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에서 블로그
메모장에 기록해두었던 생각들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것들을 과감히 삭제하곤 했다.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생각들은 분명 당시의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었을 텐데 지금 와서 모두 없애버린 것이 조금 아쉽다. 기억해둘 만한 무언가로 남겨놓을걸 하는 후회도 든다.
과거의 생각들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어쩌면,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성장의 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메모장 속 생각들을 여기 남겨보려고 한다.
글이 형태를 갖춘 채 남아 있으면, 그전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버릴 때와는 다른 감정이 든다.
나는 늘 끝없이 무언가를 버리려고 했다. 하나를 깨우치면, 이전에 가졌던 생각을 지워버리고, 또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그 전의 것들을 내던졌다. 반복이었다.
아마 한 번에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의지하는 것이 버거웠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제는 버리더라도 흔적은 남기자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적어두려 한다.
그래서 이 글에는 2022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남겼던 짧은 글과 생각들을 옮겨 적는다.
볼드체는 당시의 기록, 작은 글씨는 지금의 내가 남기는 각주다.
이 정도 행복하면 당분간 불안해도 될 것 같아요
집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문장을 다시 읽으니 그때 느꼈던 ‘행복한 기운’이 지금도 어렴풋이 전해진다.
결국 사람이든 글이든, 나중에 기억나는 건 느낌인 것 같다.
‘그 사람은 편안한 사람이었지’, ‘그 책은 박진감이 넘쳤어’ 같은 감각들 말이다.
결국 이해다.
어떤 작품이든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한다. 자신의 시선에서 상대방의 작품을 이해하려고 한다.
쇼펜하우어가 “사람은 결국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기록은 그 말을 ‘작품’에 적용해 본 짧은 메모였다.
인생에 가정법은 없어
조금 오글거리는 문장이지만, 아마 소년 시절의 너라는 영화를 보고 난 바로 다음 날 적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 이와 비슷한 대사가 있었다.
꽤 인상 깊게 본 영화였고,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행위를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 영화가 그랬다.
남들에게 하듯이 나한테 관대하기
아마도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문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