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실체
7. 왔다가 사라지는 감정의 실체
요즘은 하루 종일 일어나는 감정을 바라보는 일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내 안에 있는 감정을 관심 있게 보는 일이 뭐 어렵겠나 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시작을 했다. 마음을 굳게 다잡고 감정을 살피면서 시간을 보냈다. 깜박깜박하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 내 감정을 살펴볼 기회를 만들었다.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하면서 감정이 따라 올라온 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듣는 것에 많은 감정이 올라왔다. 이거 안 좋은데요. 하면 그 안 좋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마치 단어와 순간 연결된 감정은 나를 건드린다는 생각으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순식간에 행동으로 반응을 하였다. 생각과 감정은 서로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이 아주 짧은 시간에 하나가 되었다. 감정을 보면서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은 그동안 오롯이 감정대로 살아왔으며 올라온 감정의 대부분이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감지하게 되었다.
감정을 깊게 살펴보니 주로 생각 다음에 올라왔다.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하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생각이 올라온다. 멍하게 있을 때도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음에 감정이 따라온다.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생각과 또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내 경험과 나도 모르는 무의식적 판단이 아주 빠르게 결정이 되었다. 좋고 나쁜 것이 대부분이었다. 연결된 생각이 내가 원하는 고정된 생각과 비슷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반대인 경우는 바로 불편한 감정과 두려움, 불안이 올라왔다.
올라온 감정의 형태는 주로 부정적인 것이 많았다.
올라오는 감정에 포함된 것은 대부분 '내가 정당하다'는 생각이다. 동시에 의심 없이 습관적으로 화가 나면서 화를 표출했다. 이어서 나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불편한 느낌이 마음속에 남아 순간순간 작동을 했다.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에 대해 많은 부분 부정적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아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는 자체가 지옥일 때가 많았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내 생각과 다른 사람, 나를 억제하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그 수치가 어마어마했다.
어느 날부터 이렇게 불편한 감정을 알아차리면서 잠시지만 편안해지는 순간을 아주 조금 맛보는 순간들이 왔다 갔다.
살펴보니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 다행히 다른 급한 일이 있을 때 다른 일에 집중할 때였다. 나중에 보니 이것을 사마타라는 방법이었다. 한 대상에 머물며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일시적이지만 너무 좋았다. 하지만 바로 또 나도 모르는 사이 생각과 감정은 순간 자동으로 연관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리석은 행동은 또 반복된다. 그것을 안 것이 축복인지 파멸인지 말이다.
이런 와중에도 무슨 용기인지 틈만 나면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알아야 한다는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녔다. 일단 감정이 내가 아니라고 강조를 했다, 어설픈 설교다. 그랬더니 의아해하면서 무슨 말인 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설명할 능력이 없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직 설명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하지만 알고 싶었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더 내 감정과 생각에 직면하는 작업을 더 의도적으로 관찰했다, 특히 자기 전, 아침에 일어나면 올라오는 감정을 계속해서 헤아려 보았다. 지난 일도 유추해 보고 또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을 낳을 뿐이다.
오늘은 운동을 하고 기분 좋게 집에 들어갔다.
주방 설거지통을 보니 설거지가 쌓여 있다. 옷을 걷어 젖히고 오랜만에 큰마음먹고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했다. 수세미 하얀 퐁퐁이 부드럽게 그릇들을 깨끗하게 해 준다. 그리고 옷을 벗고 나오는데 집 사람이 그릇하나를 보면서 “이왕 하려면 깨끗하게 하지!!” 하는 한 마디에 몇 시간 평정되고 기분이 좋았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 소리에 화가 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때 같았으면 화를 내면서 정해진 화 매뉴얼처럼 행동하며 화난 감정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차렸다.
아니 쳐다보았다. 일단 다르게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차리니 행동이 절제되었다. 그대로 쳐다보았다. 신경질이 나고 화가 머리 쪽으로 올라왔다. 서서히 나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감정이 나와 하나로 변화 하는 시간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화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처럼 살아서 움직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따라오는 것이 생각들이었다. 전에도 그랬다. 나를 무시한다. 정말 싫다 등등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올라왔다. 부정적 생각들은 당연하다며 아주 교묘하게 나를 설득했다, 화낼 때야. 아주 당연하게. 에이 기분 잡쳤다. 큰 마음먹고 한 건데. 다시는 하나 봐라. 저녁은 먹지 말아야지. 생각은 한 없이 커지고 옛날 생각들이 이어서 났다.
이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졌다.
얼굴이 화근거리고 이 생각들을 인정하는 것이 아프지만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화나기 전 마음과 지금 마음 사이에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약간의 다른 생각을 발견했다. 인정받고 내가 설거지를 했으니 칭찬해 달라는 욕구가 있었다. 이 생각 때문에 그에 반하는 말에 순간 화가 올라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냥 설거지한 거야.
그 이상 기대하지 마. 이런 생각만 해도 그냥 지나가면 소리 일 뿐이었다. 즉 기대만 안 해도 뭔가 바라는 것만 없어도 마음이 평정이 되었다. 이 순간을 되돌아보면 화를 져다 보고 화에 끌려가지 않는 순간. 화를 관찰해 보면 내 기준이 있었다. 내 고정관념과 부딪치는 순간 화가 아주 정당하고 속사포처럼 올라왔다.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쳐다보라는 말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헤맸다. 그렇지만 반복해서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복귀해 가면서 반복을 하다 보니 중요한 사실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감정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감정은 실체가 없었다. 순간 사라지고 그 감정에 힘을 누가 주느냐 바로 나였다. 그 나가 나타나면 실제 존재한 일이 되었다. 그 감정과 생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왔다 가는 것이었다.
금강경을 보면서 금강경 사구계 중에 하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해주고 깨닫게 해 주면 겐즈즈강의 모래알 보다 더 큰 복덕이 온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요즘 보는 사람마다 감정에 저항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쳐다 보라는 말을 한다. 사람들에게 내가 이해 한 만큼 설명을 해준다. 사람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실천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알려 주면서 자신이 주장하는 바에 깨우침이 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은 살아 움직이는 요물임에 아차 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 옮을 알기 때문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쳐다보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확실히 똑같은 감정과 생각이 올라 오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을 가지고 실천을 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긍정적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기적이 있다고 믿는 쪽과 없다고 믿는 쪽 인생의 두 갈레 길이 있다고 했다. 이 말 뜻을 감정과 연결을 해 보면, 기적이 있다는 쪽은 바로 감정이 올라오는 지점에서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기적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바로 그 자리가 기적인 것이다. 그러면 얼굴의 모공도 줄어들고 주변에서 피부가 좋아졌다는 소리도 많이 들을 것이다.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화가 날 때 감정이 올라올 때 이 감정이 나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는가?라고 질문하면 문제를 밖으로 돌리지 않고 내 안에서 진정한 해결책으로 가는 길을 찾게 된다. 그런 다음 그것을 인정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감정이 공한 모습을 보게 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나는 길을 만나게 된다. 감정을 쳐다보는 일은 한 없이 힘이 들지만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보상은 어떤 연습보다도 가장 큰 이득을 준다. 그래서 인생을 바쳐 모두 이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 길은 끝이 없지만 항상 끝이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끝에 화살을 밖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으로 바라볼 때 그 끝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다. 아니 전부다.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이 내 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낸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 점이 어마어마한 차이점이다. 대상을 바라보고 사는 삶에서 진정한 창조주의 신비를 경험하는 길이기도 하다.
질문
자신이 바꾸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감정의 뿌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감정은 살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있다가 사라지는 것인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