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회상(1)

by Kayden

나는 엄한 집안에서 외아들로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으로 불리는 것이 싫어 나를 더욱 엄하게 키우셨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여느 집에나 다 있는, 아니면 있을 수도 있을법한 착한 아들이었다. 착한 외아들. 아버지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셨다. 아마 본인이 먼저 살아본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과 결과를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은 마음이셨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저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딴짓 잘 안 하고, 공부를 해보려(?) 하는 그런 일반적인 학생이었다. 웃긴 건 정작 초등학교 때 성적이 화려하지 않다. 투자 대비 효율이 낮은 아이였다. 많은 외아들들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먼저 나서서 말을 거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었고 학교 종이 울리면 곧장 집으로 가는, 그런 꼬마였다.


내 별명은 친구들 사이에서 NPC로 불렸다. 한창 리니지가 유행할 때이기도 했다.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와서 말을 걸지 않기에, 마치 게임 속 NPC 캐릭터와 비슷하다 하여 붙인 별명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 울산에서 한 남학생이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그 친구는 쑥스럽게 본인 자기소개를 하고 선생님이 지정해 준 자리로 가 앉았다. 원체 남에게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울산에서 이사를 와도 경상도 사투리가 하나 없는 그 친구에게 이유 없는 시선이 갔다.


그 친구도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말을 하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말을 굳이 내뱉지 않는 그런 친구였다. 나는 가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 왜 왔냐 등 어린 꼬마애가 벌써 호구조사를 하듯이 그렇게 질문을 던져댔더랬다. 그 친구는 하나하나 잘 말해줬다. 이사 온 집도 같은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동이었다. 그 이후 그 친구와 나는 출퇴근 친구가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내 첫 친구.


당시의 나는 부모님이 용돈을 주지 않으셨다. 항상 무일푼으로 통학을 했지만, 가끔 말을 하면 천 원짜리 하나를 주시고는 했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의사셨다. 동네 상가 한 곳에 일반의원을 운영하신다고 말했다. 친구의 집은 집안 특성상 풍족한 것 같았고, 역시 용돈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트램펄린이 하나 있었는데 10분에 200원으로 탈 수 있었다. 지금이야 어린아이들이 개인 트램펄린을 가지고 다니며 탄다고 하지만 그 당시 약 20평가량의 그 커다란 비닐하우스 트램펄린은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친구는 내가 용돈이 없을 때마다, 나를 위해 스스럼없이 400원을 내주었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항상 그 친구와 둘이 실컷 트램펄린을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 얼마 안 되는 동전 몇 개뿐이지만, 나를 위해 항상 그 친구는 그렇게 돈을 내어주고 함께 놀았다.


그렇게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 2학년부터 6학년까지 4년간의 세월을 함께 지냈다. 그리 엄한 어머니 아버지도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은 유일하게 말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샘과도 같은 시간이었고 그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이 행복했다. 그렇게 초등시절은 지나고 중학교 입학을 준비했던 우리는 각자 다른 학교에 진학하면서 헤어졌다. 친구는 중학교가 멀어 다른 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우리는 길었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마쳤다.


나는 그 당시 친구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2학년 시절 수줍고 어리숙하게 자기소개를 하던 내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약간의 연민의 감정으로 그 친구를 대한 것 같기도 하다. 뭔가 동질성보다, 이 친구와 내가 친구가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가갔다. 일종의 히어로 콤플렉스 같은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항상 챙겨주던 건 다름 아닌 그 친구였다. 초등학교 시절 즐겁게 지냈지만 나를 항상 챙겨주고 언제나 반가이 맞아주던 친구의 부모님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영국에서 해가 져가는 이 시간, 내 초등학교 시절을 빛내준 어린 친구가 보고 싶다. 연락처는 있고 변한 적도 없는데, 내가 연락한 적이 없다. 여전히 나는 그냥 나를 찾아주는 사람을 기다리는 NPC, 그때의 그 어린 시절에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은 감정을 가진 하나의 친구로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걸어볼까 한다.


"네가 매일 방방에서 내준 400원이 생각나서 연락했다. 친구야. 잘 지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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