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유독 선명하다

버려진 시간이 아닌, 쓰인 시간

by uswoong

본가와 꽤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던 때였다.
혼자 산 지도 막 반 년이 되어가던 시기였고, 그 무렵의 자취방은 마치 오래전부터 내 방이었던 것처럼 금방 친숙해졌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때 나는 본가에서 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빈둥거리곤 했다.

휴일이면 종일 방에서만 머물 때도 많았다. 편안한 행복감이 분명 있었지만, 그 ‘쉬는 것’이 어느 순간 ‘시간을 버리는 일’이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하지 않는 휴일은 금세 흐트러졌고,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 무렵 나는 쉬는 것이 더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던 3년 전의 어느 휴일, 나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전날 밤, 마음속 짐을 스스로 다독이며 잠들었고, 아침에 문을 나서던 순간 몸이 놀랄 만큼 가벼웠다.
예전에는 억지로 시간을 버리기 위해 밖으로 나오곤 했지만, 그럴 때면 마치 집에서 쫓겨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달랐다. 정말로 ‘내 발로’ 걸어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똑같이 집을 나서는 일이었지만, 분위기도 감정도 완전히 달랐다.


그날 나는 먼저 대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휴학 중이라 출입이 불가능했지만, 안에 있던 친구가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늘 같은 층, 같은 칸의 책만 빌려 보았기에 도서관 전체를 둘러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자료동 전체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공간도 공기도 새로웠다. 오래된 건물임에도, 그곳의 공기와 책들은 묘하게 친근했다.
영어 원서들이 빼곡한 서가 앞에서는 ‘여기서 매일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졌을 텐데’,
‘시간이 무한하다면 <어바웃 타임>의 아버지처럼 여기 있는 책을 전부 읽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도서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친구와 잠시 피시방에 들렀다가, 그가 아르바이트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데려다주었다.
그 후 나는 근처의 큰 호수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항상 눈에 들어오던 초록빛 상록수들이 아파트 단지를 지붕처럼 덮고 있었다.
아, 오늘은 정말 쉬는 날이구나—라고 그제야 느꼈다. 길은 시원하면서도 따뜻했다.

호수를 천천히 한 바퀴 돈 뒤 근처의 미술관으로 갔다.
오후 7시가 넘어서인지 관람객은 나뿐이었다.
사람 많은 미술관에서는 괜히 ‘제대로 감상하는 척’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제1전시장에서 제6전시장까지 걸어 다니며, 마음에 드는 작품은 사진으로 남기고 마음에도 담았다.
물론 뜻을 알 수 없던 작품도 있었다.
‘예술가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하고 속으로 피식 웃기도 했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고요하게 흘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가벼웠고, 즐거웠고,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다시 친구와 만나 가볍게 술을 마시며 웃었다.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휴식이 있었나 싶을 만큼 충만한 날이었다.

되돌아보면, 그날은 고독의 긍정적인 면을 처음 분명하게 느낀 날이었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고독은 외로움과 달리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지닌다.

그날 나는 그중 ‘긍정적인 고독’을 깊게 느꼈다.


그때의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됐다.
쉰다는 것은 시간을 허투루 버리는 일이 아니라, 그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살아 있는 듯이 쓰는 일임을.


작가의 이전글사람이 떠난 자리, 습관이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