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엄마인 죄
우리 첫째는 일하는 엄마를 둔 죄로
14개월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적응기간 2주 뒤부터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일찍 등원, 가장 늦게 하원하는 아이였다.
아이가 자라서 유치원으로 옮겨야 할 시기가 왔지만 유치원 설명회를 따라다닐 수 없어 종종거리던 차에 1년도 전에 그냥 넣어놨던 대학부설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와서 고민도 없이 보냈다.
7세까지 옮길 필요 없이 보낼 수 있었고, 워킹맘들이 많이 보낸다는 이야기, 공부시키지 않는다는 설명에 너무 신났던 것 같다.
아이가 옮기고 적응기간을 마치자마자 딱 맞춘 듯 둘째가 태어나서 1년은 육아휴직 기간으로 정해진 등/하원 시간에 맞출 수 있었지만
복직을 하려니 등 하원 그 어떤 것도 시킬 수 없었다.
7시 반부터 7시 반까지 봐준다고는 하지만 차량은 이용할 수 없어서 직접 데려다주고받아야 하는데 아침에 차로 데려다주고 집에 차를 대고 출근을 하기도 (일단 주차가 안 돼서 차를 가지고 출근할 수 없고 지하철이 훨씬 빠른 부산 출퇴근 시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때 당시 수선생님이 아이 키우는데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배려해 주시는 분이라서 상황을 말씀드리고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춰서 등원을 시키고 출근을 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단축근무를 회사에 요구할 수 있고 줄어든 월급의 일정 부분을 나라에서 메꿔주는 제도가 있어서 사용했다)
그래도 4시에 하원하는 아이를 받을 수는 없었다.
3시에 퇴근하려면 하루에 4시간을 단축근무 해야 했고(일 년만 가능한 그 제도를 다 사용한 이후의 플랜도 없으므로) 그러면 월급도 너무 타격이 커서 학원을 돌리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렸다.
초등학교 가기 전까진 공부시키지 않으리라는 우리 부부의 (몇 안 되는) 공통된 육아관 때문에 예체능 쪽으로 알아봤지만 5살이 다닐 수 있는 학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태권도도 보통 6살부터 받아줘서 유아 태권도라고 홍보하는 곳 8군데를 전화해서 두 군데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두 군데 중 시간이 맞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가서 우리 집에 하원시켜 주는 태권도장으로 결정하고 아이를 보냈다.
그래도 다섯 시에 집에 돌아오니 하나를 더 보내야 해서 차량 코스를 여쭤보는 나에게 관장님께서 추가금 없이 두 시간을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하면 퇴근시간을 딱 맞출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아이가 싫다 한 미술을 억지로 보낼 필요 없고, 차를 이리저리 옮겨 탈 필요도 없어서 좋았다.
두타임을 하고 온 나의 작은 꼬맹이는 하원하자마자 배가 고파 헉헉거렸고 부랴부랴 밥을 차려 주면 미지근한 온도도 뜨겁다 표현하던 아이가 연기가 펄펄 나는 밥을 반찬도 없이 허겁지겁 퍼먹곤 했다.
그런 아이를 관장님도 눈치 채시곤 간식을 챙겨주시면 첫 타임이 끝나고 차량 운행하는 시간에 도장에서 챙겨 먹여 주신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큰아이, 작은아이 가방엔 간단히 빵, 주스가 든 간식 파우치가 추가되었다.
중간에 위기도 있었다.
태권도가 가기 싫다고는 차마 못하고
“엄마 오늘은 태권도 안 가?”라고 눈 뜨자마자 물어보거나
도장에서 관장님께 오늘은 한 시간만 하고 집에 간다고 우겨서 관장님의 확인 전화를 받기도 했다.
알고 보니 뒷타임에 큰 형아들이 많이 오고, 같이 다니던 또래들이 그만두면서 힘들었나 보다.
다른 대안이 없어 어르고 달래며 애써 외면했더니 착하고 씩씩한 내 아이는 또 이겨내고 흥미를 붙였다.
벌써 1년이 지났다.
품새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착실하게 승급심사를 받았더니 빨간 띠를 받아왔다. (품띠/검정띠 바로 아래)
빨기 위해 금요일에 입고 온 도복, 허리에 당당히 매어진 빨간 띠.
니가 무슨 빨간 띠야 하고 웃어넘기려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때로는 싫어도 꾹 참고 견딘 시간에 대한 보상일 테니.
장하다 내 아들
고마워. 형아, 누나들 사이에서도 반짝이는 너의 눈빛 엄마는 기억하고 있어.
빨간 띠라서가 아니라 너의 노력이 묻은 시간들이 자랑스러워.
니가 커서도 이 시간들이 분명 양분이 되리라 믿어.
사랑해. 흰띠의 너도, 빨간 띠의 너도 그냥 너라서 고맙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