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피아노쌤 Mar 15. 2024

똥 손 남편 땜시 복장 터집니다


이사를 하면서 비데를 교체하기로 했다.  비데 정도는 설치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 보여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 받았다. 남편은 당당하게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고 박스를 개봉했다. 늦은 퇴근 후 거실에 펼쳐진 광경은 뜨악~ 박스가 한구석에 밀쳐져 있고 비데를 안고 끙끙거리는 남편은 설명서를 보면서 깨알 같은 글씨에 궁시렁이다 큐알코드를 찾았으니 찍으니 자꾸 광고가 나온다고 설명서 영상이 안 보인다고 한다. 설명서만 봐도 설치하는 거 아닌가? 지난번 시동생은 뚝딱 혼자 잘하던데... 속으로 생각만 한다. 







오메나... 내 폰으로 큐알을 찍어보란다. 자기 폰은 잘 안된다고... 맙소사! 그런 게 어딨어? 그치만 아무 말 안 하고 내 폰으로 큐알을 찍어 설치 동영상을 켜줬다. 똥 손 남편임을 이미 알기에 복장 터지는 순간을 참았다. 남편은 왜? 내 폰은 안되고 당신 폰만 되냐고 한다. 훅~ 올라오는 두 번째 복장을 누른다. 동영상을 돌려보며 이리저리 맞춘다. 난 옆에 가질 않는다. 쳐다보면 잔소리할까봐 아니 내가 한다고 할까 봐 남편이 마무리하게 기다리기로 한다. 



이제 알겠는지 공구통에서 뭔가를 꺼내서 이리저리해본다. 여전히 어설픈 저 움직임은 뭐지? 아니나 다를까? 맞는 공구가 없다면 할 수 없다고 한다. 복장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다시 누른다. 아~ 잔소리하고 싶어 죽겠다. 아무 말 말자... 내일 관리실에서 공구를 빌려서 해보겠다는데 내일을 기다려봐야지



거실 한구석에 비데가 있다. 남편이 설치 못한 비데가 있다. 내가 가서 읽어보고 설치하고 싶다. 근데 참는다. 똥 손 남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안된다고 매번 시동생 시키고 아주버님이 대신해 주니 정작 본인은 뒷걸음질이다. 



아침이다. 뭔가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다시 비데를 설치 중이다. 학원 공구통에서 뭔가 가지고 왔다며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짠! 성공이다. 하하하






형님은 어릴 적에도 남편이 일하는 데는 영 꽝이었다고 전해주신다. 아들 4형제가 산에 나무하러 가면 큰 아주버님은 큰지 대개 이 한짐 가득이고 작은 아주버님은 작은 그보다 작은 양을 셋째인 남편은 작은 지개에 나무를 엉성하게 해오다 걸어 내려오면서 반쯤 흘려가며 온다는 것이다. 막내인 시동생이 주섬주섬 떨어진 나무를 주워서 안고 왔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우리 식구들끼리 웃는 이야기 중 하나다. 어릴 때부터 일에는 통 관심도 없었다고 어머님 아버님도 크게 기대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 가는 걸 좋아해서 헌 책 사고, 국제시장서 중고  LP 판사고, 진공관 앰프 만들어 음악 듣고 자기 좋아하는 것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골에서 하는 일은 영~ 별로다. 근데 진공관 앰프는 어떻게 만들었지?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갸우뚱? 






어찌 됐건 지금 그는 손으로 하는 일은 꽝이다. 긴 세월 몸으로 하는 일을 안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년을 마친 후 우리 땅을 좀 가꾸고 작업을 할 일 생겼다. 손봐야 하는 일에도 형제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둘이는 엄두를 못 낸다. 워낙 형제간 의가 좋은 집안이라 SOS를 치면 모두 집합하고 내일처럼 도와준다. 사실 밭일 후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이 더 재밌다. 6형제가 모두 울산 고향 근처에 이웃해서 살고 있다. 20분이면 오가는 거리라 무슨 일만 있으면 시간 되는 형제들은 금방 모인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마음과 다르게 뒷짐이다. 



요즘은 주말이면 울산행이다. 토요일 박물관 대학 공부하러 가야 해서 더더욱 빠지지 않고 울산을 가야 한다. 갈 때마다 울산 비닐하우스를 관리하러 간다. 봄이라 밭일도 좀 해야 한다. 열심히 하려 애쓰고 적극적으로 땅 관리를 하려고 하는데  생각만큼 안되는 모양이긴 하다. 그이가 삽질을 하거나 뭔가 뚝딱거리는 모습을  식구들은 가만히 지켜본다. 지켜보다가 마무리는 아주버님이나 시동생이 도와준다. 다른 사람들은 공무원 출신이라도 잘하던데... 공부 쪽으로 발달한 머리는 지금도 공부와 책 글쓰기에 재마를 붙이고 있다. 일하는 머리는 영 별로다. 나이가 드니 공부하는 남편보다 일 잘하는 남편이 더 좋아 보인다. 가끔 작은 일에 복장이 터져서 갑갑하다. 



비데를 설치하는데 내 복장은 왜 터지는지? 옛일들이 떠오르며 추억에 잠기는 건 왜인지? 그래도 박수 쳐주며 커피 한 잔 웃으며 마셨다. 살면서 또 복장 터지더라도 가슴 쓸어내리는 일이 있어도 잘 기다려줘야지. 남들이 쉬운 일도 내게 모두 쉽지는 않다. 몸으로 일하는 게 초보인 그를 기다리고 토닥이며 둘이 손발 맞춰 지내면 될 일이다. 뭐~ 좀 못하더라도 복장 터지지 말자. 터지는 내 복장은 내가 성질이 급해서 그럴 테니 나도 좀 숨 고르기 하고 도와가며 지내야지. 


휴~ 간단하리라 생각한 비데 하나에 별 노무 생각이 다 든다. ㅎㅎㅎ 우습기도 하면서~ ^^




#똥손 #비데설치 #글쓰는피아노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