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과 기록 사이에서

메모장에서 블로그

by uswoong

메모장에 기록해두었던 생각들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것들을 과감히 삭제하곤 했다.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생각들은 분명 당시의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었을 텐데 지금 와서 모두 없애버린 것이 조금 아쉽다. 기억해둘 만한 무언가로 남겨놓을걸 하는 후회도 든다.

과거의 생각들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어쩌면,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성장의 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메모장 속 생각들을 여기 남겨보려고 한다.

글이 형태를 갖춘 채 남아 있으면, 그전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버릴 때와는 다른 감정이 든다.

나는 늘 끝없이 무언가를 버리려고 했다. 하나를 깨우치면, 이전에 가졌던 생각을 지워버리고, 또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그 전의 것들을 내던졌다. 반복이었다.

아마 한 번에 두 개의 생각을 동시에 의지하는 것이 버거웠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제는 버리더라도 흔적은 남기자는 마음으로 블로그에 적어두려 한다.

그래서 이 글에는 2022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남겼던 짧은 글과 생각들을 옮겨 적는다.

볼드체는 당시의 기록, 작은 글씨는 지금의 내가 남기는 각주다.


2022/9/20 오후 10:21 화요일

이 정도 행복하면 당분간 불안해도 될 것 같아요

집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문장을 다시 읽으니 그때 느꼈던 ‘행복한 기운’이 지금도 어렴풋이 전해진다.

결국 사람이든 글이든, 나중에 기억나는 건 느낌인 것 같다.

‘그 사람은 편안한 사람이었지’, ‘그 책은 박진감이 넘쳤어’ 같은 감각들 말이다.


2022/10/10 오후 12:33 월요일

결국 이해다.

어떤 작품이든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한다. 자신의 시선에서 상대방의 작품을 이해하려고 한다.

쇼펜하우어가 “사람은 결국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기록은 그 말을 ‘작품’에 적용해 본 짧은 메모였다.


2022/10/11 오전 8:46 일요일

인생에 가정법은 없어

조금 오글거리는 문장이지만, 아마 소년 시절의 너라는 영화를 보고 난 바로 다음 날 적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 이와 비슷한 대사가 있었다.

꽤 인상 깊게 본 영화였고,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행위를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 영화가 그랬다.


2022/10/11 오전 9:00 일요일

남들에게 하듯이 나한테 관대하기

아마도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오래 기억해야 할 문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