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 인수된 뱅크샐러드의 미래
몇 년째 아침마다 버릇처럼 들여다보는 앱이 있다. 스타트업 레이니스트가 만든 뱅크샐러드다.
가장 큰 이유는 첫 페이지의 내 자산 규모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내가 투자를 해봐야 얼마나 했겠냐만 증권사 2곳과 은행 1곳에서 진행한 주식·펀드가 얼마로 불어났는지(혹은 쪼그라들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꽤 짜릿하다. 제로금리 시대에 그래도 투자는 성과를 내고있다며 안심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뱅크샐러드를 만든 레이니스트가 기업가치 5000억원의 '예비유니콘'급 기업이라는데, 이 회사 도대체 돈을 어떻게 버는 거지?
그도 그럴게, 뱅크샐러드는 다양한 금융자산 관리 플랫폼이면서도 광고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투자상품이나 카드, 대출, 연금 등 금융상품을 추천(큐레이팅)하지만 광고성은 아니다. 혹시 모를 숨겨진 AD배지도 어디에도 없다.
과거 김태훈 레이니스드 대표의 인터뷰나 발언을 찾아보면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확고했다. 대신 다양한 금융상품을 큐레이션 한 뒤 기업에서 수수료를 받는 것을 수익모델로 삼았다. 사용자가 입력한 금융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혜택이 큰 신용카드, 가장 금리가 낮은 대출상품, 가장 필요한 보험상품 등을 소개해 가입을 유도하고 여기서 수수료를 발생시키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펀드판매사, 보험설계사이자 '금융상품 큐레이터'다.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큐레이팅 콘텐츠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신념인 셈이다.
이용료가 없는 데다 큐레이팅 콘텐츠의 질까지 청정하니 사용자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런데 뱅크샐러드 입장에선 이게 확실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보다. 기사에 따르면 2년간 뱅크샐러드가 기록한 누적적자는 45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가치도 한때는 6000억원으로 평가받았으나 올해는 3000억원 정도로 평가받았다.
그 사이 테크핀 업계의 다크호스 비바리퍼블리카가 뱅크샐러드의 영역에도 마성을 뻗쳤다.
곧 기업가치 10조원의 데카콘에 등극한다는 토스의 성장세는 어마어마하다. 간편송금으로 시작해 증권/금융업까지 회사를 확장시키더니 금융 콘텐츠 분야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젠 뱅크샐러드의 킬러 콘텐츠인 자산관리와 가계부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실제 2021년 7월 기준 토스앱의 UI구성은 뱅크샐러드 앱의 UI구성과 유사하다. '자산관리'와 '가계부'라는, 사실상 뱅크샐러드를 쓰는 이유의 전부를 토스가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사업을 서비스하기 시작하면서 예고됐던 결과기도 하다. 하나의 은행 앱에서 타행계좌나 신용카드 이용 실적 등을 조회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다. 뱅크샐러드가 문자메시지 스크랩핑 등으로 꾸역꾸역 해왔던 이용자 데이터 취합·관리 기능이 이젠 원천데이터로 가능해졌다.
토스뿐 아니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금융기관은 물론, 네이버나 카카오 등 IT기업도 이제 마음만 먹으면 뱅크샐러드의 자산관리, 가계부 UI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공룡들은 금융기능을 수익모델로 놓고 자산관리 등 UI를 콘텐츠로 사용하려는 모습이다.
은행수익(ex. 예대마진 등)이나 증권수익(ex. 증권매매 및 상품판매 수수료), 결제수익(결제수수료)으로 수익을 내면서 자산관리는 사용자를 잡아둘 콘텐츠로 사용하려는 것. 금융기능을 가진 테크핀(토스 카카오 네이버)기업이나 IT기능을 더한 핀테크(국민 신한 등)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큐레이션으로 수익을 내려는 뱅크샐러드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얼마 전 KT가 뱅크샐러드를 인수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1500억원을 투자해 뱅크샐러드의 최대주주에 등극한다는 것. KT는 기사에서 통신사, 은행(K뱅크), 카드사(BC카드) 등을 통해 쌓아 온 금융데이터를 뱅크샐러드 플랫폼을 통해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나름 성공적인 M&A 엑시트다.
대기업 KT가 후발주자로 테크핀 사업에 뛰어들고 뱅크샐러드를 선택한 만큼 뱅크샐러드의 변화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의 테크핀 사업 확장 의지도 강하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뱅크샐러드의 변화가 설렘 반 우려 반이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기능을 더해 뱅크샐러드가 더 다채로워진다면 좋은 일이지만, 괜히 인수 후 무리하게 수익을 낸다고 광고를 덕지덕지 붙일 것 같은 걱정도 든다. 대기업 특성상 수익모델 없는 회사를 M&A 후에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어서다. (특히 KT는 비교적 보수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나야 주주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니 어쩌든 상관은 없다. 자산관리를 해주는 앱이 늘어나니 선택권이 넓어져 좋은거일 수도. 하지만 괜히 금융상품 큐레이팅 서비스의 순수성이 훼손될까 노파심도 든다.
어쨌든, 나는 오늘 아침에도, 설렘 반 우려 반으로 뱅크샐러드 앱을 들여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