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다.

by nahyeon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시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 온화하고 조용하던 할머니는

어느새 잔소리가 많아졌고, 사소한 일에도 엄마를 찾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괜히 밉기도 했다.

곁을 지키느라 지쳐가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안 힘들어…?”

내 물음에 엄마는 웃으며 대답했다.

“힘들지. 그런데…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게 내 오랜 소원이었어.

끝까지, 곁에 있고 싶어.”


엄마는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와 일찍 결혼했고, 그 뒤로 오랫동안 할머니와 떨어져 지냈다.

그 그리움은 오래 묵었고,

함께하는 시간은 늘 아쉬웠다.


그래서였을까.

가끔 짜증을 내면서도, 그 끝엔 늘 웃고 있던 엄마는

“힘들다” 말하면서도, 어쩐지 행복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알았다.

늘 나의 ‘엄마’로만 여겼던 그 사람이,

누군가의 여린 ‘딸’이라는 걸.

그 당연한 진실이 가슴 깊이 아려왔다.


3월 어느 날,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할머니가 그러시더라. 4월, 자기 생일쯤이면 네가 상을 치르겠다고… 고생 많았다고.”


우린 웃으며 넘겼다.

“아이, 설마요. 이렇게 정정하신대…”


4월이 왔고, 나는 출장을 떠났다.

며칠 뒤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식사를 안 하셔. 곡기를 끊으셨어.”

그리고 또 며칠 뒤,

“물도 안 드신 지 일주일이 지났어…”


한국으로 돌아가기 나흘 전,

할머니는 조용히, 아주 평온하게

그토록 원하던 엄마의 집에서 눈을 감으셨다.


마지막으로 뵈었던 날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자꾸만 옆에서 자라며 떼를 쓰셨다.

나는 그저, 치매가 심해졌구나 생각했다.

몇 번이고 방으로 모셨고,

할머니는 어두운 거실로 나와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다시, 또다시.


출장 내내 그 밤이 마음에 걸렸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한국 가면 꼭 할머니랑 같이 잘 거야. 기분이 이상해…”

엄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때까지… 계시려나.”


할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걸까.

그 기다림이, 작별의 준비였다는 걸.

그 밤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이었다는 걸.


한때 그렇게 시끄러웠던 잔소리와 소란은

어느새 고요히 가라앉고,

가족의 품 안에서, 너무도 평온하게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


그날,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그 손길을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눈물이 나진 않았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떠오른다.


힘들다 말하면서도 웃음 짓던 그 얼굴,

그 모든 순간들이,

엄마에겐 얼마나 소중했을까.


누군가의 여린 딸이었던

내 엄마가,

그 여린 딸은,

아주 오래도록

엄마의 품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밤,

이 낯선 호텔방 구석에 앉아 이 글을 쓴다.


할머니,

제 꿈에 꼭 한 번 와주세요.


그날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

말하지 못한 감사와 미안함,

마음 한켠에 머무르고 있다.


늘 엄마 걱정뿐이셨던

나의 ‘엄마의 엄마’

이젠 제가 엄마 곁을 지킬게요.


그러니

부디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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