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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철미 Jun 01. 2023

힘 내지 않을 권리

새벽 세 시가 넘을 동안 잠이 들지 않는다.


적당히 피곤했고, 아이들은 양쪽 팔에 매달려 일정한 숨을 내뱉고 있는 잠자기 딱 좋은 분위기에서도 5시간 넘게 잠들지 못하고 방황한다.

내일 스케줄이 몇 개였더라..? 짜증이 날 무렵

내가 왜 잠들지 못하는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스쳐 본 대기업 워킹맘이 자살했다는 기사가 일하는 내내, 지인 부부네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는 내내, 그리고 잠들기 위해 바쁜 저녁시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다 지나치듯 본 뉴스였는데

차마 꼼꼼히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아이의 졸업식에 참석한 이후로 시작된 괴롭힘에 힘들어했다는 그녀는

분명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고

존재만으로 든든란 언니이자

카톡 하나만으로 웃음 짓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아내,

화장실 가는 찰나에도 보고 싶은 엄마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멘토이자 롤 모델이고, 이기고 싶은 라이벌이었겠지.

학창 시절 놀고 싶고, 자고 싶은 당연한 욕구를 참아가며 공부하는 학생이었을 것이고

나와 아이, 가족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선물하기 위해 자신을 갉아먹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버텼을 것이다.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표현이 나에겐 껄끄럽다.


선택일 수가 있을까?

온 세상이 절벽으로 내몰고 날 등지는 것 같을 때 몸에 힘을 풀어버린 게 과연 선택일까.

아이 생각해서 퇴사하고 다른 데를 알아보면 되지 왜 죽냐는 댓글도 아프다

(언니들 다 T야?)

선택할 수가 없이 몸이 무겁고 머리는 더했겠지.

가해자를 미워할 힘도 없어서 내 탓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모성애와 책임감으로 마지막 불꽃까지 쥐어짜서 피어내다 바스러졌나 보다.


주변에서 충분히 배려해 주고 도와주는 직장과 동료를 가진 내가 힘들다 어쩌다 징징댄 것이 미안했다.

그러다가 왜 내가 미안해야 하나 가해자들은 미안해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화가 치민다.

똥 밟았네 아오 ㅅㅂ 하고 있을 인성일 텐데.


그것이 알고 싶다 애청자, 마니아인데

아기 엄마의 의문사 이야기에서 엄마와 쌍둥이인 이모에게 포옥 안겨서 귀를 만지작거리던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워킹맘의 아이가 자리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봐도 알아볼 수 없는 아이들이지만 아마도 평생을 들여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힘을 낼 힘조차 없을 땐

들어 누워 숨도 작게 쉴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는 사회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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