 다르크가 실제로 화형당했던 장소라는 점이다. 백년전쟁에서 잉글랜드군에 밀려 풍전등화였던 프랑스를 구한 구국 소녀였지만, 정치적 계산과 배신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결국 19세의 어린 나이에 이교도 마녀로 몰려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재를 남기고 타들어 갔던 옛 마르셰 광장 터와 십자가 모양의 잔 다르크 성당을 둘러보며, 아이와 함께 역사의 잔혹함과 영웅의 씁쓸한 최후를 짚어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가슴 아픈 역사는 역사고, 배고픈 건 배고픈 거다. 근처 로컬 빵집에서 대충 빵을 사 먹었는데 입에서 살살 녹는다. 게다가 악랄했던 스위스 물가에 비하면 가격도 천사다. 프랑스 빵 물가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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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모네의 절벽과 영국 통행세

체크아웃 시간이 낮 12시까지라 모처럼 늦잠을 자고 천천히 출발했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우중충하다. 40분 정도를 달려 에트르타에 도착했다. 주차 정산을 막 끝내자마자 거짓말처럼 머피의 법칙이 발동하며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고 아이에게 우비를 입힌 채 행군을 시작했다.

거센 비바람을 뚫고 올라간 코끼리 절벽 쪽의 경치는 비가 와도 기가 막혔다. 아이도 씩씩하게 잘 올라왔고,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해안선은 흐린 날씨 특유의 쓸쓸하고 웅장한 맛이 있었다. 인상파 화가 모네가 여기서 왜 수없이 붓을 들었는지 알 것 같다. 반대편 절벽도 가보고 싶었지만 비가 점점 굵어져서 쿨하게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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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옹플뢰르로 넘어갔는데 비가 더 거세게 쏟아진다. 무료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도저히 나갈 엄두가 안 나서 차 안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알고 보니 이 예쁜 항구 도시가 그 유명한 작곡가 에릭 사티의 고향이란다. 아내에게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틀어주니 "아, 침대 광고 브금!" 하며 단번에 알아챈다. 역시 예술은 실생활에 엮여야 제맛이다. 우산을 쓰고 항구를 한 바퀴 쓱 둘러본 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숙소로 2시간을 더 달렸다.

오후 4시쯤 숙소에 일찍 도착하니 시간 여유가 넘친다. 아내는 일찌감치 저녁 준비를 하고, 나는 미뤄뒀던 영국 ETA(전자여행허가) 신청을 켰다. 가족 세 명 거 신청하는데 돈이 무려 9만 원이나 들었다. 뭐 하러 이런 귀찮은 걸 만들어서 돈을 뜯어가는지, 섬나라 놈들 통행세 한번 더럽게 비싸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에게 내년쯤 크루즈 여행을 가보자고 슬쩍 떡밥을 던졌다. 사실 매일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하고, 짐 싸고 풀고, 주차장 찾고, 톨비 뜯기고, 에어비앤비 호스트 눈치 보는 이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다. 차라리 밥 다 주고 잠자리 고정된 크루즈나 한 달 살기가 내 실용주의 철학에 훨씬 맞겠다는 깨달음이 온다.

따뜻한 물에 일찍 씻고 건조기에 뽀송하게 세탁기까지 돌리며 하루가 마무리된다. 내일 몽생미셸 갈 때는 제발 날씨 요정이 도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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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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