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깊어가는 가을에 웅부공원에서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을 갔을 때 뜻밖에도 그곳에서 채현이(가명)를 만났다.
“어머! 채현아! 아가씨가 다 되었네. 어쩐 일이니?”
반가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서로 손을 맞잡고 흔들다가, 휴식시간에 구석 자리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학교도 잘 다니고 아는 언니랑 가끔 배식 봉사를 한다며 이제 곧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취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였다. 어르신들에게 공손하게 배식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니 마음속으로 울컥하며 대견하기도 하고 기뻤다.
‘채현아 잘 자라 주어서 고마워!’
불현듯 내 머릿속에는 채현이와 첫 만남이 사진처럼 떠올랐다.
2016년 새로 부임한 B여중 특수학급에는 여학생이 8명 있었다.
‘고등학교 그 유명한(?) 남학생들과도 8명이 한 반에서 같이 생활했는데 중학교 여학생들쯤이야.’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여학생들은 모두 나름대로 다양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채현(가명)이는 첫 만남부터 강렬했다. 첫 수업이 수학 시간이어서
“채현아! 안녕? 벌써 3교시네. 어머! 지금 몇 시니?”라고 물으니
“씨팔! 나 시계 안해.”
라며 신발장 문을 박차면서 교실 문을 세게 쾅 닫고 나가 버렸다. 다른 학생들도 있어서 속으로 무척 당황했지만, 일부러 야단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주었다. 시계 공부를 한다고 미리 말도 안 했는데 자기가 모르는 시간을 처음 만나자마자 물어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불러서 타이르려다, 처음이니 지켜보리라 생각하고 그 다음 날 일찍 출근해 보니 책가방도 없이 대학생들처럼 천으로 된 큰 가방 안에는 책 한 권 없이 각종 과자와 다양한 화장품으로 채워진 파우치, 짧은 치마 사복 등이 어지럽게 뒤엉켜져 있었다. 교복은 물론 속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딱 붙는 티셔츠를 입고, 등교 시간은 8시 30분까지인데 7시부터 학교에 와서 1층 현관 옆 통합교육지원실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채현이와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 주고 ‘내가 너에게 관심이 있다.’라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며 하나하나 문제 되는 행동을 기록했다.
2주 동안 아이를 자극하지 않고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우리 반의 ‘생각하는 방’에 불러서 1:1 상담을 하였다. 아이가 먼저 말을 다 하도록 맞장구치며 공감하며 들어주니 팽팽하게 긴장하던 채현이는 어느 순간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헤어지셨고 연년생인 남동생이 있고 엄마가 직장 생활로 바쁘니 외할머니가 생활과 살림을 맡아 주시고 계셨다. 이모도 아프다 보니 외할머니가 이종사촌까지 돌보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사랑은커녕 엄마의 사랑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었고 자기의 힘든 마음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없었고 힘들고 외로웠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랑 상담하니 아이가 어릴 때 남동생이 연년생으로 태어나서 동생은 서울에서 직접 키우고 채현이는 이곳 외가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키워서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또한 남동생은 똑똑한데 채현이는 지적으로 낮아서 장애등급을 받게 되었고 외할머니는
“우리 반 아이들이 장애인이니 같이 놀지 말라”라며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채현이가 떼를 쓰거나 폭력적으로 행동해도 어릴 때 돌보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채현이에게 용돈을 달라는 대로 주고 카드도 맡겨 CU나 올리브 영, 다이소 같은 곳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도 이것저것 많은 잡화를 사곤 하였다. 채현이는 방과후 활동으로 중·고등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청소년 자립지원센터를 다니고 싶어 했지만, 외할머니는
“그런 곳에 가면 안 된다.”라며 채현이가 잘 적응도 못하는데 영어 공부를 시킨다며 매일 영어학원으로 보냈다.
여러 차례 채현이와 상담 후 제일 시급한 목록 세 개를 적어 하루하루 실천 내용에 따라 ○, △, ×를 하는 체크리스트를 1주일 단위로 만들어서 집으로 보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문제점을 잘 이해해 주셨고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인지하여 협조를 잘 해주셨다. 엄마와의 상담은 거의 매일 진행되었고, 반드시 집에서 엄마가 채현이의 실천 내용을 확인하고 싸인하도록 거듭 부탁했다.
첫 번째 체크리스트 목록은
1. 욕하지 않기(개새끼, 씨팔, 아이 씨, 짱나 등),
2. 폭력 행동하지 않기(문 쾅 닫기, 책상 치기, 자기 몸 때리기)
3. 말없이 울지 않기(무조건 떼쓰지 않기) 등이었다. 2주 후에는 제일 잘하는 것 한 개를 빼고 다른 것을 추가하였다. 계속 추가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싸우지 않기(같은 동급생 2학년 수미와 신경전 벌이고 어쩌다 수업이 함께 되면 싸움)
* 학교에 과자 안 가져오기, 물건 안 던지기, 엄마한테 욕 안 하기.
* 반드시 안경 쓰기(눈은 나쁜데 외모에 지장 있다며 안경 안 씀),
* 사복을 학교에 안 가져오기(학교에 가지고 온 짧은 치마는 보관하였다가 졸업 때 엄마에게 돌려줌),
* 용돈 아껴 저금하기(거스름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엄마가 주는 카드를 편의점에서 마음대로 사용함),
* 아침 먹고 등교하기(아침을 먹으면 과자를 안 사도 됨),
* 8시 넘어 학교에 오기(너무 일찍 와서 선생님 없을 때 교실에서 친구들이랑 싸우지 않기),
* 짜증 내지 않기(수업 중 모르는 것 배울 때),
* 남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기, 이종사촌 동생 잘 대해 주기(귀여워하면서도 질투함) 등이었다.
