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작은 병원에서 보낸 6개월"
며칠 후 합격통보를 받았다.
낯선 시골 마을에서 간호사로 일한 첫 번째 직장이었다. 고인돌로 유명한 시골 지역으로 떠나 첫 기숙사 생활도 함께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드라마에서나 들어본 ‘룸메’에게 주려고 간식을 챙겨갔다. '이제 나에게도 룸메가 생기는 건가?' MBTI 파워 N인 나는 이미 룸메와 절친이 된 드라마 각본까지 완결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부푼 마음을 안고 들어간 기숙사 방 안은 캄캄했다. 이층 침대 두 개가 양쪽에 놓여있었고 행여나 누가 있을까 싶어 후레쉬를 비추고 안으로 들어가 미리 문자로 안내 받은 대로 2개의 이층 침대 칸 중 깨끗해 보이는 침대를 선택했다.
첫 직장, 첫 기숙사 생활..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된 첫 직장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간호사 취업을 두려워하던 나에게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일은 가벼운 마음이 들게 했고 작은 일부터 배울 수 있는 초석이 되어주었다.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에게 맡겨진 일은 실습생때부터 줄곧하던 바이탈 측정이었다. 병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바로 line을 잡는 주사실로 보내졌다. 병원 경력조차 없는 막 실습생 딱지를 떼고 온 나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바이탈 측정이 전부였다.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있을 때 한 번의 전공의 파업이 있었다. 그로인해 2차 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아르바이트생인 나에게도 환자가 많은 병동으로 로테이션이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아르바이트에서 정규직으로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시골의 2차 종합병원에서는 과가 나누어져 있지 않고 모든 과의 환자들이 한 병동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간호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가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인턴, 업무원, 이송요원의 일을 말이다. 현재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나의 시각으로 보면 어떻게 그 일을 했나 싶지만 그때는 생판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였기 때문에 불평불만 없이 일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간호사가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대우를 받고 심지어는 간호조무사에게 업무를 배우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체계가 불확실했던 것은 불만 사항이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일은 단순했다. functional 체계로 40~50명 정도의 병동 환자들을 acting과 charge 업무로 나누어서 보는데 짬이 찬 사람이 charge의 업무, 이를테면 오더를 보고 의사에게 직접 노티를 하는 일을 하고 acting은 charge에게 지시를 받고 투약, 직접 환자를 상대하는 것이 주 업무다. 나는 당연히 acting 업무를 하며 머리를 쓰기 보다는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고 몸을 쓰는 일을 했다. 이때 많은 환자들의 line start를 해보며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 정말 line이 없는 항암환자의 실핏줄같은 line에도 성공을 했으니 말이다.
이런 단순 반복의 일을 6개월 지속하다보니 업무가 단조롭고 따분하게 느껴져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이트 전담을 시켰을 때의 일이었다. 나이트 업무만 계속 하다보니 꽤나 우울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나보다. 사실 그보다도 시골의 작은 병원에 다니고 있는 나와 주변의 서울로 취업한 대학 동기들의 모습이 늘 비교되곤 했다. 수전증을 극복하고 간호사로 일도 나름 잘 하고 있겠다 더 큰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이트 전담을 마지막으로 6개월간의 시골 종합병원 간호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충분히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겪어보며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느껴졌을 때 내린 결정이었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라는 책을 보면 small step 전략이라는 게 나온다. 어떤 일을 성공하고 지속하고 싶다면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 또한 한 걸음 나아가는 것부터가 커다란 목표를 위한 토대임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간호사로 내딛는 첫 시작이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의 토대는 나에게 큰 꿈을 키워주는 주춧돌이 되어주었다. 이후 대학병원 취업을 준비하며 경력으로 적어낸 이력서를 보고 BIG5 병원 중 한 곳이었던 대형병원의 면접관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6개월 일했다고 적어낸 이 병원에서의 경력이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 같아요? 플러스가 될 것 같아요?
이미 마이너스라는 눈초리를 주며 건네는 질문에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이자 경력이었기에 자신 있게 플러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뒤로는 긴장감에 뭐라고 대답한지 기억도 안 나는 면접을 마쳤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슬픔에 젖어있을 수 만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지원할 수 있는 모든 대학 병원에 계속해서 도전했다.
마음은 조급하고 면접에서는 번번이 낙방하면서 내 자신과의 멘탈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와중에도 코로나는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비대면으로 면접을 보는 곳은 지방에 사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교통비를 덜 수 있어 다행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시작부터 어려웠던 이력서와 자소서가 끝이 아니라 면접도 1차, 2차로 나뉘어 기나긴 여정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지나고 나서 느낀 것은 나를 몰랐기에 더 어려운 과정이었다. 자소서를 써내는 것도 면접을 보는 것도 결국에는 나를 소개하고 나를 표현하는 과정인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기에 더욱 힘들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