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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피아노쌤 Mar 17. 2024

죽음이 물었다


울산 집으로 가는 길 300km 운전을 남편에게 맡기고 작은 독서 등에 의지하며 책을 끝까지 완독했다. 안나의 책가방 오프모임이 있는 날이라. 설레는 마음이다. 마침 울산서 모임을 한다고 하니 한결 마음 편하다. 


운전 중에 남편은 제목이 뭐냐고 물어온다. '죽음이 물었다' 브라질 완화의료의 최고 권위자의 책이라고 소개했다. 완화의료? 완화치료? 나도 처음 듣는 용어다 남편도 낯선 용어라 궁금해한다.


완화의료란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 특히 통증을 완화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 의학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환자는 죽음을 찾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도록 돕는다. 안락사가 아니라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주는 일이다. 


현대의학으로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할 때 통증을 없애주는 것이다.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웰다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을 배우지만 사망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공부를 못했다고 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은 읽어주는 내용을 듣더니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지만 신이 우리에게 준 평등하고 공평한 선물이 있지. 뭔 줄 아는교?"

뜻밖의 질문이다. 책을 반쯤 덮는다.

"시간과 죽음이요"

"맞지"

"그래서 살만한 거지" 


그리곤 그와 나는 말이 없다.


며칠 전에  '아부지의 일기'라는 책에서도 암 환자인 저자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두 책이 일맥 상통하는 이야기는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다가오는 삶의 시간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모래시계에 정해진 삶의 시간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우린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그렇게.


나도 그러하다. 죽음이 존중되어야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


죽음보다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이 더 고통스러운 것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잘 죽어가는 것이 복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죽어가고 있다는 깨달음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디리란 인식을 동반하는 것이다. 아무도 억만금을 주고도 못 사는 시간! 생의 모래시계는 오늘도 지금도 스르르 흘러내린다.






브라질의 의사인 저자 '아나 아란치스'는 동양의 자연이 흙, 물, 불, 공기 4원소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한다. 브라질 의사가 동양 사상을? 


우리가 죽을 때 몸을 이루고 있던 원소들이 해체되는 것이라 한다. 흙의 붕괴는 몸이 붕괴이다. 그다음으로 물의 붕괴이다. 사람이 죽을 때 탈수를 일으키고 소변량이 적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체액의 감소, 소화관 기관지 분비물의 효소가 줄어들며 점막이 마른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약간의 탈수상태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신자의 기능이 멈추고 있을 때 사랑하는 가족들은 수액을 처방해 물을 주입한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죽음을 방해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몸에 개입해 죽음을 더 힘겹게 한다는 내용은 깜짝 놀라움이다. 더 살게 하려고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 오히려 환자를 방해하는 일이라니...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아는 순간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들이 자연의 순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의식 없이 사는 상태에서 연명치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무의미한 호흡의 연장은 당사자에게도 남은 가족들에게도 민폐다. 잘 죽는 것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살아있을 때.


불의 해체 삶의 종말. 세포들이 패닉 상태에 이르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그러나 마지막으로 최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세포이 최후의 힘을 낸다. 죽음에 전 용솟음, 죽음을 앞둔 반등,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아름다운 힘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인간으로 왜 이 세상에 왔는지 깨달을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랑'이다.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왔음을 인식하는 마지막 순간이다. 불의 해체, 자신의 본 질고 진정으로 만나는 과정, 인간의 가장 깊고 신성한 것이 그 안에 숨어있다. 


공기의 해체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식한다. 호흡곤란, 깊은숨, 마지막까지 현재를 살아있음을 멈추는 단계다. 


동양 사상이 현대의학을 하는 브라질 의사에게 접목되는 것이 의아했지만 완화의료의 한 부분이겠거니 한다. 책이 무겁다. 죽음을 매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살아가는 것 잘 사는 것 의미 있게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죽음은 아직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잘 살다는 게 뭘까? 살면서 후회하는 게 뭘까?


생의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은 있어도 죽어본 사람은 없다. 부로니 웨어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란 책에서 후회에 대해 언급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            


              감정 표현을 다하지 못하고 통제했다는 후회. 사랑한다고 말할걸~             


              평생 일에만 메여 살았다는 것... 시간 거지로 사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진짜 나를 버리고 일에 매달리는 자신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한다.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뜻밖이다. 당연히 가족이 우선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가족도 중요하지만 의무적인 가족이 아니라 친구를 언급한다.  친구들의 눈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4가지를 보면서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와 반성이다.            








우리 자신을 공평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죽음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자기 점검을 하게 한다.  상실 수용과 잃는 기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용서와 후회가 밀려든다. 역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무거운 건 아직 죽음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남편과 기후 위기나 지진, 지구 종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난 그런 일이 있을 때 살아남은 자가 더 슬플 거라 생각한다. 다 같이 죽는 건 하나도 억울할 일도 아니다. 누구나 영원한 삶은 없는데 아까울 것도 없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자연사일 때는 좀 다른 생각일까?



마지막 순간에 남길 것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 흔적 없이 사는 동안 재미있게 살다가고 싶다. 가능하면 의미 있게 가치있게 살다가고 싶다. 모두의 희망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진리는 자연의 섭리이고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희망이다. 영원히 죽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과 통해있다, 물론 종교인으로 믿음이 있는 경우다. 나는 죽을 것이다. 너도 죽을 것이다. 우린 모두 죽는다. 죽음의 순간이 오면 육체는 사라진다. 



진짜 죽음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이 완전한 죽음이 아닐까?



사는 동안 잘 살며 잘 죽는 것을 미리 생각해두는  일도 필요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후회, 용서, 감사,  미안함과도 안녕이겠지. 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순간을 만난다면 편히 안녕하고 가고 싶다.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북클럽 친구들과 책을 나눌 땐 무거운 마음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빠르게 우린 우리의 삶을 나눈다. 죽음은 삶을 더 의욕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나 보다. 







페인트 공방 카페를 운영하는 멤버의 커다란 2층 가게를 통째로 우리끼리 사용하며 즐겼다. 우리는 살아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이어간다. 산다는 것은 참 재밌다. 모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또 만나자고 다음엔 안성서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이별을 한다. 무거운 책이 한결 가볍게 마무리할 수 있는 건 산자들의 웃음소리 덕분이다. 



#죽음이물었다 #아나아란치스  #글쓰는피아노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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