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위해 눈을 뜬다. 그리고 달린다.
영국에 온지도 두 달 째, 하루하루가 새로울 것만 같았지만 그저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코로나로 시끄러운 요즘, 개인적 이유로 9월 25일, 나는 그렇게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많은 것들을 해야하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지금에 와보니 그렇게 막 실천을 해 둔 것이 없다.
하고자 하던 마음은 있었지만 시간은 그런 생각만 하는 내 주변에서 계속 흘러갔고, 그렇게 두달이 지난 지금이다. 앞으로 있을 시간들이 나에게 정말 희소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그건 정작 망각했고, 지금은 그저 김치찌개에 보쌈이 먹고 싶은, 그런 노스텔지어만 깊게 느껴진다.
아침에는 가능한 해가 오르기 전 눈을 뜨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모든 게 새로울 것만 같은 이 곳이지만, 그 새로움에 대해 결국 매너리즘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때때로 몰려온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잊기 위해 눈을 감고 뜨지 않지만, 나는 고민 끝에 눈을 감기보다 일찍 뜨는 것을 선택했다. 나에게 다른 생각에 대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기로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오늘도 그리고 해는 떠올랐다.
아침이 되면 시간을 보내기 위한 루틴을 시작하고, 그 첫 단추는 운동이다. 매번 같은 코스를 뛰는 편이지만 질리더라도, 그리고 춥더라도 옷을 잘 챙겨입고 밖으로 나간다. 영국은 따뜻한 편에 속하지만, 이젠 겨울이 다가오니 아침 기온이 꽤 쌀쌀하다. 저번에 달리다 넘어져 무릎부근이 살짝 찢어진 츄리닝 긴 바지, 긴팔 면티 그리고 방한용 조끼를 착용하고 무겁기만 한 몸을 끌고 나선다. 나가는 순간 내면에서는 수십가지 잡음이 들리지만 무시하고 끝까지 몸을 이끈다.
나가면 아직 한창 어두운 어스름이 깔려있다. 나무마저 정화하지 못한 밤공기는 차갑게 흐르고 있고, 코로 들어온 공기는 머리 속에 갇혀있던 더운 공기를 밀어낸다. 온 몸의 통점이 자극을 받아 깨어나는 느낌. 중독이 있다.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잠을 잘못 잔 건지 이리저리 찌뿌둥하다. 그렇게 두 다리의 태엽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변은 낙엽이 구르고 바람이 갈라지며 흐르는 풍음외엔 아무 소리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눈을 뜨고 있는 건 오직 나.
온 몸에 세포가 눈을 뜨고 각자의 할 일을 시작하는 게 느껴진다. 숨은 점차 거칠어지고, 심장은 박동하기 시작했다. 놀란 것이 분명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원하던 혈압이 이게 아니었는데 싶었을 것이다. 등 뒤로 집은 멀어진다. 앞에는 어둡지만 싱그러운 수풀이 나를 반긴다. 오늘도 나는 무언가를 잊기 위하여, 그렇게 일찍이 눈을 뜨고 힘차게 앞으로 내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