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들의 이야기
1.
창수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수영교실 같은 것이 없었다. 창수는 80년대에 또래들이 모두 그랬듯, 바다에서 놀며 수영하는 법을 배웠다. 만약 창수가 어렸을 때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 돈을 낸다고 했으면 모두가 비웃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수영교실 신청서를 내밀며 수영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창수는 웃었던 것이다. 딸은 아빠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어리둥절하면서도 같이 웃었다.
바닷가 마을에 살던 창수는 매일 형들을 따라 해변가에서 놀았다. 수영을 못 했을 때는 얕은 물에서만 놀았다. 물에 뜨는 법은 알아도, 파도가 계속 치는 해변에서 놀기 위해서는 뜨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창수가 대여섯 살 때,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팔 높이 정도의 깊이에 들어가서 두 팔로 모래를 짚고, 온몸에 힘을 빼고 모래에서부터 약 30cm 정도 높이에서 떠 있으면 파도가 올 때 자연스럽게 해변으로 밀려 나왔다. 파도의 힘이 자신을 공중으로 힘껏 밀어주는 것을 느끼며 창수는 팔을 휘두르고, 발로 물을 힘차게 치며 모래사장으로 밀려 나왔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서 결국 창수는 나중에는 파도를 거스를 수 있을 정도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영을 배운 후, 창수는 해변가에서 바다 깊은 곳까지 자신의 세계를 넓혀갈 수 있었다. 창수와 친구들은 종종 빈 깡통을 주워 잡은 낙지, 게, 소라 등을 바닷물과 넣고 버려진 고무신에 불을 붙여 삶아 먹었다. 꼭 고무신이어야 했다. 바닷가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젖어있어 불이 붙지 않았다. 고무신은 지독한 냄새가 나긴 해도 오랫동안 탔다.
매일 바다에 출석하던 창수는 고등학생 때부터는 바다에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애월에서 시내로 고등학교를 오게 된 창수는 어머니가 힘들게 구해 준 단칸방에서 지내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시내에서 했고, 신혼집도 시내에 구해 지냈다. 가끔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만 바다를 지나쳤다. 최근 몇 년 사이 관광지로 유명해지며 놀랍도록 변해버린 해변가를 보면 창수는 자신이 어렸을 때 눈 감고도 다녔던, 자신의 왕국을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서운했다.
창수는 딸의 신청서에 사인을 해주며, 딸이 수영을 배우면 한적한 해변에 가서 함께 수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처럼 파도치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고무신 해물탕은 못 먹더라도 근처 유명한 해물탕 집에 가서 딸이랑 밥을 맛있게 먹어야겠다 다짐했다.
2.
민정은 2년 전, 제주도 관광 붐이 일었을 때 남편과 연고 하나 없는 제주로 이사했다. 남편이 5년 동안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에서 일한 경험과, 민정이 직장을 다니며 모았던 돈을 합쳐 둘은 제주도에 그들만의 작은 식당을 차리기로 했다.
민정이 해변가의 건물을 임대하고, 집을 알아보는 동안 남편은 제주도의 인기 있는 식재료들을 이용한 메뉴를 개발했다. 집값과 임대료가 몇 년 새 많이 올라 100% 완벽하게 맘에 드는 곳을 구하긴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집과 식당을 구했다. 남편이 개발한 메뉴는 입맛이 까다로운 민정도 감탄할만한 딱새우 리조또와 해산물 피자였다. 민정은 식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맛만으로는 부족한 것을 알았기에,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여 어디를 찍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도록 하는 데에 성공했다. 전 직장에서 알게 된 디자이너 친구에게 사정사정해 싼 가격에 예쁜 식당 로고와 메뉴판도 제작했다. 민정과 남편은 자리가 잡히자 그 친구를 초대해 보답으로 제주도 여행을 시켜주었다.
