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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W Jun 25. 2022

5/1일의 영화들. /23th JIFF

은빛 지구, 코마, 비밀의 언덕(GV), 부화

은빛 지구

(Na srebrnym globie)

시네필 전주 1.5 / 5


더 이상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마 제발.


다음부터 영화를 고를 땐 좀 더 신중히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

워낙 고전이기도 하고(1987년작), 긴 러닝타임에 영화를 만들다가 중간에 중단되었고, 극 사이에 필름이 끊겨 제대로 복원이 안된 컷들도 있다는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냅다 예매해 버렸다. 그리고 저 스틸컷과 함께 시놉시스 설명에 "관객의 트라우라를 자극하는 장면이 나오니 주의 바랍니다"라는 문구 또한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다음에는 절대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지 말라고 정신 차리게 해 준다. 영화는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우주비행사들이 자신만의 세계, 문명을 만드려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여준다.


생각보다 꽤 철학적인 영화였다.(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말.) 극 중간 주인공들이 마치 '인생은 과연 무엇일까..?"와 같은 일련의 질문을 던지고 혼자 대답하면서 읊조리는 대사들,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은 나의 귀소본능만을 강하게 자극시켰다. 배우들의 끝도 없는 진중한 대사들과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들, 생각지 못한 잔인한 장면들은 정말이지 내가 저 행성에 함께 도착해서 같이 미쳐버리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감독님 만약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성공하셨네요..ㅠ) 영화가 시작된 지 대략 30분-1시간 정도 사이에 사람들이 유독 많이 상영관을 떠나갔는데, 나는 또 그 기회를 놓치고 끝까지 고통 속에서 165분의 러닝타임을 함께했다. 차라리 눈을 감자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힘들었고, 그렇다고 눈을 뜨고 있자니 두 배로 기운이 빠진다. 다소 호불호가 강하게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살면서 본 영화 중 손에 꼽게 괴로운 영화. 

*은빛 지구로의 탈출이라는 영화도 있다고 들었는데, 절대 안 볼 거예요.








코마

(Coma)

마스터즈 2.5 / 5



이걸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바로, '스틸컷에 속지 말자.'이다. 영화 줄거리뿐만 아니라 시각적 요소 또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 컷을 보자마자 또 이건 꼭 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아슬아슬한 연출을 좋아하는 편인데, 사실 저 장면은 극히 일부분이라 극 전체의 분위기를 아우르지는 않는다. 


제목인 '코마'는 주인공이 구독하는 유투버의 이름이자,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를 오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코시 국인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일상과 흡사하게 현실보다는 꿈과 같은 가상의 세계, 다른 매체를 보고 있는 모습들을 마치 카메라가 그들의 눈인 것처럼 하나하나를 밀착하여 탐색한다. 어느덧 비대면의 사회에 적응하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친구들과도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매체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나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할 뿐이다. 또한 주인공의 반복되는 악몽과 충동적인 생각들은 막막한 현재 상황의 무력함과 우울함을 담아낸다. 그래서 결국 말하고 싶은 게 뭔데?라는 질문에서 영화는 멈춘다. 끝내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는 스토리가 다소 아쉽다.








비밀의 언덕

(The Hill of Secrets)

한국경쟁 4.5 / 5



다음번 전주에 올 때는 한국영화 예매 비중을 좀 더 늘려야겠다. 전주에서 본 작품 중에 제일 좋았다. <나는 보리>와 같이 아이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잘 표현한 영화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명은이가 글짓기에 소질을 보이면서 대회에 나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써 내려가야 하는 이야기들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는 부모님과 매번 투닥거리는 가족이 부끄러웠던 명은이는 가족에 대해 거짓말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된다. 그런 그에게 가족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신의 친구이자 경쟁자가 생기며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결국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을 선택하게 된다. 


후반부 명은이의 새 학년 새 학기 첫날 수업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족 기초조사서라는 가족의 학력 및 직업과 같은 세부 사항들을 적는 종이를 나눠주고, 명은이는 또다시 고민을 하게 된다. 선생님은 이런 사항들은 사실 궁금하지 않다며 종이를 뒤집으라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한다. 그러자 명은이는 밝게 웃으며 자신 있게 글을 써 내려간다. 결국 명은이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에 한 발짝 가까워지고, 한 뼘 더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하게 되는데, 그 비밀을 어느 정도까지 보여줘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지만, 진심을 앞세워 말하는 영화의 따스한 시선이 참 좋았다. 명은이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던 가족들도 사실은 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장면들, 명은이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는 선생님의 마음까지. 

*GV에서 문승아 배우 너무 귀여웠다. 다음 차기작은 꼭 액션물 하시기를!








부화

(Pahanhautoja)

불면의 밤 3 / 5



부천 영화제만 공포 맛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주도 은근히 괜찮아서 다음에도 또 도전해보고 싶다!

겉보기에 완벽하고, 많은 사람들의 워너비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티니아네 가족이 우연히 집안으로 침입한 까마귀와의 악연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보여준다.


티니아는 숲에서 죽은 까마귀의 알을 발견하게 되고, 왠지 모를 동정심으로 키우게 된다. 사실 까마귀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형체를 지니고 있다.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저 아이는 귀엽다고 최면 걸게 된다. 가족의 불안정함 속에 그는 새에게 의지하게 되고, 새는 티니아와 동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그가 직접 하지 못하는 마음속 어두운 충동들을 대신하게 된다. 흥미로웠던 건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어서 그 사람과 외형이 똑같이 변하는 내용이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와 흡사한 방식으로 새는 티니아와 외형까지 똑같아진다. 핀란드에도 이런 동화가 있나..? 


결국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그 존재는 오히려 자신이 티니아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상황에 이르고,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사실 새와 비슷한 괴물의 형체가 자꾸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비주얼 쇼크인데, 그 존재가 나서서 일을 저지를 때마다 티니아를 의심하는 상황 또한 엄청난 텐션이 있다. 늦은 시간에 본 영화라 상영관을 나와 숙소로 들어갈 때까지 그 새가 나를 쫓아올까 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공포를 즐겨서 만족스러웠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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