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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Mar 31. 2023

연장반의 하원시간

그들만의 치열함

6시 14분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평상시보다 조금 늦게 둘째를 데리러 간다.

마음이 조급하다.

목이 빠져라 문을 쳐다보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워킹맘의 아들인 죄로 우리 아들 둘은 돌이 지나자 어린이집에서 1등으로 등원, 꼴찌로 하원하는 친구들이었다.


첫째는 5살이 되자마자부터 태권도에 맡기듯이 보내져 두 타임, 시간상으론 세 시간을 보내고 하원하고 있고

둘째는 항상 혼자 남아 마지막으로 같이 있던 친구가 가버리면 칭얼칭얼 해서 연장반 선생님께서 어린이집 앞을 산책시켜 주시다 받곤 했다.


그게 당연한 일상이다가, 내가 이직을 했다.

퇴근 시간이 30분 당겨졌지만

첫째는 똑같이 태권도 두 타임을 뛰고 오는데 앞, 뒷 타임에 친구? 형아들을 사귀면서 두 시간 하고 오는 걸 힘들어하지 않게 되었다.

모질지 못한 성격에 내 눈치 보느라

“엄마 태권도 가야 해?”

하고 물어보거나 관장님께 괜히

“오늘 다섯 시에 엄마가 오라고 했어요!”

하고 말씀드려서 관장님 전화받게 하는 일이 없어졌다.

(차라리 가기 싫다고 떼를 썼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까 싶다)

태권도 가기 싫다 했던 날. 오버타임 쓰고 나와서 태권도 한 시간만 하고 받고 동네 카페에서 데이트하고 둘째를 데리러 갔었다.


둘째는 형아가 오는 시간 맞춰 평소처럼 데리러 갔었는데 (30분 동안 미리 밥 차려서 식혀두고 설거지까지 가능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그냥 한 번 퇴근길에 (5시 55분쯤?) 데리러 갔다가 우리 아이가 버텨야 했던 쓸쓸함을 보게 되고, 이제 우리 아이는 꼴찌를 하지 않는다.


5시 55분 띵똥 연장반 벨을 울렸다.

건물 안이지만 교실 밖, 거실 같은 공간에서 놀던 4-5 아이 중에서 두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 밖을 쳐다본다.

그 아이 중에 내 아이는 포함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지 확인하는 선생님께 책 다음 장을 읽어달라고 손을 끈다.


“선생님~ 땡큐 데려갈게요”

“어머 어머님 엄청 일찍 오셨네요! 땡큐야~~ 박땡큐~ 엄마 오셨네”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날 본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인 온 얼굴에 웃음을 달고 팔랑팔랑 뛰어온다.

대략 이런 표정? ㅋㅋ

준비하고 가자는 선생님에게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도 ㅋㅋㅋ 아이의 얼굴엔 웃음이 걷히지 않는다.

괜히 뿌듯해하며, 가끔 일찍 데리러 가면 봐왔던 모습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있는데 문 앞을 서성이는 두 아이가 보인다.


한 아이는 6시쯤 되는 엄마가 오셔서 문 앞에 있다가 준비하러 들어갔는데, 남은 한 아이는 엄마가 늦으시는가 보다.

내 아이와 같은 반 친구에 둘이 코드가 맞아서 사진에도 자주 같이 찍히고, 우리 아이가 자주 이름을 말하던 친구라 친구야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아니 근데 요놈이 고개를 휙 돌려버리네?

내 아들은 극 E 성향인데 둘이 달라서 친한가? 싶을 때쯤 우리 아이가 나왔다.

아직도 신나서 덩실덩실거리는 아이가 신발 신고 선생님께 인사하는 동안도 그 친구는 문 앞에 서있었다.

내 아이가 안녕~ 하고 인사하자 으엥~ 하고 눈물을 터뜨리기에 당황해서 선생님을 쳐다봤더니


“항상 친구가 먼저 가는데 오늘 땡큐가 먼저 가서 속상한가 봐요 애들이 엄마 오시는 시간을 기가 막히게 알거든요. 이제 곧 친구 어머니 오실 시간이니까 준비하면 됩니다 염려 마세요 “



이직한 지 두 달이 됐다.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아이를 데리러 갔던 그때와 달리 조금 여유로운 직장으로 옮기면서 나의 몸과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20분 정도 일찍 등원하지만 30분 일찍 하원하는 우리 둘째는 하원하고 조금 안아주면 제법 떨어져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는 엄마 덜딱지가 되었다.

(애가 커서 그런지, 일찍 데려가는 게 도움이 된 건진 모르겠지만 형아가 오기 전 30분을 어지간하면 외동놀이 시켜주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도 잘 때는 껌딱지..)


6시 14분에 도착했더니 전매특허 함박웃음도 없이 쭈뼛쭈뼛 나온다.

안을 봤더니 꼴찌 바로 앞이다.

내 아이는 무거워도 ㅋㅋ 내가 안아서 올라가면서 뽀뽀공격을 해주면 금방 풀릴 거지만

남아있을 마지막 아이가 마음에 걸린다.

이미 하원할 준비를 마치고 문 앞에서 내 뒤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두 달 전 다른 아이 엄마 뒤에 있을지도 모를 나를 찾는 내 아이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괜히 울컥한다.

주머니를 뒤지니 우리 아이 둘 다 좋아하는 비타민 젤리가 있어 친구에게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먹겠다는 승낙을 받아 건네주니 눈치 없는 요놈이 지도 달라고 난리다.

발갈음이 안 떨어져 인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헐레벌떡 엄마가 뛰어온다.

나란히 하원하는 길,

평소보다 빠른 퇴근을 하시는 선생님들

안아주자마자 기분이 풀린 내 아들과 엄마가 오자마자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신발을 신고 나에게 받은 젤리를 자랑하던 친구.

따뜻해진 날씨, 벌써 초록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벚꽃 아래를 걸어가는 하원길.


모든 아이들이 상처 없이 아픔 없이 크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으니 이런 작은 상처들이 모여 아이들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거란 위안으로 스스로를 다독인다.


내가 전업맘이 되면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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