첫 다섯 달은 손님이 거의 없어 절망적이었다. 민정이 아무리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하고, 블로그를 써 가며 홍보를 해도 비슷한 포스팅이 매일 몇 천 개씩 올라왔다. 민정과 남편은 내색을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한숨이 늘고 짜증도 늘었다. 거의 싸우지 않았던 둘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에는 매주 싸웠다. 민정은 제주도에 식당을 하자고 말을 꺼낸 남편이, 남편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실행에 옮긴 민정이 원망스러웠다. 둘은 싸우고 나면 맥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봤다. 파도가 치는 모습을 보면서 번갈아 가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둘이 한숨을 동시에 내쉬면, 다른 말 없이 서로를 용서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또 싸우고 바다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구독자가 7만 명 정도 되는 유튜버가 제주도 여행 중에 우연히 민정네 식당에 들러 호평을 남긴 것을 계기로 식당은 소문이 나며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이제 민정과 남편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그래도 꼭 일주일에 한 번씩 식당을 닫은 후에 밤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한숨을 쉬는 대신 그들의 식당을 소개해준 유튜버의 영상에 감사의 댓글을 남겼다.
3.
보영은 바닷가에 사는 것이 싫었다. 소금기 센 바람이 맨날 머리를 헝클여 트리고, 금방 떡지게 만드는 것이 싫었다. 특히 앞머리를 망치는 것이 제일 싫었다. 보영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앞머리가 없는 친구는 두 명 밖에 없었다. 앞머리가 빽빽하게 이마를 가리고, 적당한 각도로 휘어 있어야 유행하는 머리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보영이 학교에 가기 전에 공들여 고데기를 한 앞머리는 버스를 기다리는 10분 동안 금방 풀려 미역처럼 보영의 이마에 착 달라붙어 버렸다
보영의 엄마는 중학생인 보영이 외모에 너무 많은 시간은 투자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온갖 스프레이를 써보고, 헤어롤을 앞머리에 매일 달고 다니던 보영이 포기한 듯하자 기뻐했다. 하지만 보영은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보영은 집에서는 머리를 대충 빗고만 나와 매일 20분씩 일찍 등교해서, 학교 화장실에서 고데기로 머리를 완벽하게 세팅했다.
4.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하는 지민은 ‘육지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서울 촌놈'이었는데, 서울에서 태어나고 20년 넘게 살았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돌고래랑 사랑에 빠져 제주도에 내려와 돌고래를 연구하게 되었다.
돌고래의 소리를 녹음하고 습성을 연구하면서 수없이 배를 탔지만, 돌고래를 아무리 사랑해도 바다는 사랑할 수가 없었다. 연구를 위해서는 작은 배를 타고 다녀야 해서 지민은 매번 멀미를 했다. 배를 타기 전날 밤마다 지민은 5년 전부터 교회를 나가지 않았음에도 바다가 잠잠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럴 때만 기도하는 지민이 괘씸해서인지 바다가 잠잠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논문이 완성될 때쯤, 지민은 돌고래에 대해서만큼 멀미약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5.
명숙은 학교 여자 선생님들 중에서 제일 키가 컸다. 175cm의 키에 몸집도 작지 않았다. 명숙이 선생님이라고 하면 다들 체육 선생님으로 오해했다. 국어 선생님이라고 대답하면 다들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목청도 좋아 명숙이 아이들에게 호통을 칠 때면 복도 끝 쪽의 반에도 잘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명숙의 목청이 아무리 좋아도 사춘기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명숙은 수업을 잠시 멈추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러 레퍼토리 중 하나는 유독 바람이 센 날에 들려주었다. 명숙은 어렸을 때 살던 해변가 마을에는 바람이 유독 셌다. 그래서 명숙의 어머니는 바람이 센 날에 명숙의 주머니에 꼭 주먹보다 조금 작은 돌을 한 두 개씩 넣어주셨다. 유독 작고 마른 명숙이 혹시라도 바람에 날아갈까봐 그런 거였다. 아이들은 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풉'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말라며 입을 모아 “에이~”하고 합창했다.
명숙의 레퍼토리에는 거짓말이 반 정도 섞여 있었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진짜였다. 명숙은 초등학교 때 엄청 마르고 작아 항상 1번이었다. 중학교 이후 1년에 키가 10cm 쑥쑥 컸을 때는 다들 ‘못 알아보겠다'며 놀랐다. 유일하게 놀라지 않았던 사람은 명숙의 어머니였다. 명숙의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내가 너한테 얼마나 귀한 것만 먹였는데, 당연하지. 너 먹은 전복 내가 다 팔았으면 지금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 있었을걸."하고 말했다. 명숙은 살면서 전복을 먹으면 키가 큰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키가 작아 고민이 많은 아들에게 전복을 자주 사 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