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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피아노쌤 Mar 18. 2024

슬픔이 변하여

시간은 흐른다. 흐르는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 같아서 지나고 나면 다시는 되돌리지도 되돌릴 수도 없다. 다시는 되돌리지 않고 싶은 순간의 시간이 있다. 멈춰버린 고인 시간이다.


                                                           © prithiviraj, 출처 Unsplash



32년 전 배를 움켜쥐고 고통에 몸 무림치고 있다. 소리를 지르자 엄마 아버지 동생들이 놀래서 달려왔다. 남산만 한 배를 움켜쥐고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에서 분만실로 향했다. 힘을 주라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기절하고 싶었다. 아픔은 기절할 틈도 주지 않았다. 저절로 배에 힘이 주어진다. 조산이다. 세 쌍둥이를 잃었다. 


다낭성 낭종으로 불임치료를 받고 힘들게 가진 아이를 잃었다. 결혼 후 엄마의 등쌀에 8개월 때 처음 병원을 찾았다. 내 경우는 난자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하는 다낭성 낭종이다. 매달 난포에서 하나식 생겨야 하는 난자는 포도송이처럼 수십 개의 미성숙 난자만 생겼다.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했다. 매일 부산과 울산을 오가며 불임 병원을 다니며 힘들게 임신이 되었다. 다음은 착상 주사를 맞는다. 인공적으로 난자를 키워서일까? 임신인 걸 알고 얼마 안 가 흘러내린다. 몇 번이나 반복되는 유산의 경험은 신경을 예민하게 한다. 온 식구들도 덩달아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쌍둥이가 찾아왔다. 당시 매난국죽이라는 네 쌍둥이 뉴스로 접하고 있던 터라 부분 유산을 거절했다. 아니 심장이 뛰는 초음파를 보니 차마 부분 유산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난 친정살이를 시작했다. 동생들은 모두 나의 살아있는 리모컨이 되었다. 내가 말만 하면 조금이라도 부스럭거리면  달려왔다. 조심 또 조심하며 뱃속의 아이를 지켰다. 20주를 막 지나고 있다. 22주 차 이제 23주를 기다리며 남산만 하게 부푼 배를 안고 잠을 잘 때마다 힘들어했다.


어느 날 119에 실려 병원 분만실에서 세 쌍둥이를 잃었다. 누워있던 내가 옆 침대로 옮기기 위해 몸을 일으키던 순간 시간이 멈췄다. 네모난 스테인리스 통 안에 방금 힘주어 낳은 세 쌍둥이 아이들이 나란히 있다. 세 아기의 등이 보였다. 일어서 다 다시 누웠다. 하늘이 까맣다. 시간이 멈추었다.  




                                                    © adriankirkegaard, 출처 Unsplash



길을 지나다 눈에 띄는 건 아가방의 이쁜 아이 용품이다. 배부른 임산부는 언제나 부러움이다. 엎고 다니는 아기는 희망이다. 다시 불임치료를 받는다. 시간이 흐른다. 공주 대접 아니 왕비 대접을 받으며 살아있는 나의 리모컨이 되어준 동생들과 친정 부모님의 염려 덕분에 무사히 아들을 출산했다. 시간이 멈춘다.


내게 멈춘 시간은 눈물 고인 시간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받을 수 있다고 했던가? 그렇게 출산한 아들이 31살이 되었다. 건장한 청년이 되어 직장을 다니고 애인도 생겼다. 그 아들이 결혼을 한다. 12월이면 나도 며늘아기가 생긴다. 1 대학 1학년 때부터 11년을 만나온 우리 아기는 이쁘기만 하다. 11년 전 학교 뮤지컬을 한다고 아들의 공연을 보러 갔다. 에스메랄다 역을 맡은 여자친구를 소개해준다. 아들이랑 뮤지컬을 준비하며 더 친해졌다? 그때 에스메달다의 부모님도 뵈었다. 


그날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사진 찍은 듯 멈춰있다. 인연일까? 이젠 그분들이 사돈이 된다. 지난주 아이들이 준비한 장소에서 상견례를 마쳤다. 기억이 소환되어 양가 부모들은 2시간 내내 웃으며 아이들을 축복했다. 후다닥 흘러버린 시간은 또다시 멈춘 기억으로 남겠다. 




                                                           © nixcreative, 출처 Unsplash



살다 보면 고인 시간들이 아픔일 때도 있다.. 그 아픔이 아물어 흔적이 희미해질 때 또 다른 기억은 기쁨으로 그 자리에 머문다. 


아들에게 전화를 한다. 데이트 중이란다. 그래 즐기려무나. 지금의 행복한 순간을 이쁘게 채우려무나 너희들에게 머무는 아름다운 시간이 내게도 행복이다.


아픔으로 눈물 고인 시간이 감사로 눈물 고인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 긴 세월 사랑해 온 너희들을 축복한다. 감사로 고인 시간이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 되게 해 주심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새벽 미명은 뜨거운 태양을 품고 있다. 

새날의 밝아온다. 

움츠린 몸을 한껏 펴본다. 




#슬픔이변하여 #고인시간 #감사 #글쓰는피아노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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