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철미 Apr 21. 2023

아이들이 아픈 날

스토킹보다 무서운 어린이집 부재중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켠다.

부재중 전화가 쌓여있어 확인하려는데, 신랑에게 전화가 온다.


수술실 간호사 남친+남편 짬밥 13년 차, 급한 일 아니면 근무중일 때는 절대 전화하지 않는 남편이다.

급히 전화를 받으니 내가 놀랄까 봐 차분히 이야기를 한다.


“여보 놀라지 말고 들어. 큰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여보랑 통화가 안된다고. 애가 열이 좀 나나 봐. 아침에 해열제 안 먹였지? 당신이 통화 좀 해줄 수 있어?”

“응 알겠어. 내가 통화할게 끊어~”


이어진 선생님과의 통화.

아이가 스스로 열이 난다고 표현해서 열을 쟀더니 38.5도가 넘었단다.

코로나 때문에 해열제를 비치해 두고 먹일 수 없어 간호사 선생님이 곁에 눕혀서 옷을 벗기고 미온수로 닦아주는데 애가 깔아지면서 열이 39.8도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하루 전 날, 같은 전화를 받았다.

둘째 어린이집에서 애가 쳐지고 간식을 거부하면서 열이 오른다고 데려가라고 하셨다.

부랴부랴 퇴근해서 갔더니 애가 자다가 깨서 나오는데 볼도 상기되어 있고 온몸에 힘이 없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는데 자꾸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조른다.

(형아 태권도 하원 차량을 함께 마중 가면 가끔 아파트 상가에 있는 베라에 데려갔는데 그걸 좋아한다. )

뭐라도 먹어라 싶어 함께 갔다가 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구토를 했다.


속을 다 비우고 나니 열도 훅 떨어지고 컨디션이 확 돌아왔다.

(자기가 토한 거 치우는 내 옆에서 본인 손에 묻었다고 울고 난리 치긴 했지만ㅋㅋ)

 

그래도 열이 났었기에 해열제를 밤에 대기하며 수시로 열 재면서 밤을 꼬박 지새웠다.


다행히 작은아이는 열도 없이 잘 지나갔는데

다음날 아침, 큰애가 따끈하다.


열을 재보니 37.5도.


집에 있는 영양제, 비타민을 먹이고 애써 괜찮으리라 외면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이 치솟다니..

출근 두 시간 만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11시에 접수했는데 진료는 3시에 볼 수 있었다.

동네 소아과가 이 지경인데 저출산 대책은 대체 어디서 하고 있는 건지.

일하는 엄마는 연차 안 쓰면 애 진료도 못 보는 세상에서 어떻게 애를 낳아 키우란 건가.

정말 화가 치민다.


진료를 보니 편도가 심하게 부었다고 하시면서도 아이들 신생아 이후로 쭉 다녔던 병원 원장님이라 입원이 힘든 내 상황을 아셔서 당장 입원은 못 시키더라도 [두 번 이상 38.6도 이상으로 열이 나면 입원준비를 해서 내원하세요]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도 해열제 효과가 떨어질 시간이면 열이 올랐다.

밤새 열이 41.7도까지 올랐다.

해열제를 먹이고 잠에 취한 건지 열에 취한 건지 알 수 없는 아이의 옷을 벗기고 무작정 닦였다.


그렇게 이틀 밤을 아이들에게 반납했다.


해열제 먹는 시간이 늘기도 했고,

전염병도 아니고,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어린이집에 꼭 가야 한다는 아이의 말을 무기 삼아 등원을 시켰다.

아이의 병명을 다시 묻고 해열제 용량을 확인하시는 선생님의 전화에 양심이 콕콕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간중간 통화하며, 일과가 조금 일찍 마쳐 오버타임을 쓰고 태권도는 안 갈 수 있게 데리러 갔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함께 동네 카페에 가서 시원한 음료수 마시러 가자는 나의 첫째.

(이거 마시고 둘째 데리러 가자했더니 둘째는 아빠가 데리고 오라고 했다 ㅋㅋㅋ)

아픈 아이 앞에서

난 또 온 우주의 대역 죄인이 된다.


괜찮다고, 이해한다고,

그 단순하게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겹다.


그러니까 아프지 마라 이 세상 모든 워킹맘들의 아가들아.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들의 빨간 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