체크리스트 내용을 잘 실천하였을 때는 엄청 칭찬해 주고 상으로는 교실에서 제일 좋아하는 세븐틴 노래 춤추며 듣기, 3학년 언니들과 식사하기, 교실에서 과자 파티하기로 정했다. 못 지켰을 때 벌로는 통합교육지원실 안에 있는 ‘생각하는 방’에서 1:1 공부하기와 체험학습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중간중간에 가끔씩 엄마가 아이를 통제 못해서 전화가 올 때도 있었고 사흘 도리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3달 정도 지나니 자리가 조금씩 잡히고 1학기 끝날 무렵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금방 빠지지만 어느 사이에 콩나물이 자라 있듯이 채현이의 행동은 조금씩 조금씩 서서히 달라진 것이다. 정성을 쏟은 만큼 행동이 조금씩 변화될 때 나는 가슴이 벅찼고 교사로서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많이 변한 행동들은 욕 안 하고, 물건 안 던지고, 교복 입고 학교에 오고, 밤에 외출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 전 해 학교 폭력 단골손님이었던 동급생 수미랑 만나기만 하면 전기가 불꽃을 튀기듯 강렬하게 싸움도 하고 크고 작은 사연들도 있었다.
하지만 화가 나면 우리가 같이 마음공부 한 대로 흥분된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일어나, 벽을 보고 1부터 20까지 천천히 소리 내어 숫자를 세어 나갔다. 그래도 숨이 가빠지면 ‘생각의 방’에 들어가 천천히 호흡하며 스스로 1분 있다가 나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정말로 채현이가 대견스러웠다.
매일 엄마가 준 카드로 편의점에 가서 간식을 한 가방씩 사 왔는데 친지들이 준 용돈을 백 원짜리까지 우체국에 가서 스스로 저금을 하였다. 그렇게 모은 돈은 96만 원 정도 되었는데 졸업할 때 노트북을 사게 되었다.
우리 반에서 매일 하는 학습을 제외하고, 매 주마다 실시하는 규칙적인 활동은 다음과 같다. 월요일은 1년 과정의 제과제빵 실습과 우체국 가서 저금하기, 목요일은 직업교육과 합창 연습, 금요일은 도립 도서관 가기, 재활훈련 등이다. 채현이는 선생님이 항상 자기를 믿어주고 받아주니 “선생님이 엄마 같아요.”라고 말하였다. 일관성 있게 칭찬해 줄 것은 칭찬하고, 야단칠 것은 야단쳐 주니 밤이고 새벽이고 전화로 물어왔다.
채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었다. 외모에 관심도 많고 키도 크고 날씬하니 춤을 추면 내가 보아도 사랑스럽다. 연합 동아리를 만들려고 K여고와 J중에 연락했으나 잘 안되고, 복지협회 청소년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합창 연습을 하였다.
2016년 경북복지대회에 합창으로 출전하여 운 좋게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 해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전국장애인합창대회에 참가하여 장려상을 받았다. 새벽부터 단체 버스를 타고 밤늦게 돌아올 때까지 힘든 하루였지만, 아이들은 개인 메달을 하나씩 목에 걸고서 의기양양하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것이 큰 동기가 되어 그 다음 해는 경북 장애인 예술제에 참가하여 전국 본선에 경북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 해 인천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전국 장애인 예술제’ 참가하였다.
뛰어난 장애인들이 많아서 비록 입상은 못하였지만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채현이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무엇보다도 얼굴이 밝아지며 말도 많아졌고 행동도 차분해지면서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 멋진 채현이가 될꺼야! 0 00 선생님 ♥
1. 선생님 말 잘 듣기 / 2. 욕 안하기
3. 친구랑 안 싸우기 / 4. 서로 존중하기
5. 노력하기 / 6. 공부 열심히 하기
7. 친구한테 욕 안하기 / 8. 바른 자세로 앉기
9. 물건 안 던지기 / 10. 친구들 안 놀리기
11. 선생님 말 집중하기 / 12. 친구들한테 배려해 주기
13. 예쁜 말 쓰기 / 14. 규칙 잘 지키기
지원실 얘들아! 너무 좋아! 사랑해!
채현이는 꼭 지킬께!
사랑합니다. 파이팅 ♥
2학기 방학식 하는 날 채현이가 스스로 자신의 공책에 써 온 다짐의 내용이다.
채현이가 써 온 내용을 그대로 컴퓨터로 치게 하여 인쇄해서 두 장을 코팅해서 한 장은 채현이 교실 책상에, 한 장은 집의 책상 앞에 붙여 두라고 하였다. 그리고 ‘채현이의 약속’이라고 해서 써 온 목록을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엄마와 채현이에게 카톡으로 음성 파일을 보내 주었다. 그 후 채현이는 사춘기 긴 터널을 지나 중학교 교육과정을 잘 마치고 드디어 K여고에 진학하였고 나도 P 중학교로 전근하였다.
단풍색이 선명하고 또렷한 것을 보니 가을도 꽤나 깊어, 요즘은 뒤를 돌아 보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이곳에서 정년퇴임 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교직이 적성에도 맞지만, 제자들을 통해 가르치며 오히려 더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내 삶이 성숙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내가 우리 반 교실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되어주고 나를 통하여 꿈을 키우고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면... 실수하는 것이 경험의 과정이며, ‘삶이라는 것이 일평생 배우고 자라나는 것’임을 가르치고 배우며 나도 자란다.....
맑은 바람과 고운 가을 햇살이 열어 놓은 창문을 비집고 교실 안쪽까지 길게 내려와, 우리 반 학생의 반짝이는머리에 내려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