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사 할 때 기억나는 제자도 여러 명 있지만 특수교사로서 기억나는 제자 1번 명철이(가명) 자랑을 안 할 수 없다. 명철이는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한 달 이상을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고, 한쪽 눈 시력이 불편하다. 타 학교에서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는데 나는 이제껏 명철이만큼 끈기 있게 노력하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소근육 운동과 신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다른 학생보다 불리하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우리 반에서 재미있는 독서를 하도록 유도하였다. 다행히 권유하는 책을 곧잘 읽기에 교내 과학경시대회 독후감 부문에 응모하도록 했다. 그 도서를 여러 번 읽고 몇 날에 걸쳐서 고치고 또 고치며 컴퓨터로 천천히 글을 써서 제출해서 우수상에 당선되었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남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모든 과목의 수행평가를 제출했다.
중학교 졸업할 때는, 모범 표창장도 받았다. 중 3 때 꿈을 설계하는 'KB희망캠프'에 추천서를 써 주었더니 운 좋게 뽑혀 2박 3일 진로직업 체험활동을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했다. 자신의 잠재력 발굴과 진로 설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으로 의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을 선택했다. 교통사고 이후 만난 좋은 의사 선생님, 치료사 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캠프에서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여 KBS 라디오 방송에도 중학생 대표로 희망캠프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특수학급이 없는 집 근처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국립 특수교육원에서 시각 장애학생을 위한 해외 연수 공문이 와서 명철이에게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관련 서류와 추천서를 써서 재학하는 고등학교에서 제출하도록 했다.
전국에서 몇 명 안 뽑는데 선발되어 2015년 9월에 8박 9일 동안 어머니와 함께 뉴욕에서 시각장애 교육기관을 방문하고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고서 귀국했다.
시각장애학생을 위한 교육지원, 가족지원, 직업재활 및 자립생활 기술 등 특히 시각 재활서비스 및 교육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했다. 미국의 시각장애인 문화와 예술교육 및 시각장애인의 자기 발전을 위한 학습방법을 보고 많이 느끼고 배웠던 것 같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도슨트 투어' 형식으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직접 만져보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라고 얘기했다.
명철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대학교의 학과를 선택할 때 체력적인 안배도 필요해서 고민하다가 '직업재활학과'에 지원했다. 하는 일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취업을 도와주는 것이라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이 등하교를 해 주셨을 텐데 혼자 독립해서 타지에서 4년을 생활하고 학교를 다닌 것만 해도 대단한데, 직업재활학과뿐만 아니라 산업복지학과도 복수 전공을 했다니, 그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한 번씩 전화 올 때마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많이 안 넘어지고 조금 넘어졌어요.”
라고 명랑하게 말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불편한 몸과 눈으로 강의실 찾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기숙사에서 강의실까지 아마 숱하게 넘어졌을 텐데.. 식사도 제대로 했을까 걱정이 되었다.
중학교 졸업 후 매년 스승의 날에 꽃을 들고 찾아오고 때로는 내가 출장을 가서 못 만날 때도 있었지만, 기쁜 일이 있으면 안부를 전해주고 대학교 졸업 후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내가 사는 이곳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서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동안 한국부동산원에서 인턴으로 4개월 근무도 하고 장애인 재활상담사 1급 국가고시 면허증도 취득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아마 지금도 공부방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많다며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