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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Oct 11. 2022

방실이라 불렸던 아이


지하철에 유모차를 끌고 탄 아기 엄마가 옆에 앉았다. 유모차 안의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하얗고 통통한 볼살이 귀여운 여자 아이였다. "어머 너무 예뻐요. 몇 개월이에요?"라고 묻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코로나 이후로는 낯선 사람들에게 말 거는 게 조심스럽다.


아기를 가만히 보다가 둘째 딸 생각이 났다. 우리 둘째도 아기 때 저렇게 하얗고 예뻤다. (물론 지금은 더 예쁘다. 큰일 날 뻔^^;;) 잠깐 첫째 때 이야기를 해 보자면, 아기가 나올 기미가 보여 병원에 가서 밤새 노력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인내심이 부족했던 나는 "의사 불러. 나 그냥 수술할래."를 외치고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제왕절개를 한 것에 대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안함으로 모유수유만을 고집했다. 입원실은 5층, 신생아실은 2층이었는데 신생아실에서 두 시간이 멀다 하고 아기가 깼다고 전화가 왔다. 병원에 있는 5일간 쉬기는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산후조리원에 가서는 아기가 밤새도록 울어 죽을 맛이었다. 결국 며칠 뒤에 포기하고 분유를 먹였더니 울지 않았다. 의지만 가지고 완모가 가능한 것이 아님을 그제야 알았다.


둘째 때는 첫째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철학관에서 좋다는 날짜를 잡아 제왕절개로 출산한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5일간 푹 쉬자 마음먹었다. 신생아실에 얘기해서 밤중 수유는 하지 않겠으니 분유를 먹여 달라고 말해 두었다. 그 병원은 수유할 때 아기를 방으로 데려다주었는데, 낮에도 아기는 그다지 자주 오지 않았다.


편안하게 5일을 보내고 아기와 함께 퇴원한 첫날, 나는 어쩔 줄 몰라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이건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선생님 아기가 계속 잠만 자요. 어떻게 해요?"

"깨워서 먹여 보세요."

"깨워도 잠깐 깼다가 다시 자요."

신생아가 밤새도록 한 번을 안 깨고 잠을 자다니! 낮에도 거의 잠만 잤다. 깨워서 젖을 물리면 조금 빨다가 입을 헤벌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내 상식으로 신생아는 두세 시간마다 수유를 하는 것이 정상이었는데 첫째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 되자 이 또한 너무 당황스러웠다.


둘째는 매우 순한 아이였다. 신생아 티를 벗고 조금씩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질 무렵, 아침에 깼나 보러 가면 혼자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 대신 '방실이'라고 불렀다. (이후 호칭 방실이로 통일함) 순하고 잘 웃어서 친척들 한테도 예쁨을 많이 받았다.


아이들과 잠을 잘 때 두 아이를 양쪽에 두고 내가 가운데서 잤는데 첫째가 늘 자기 쪽을 보고 눕기를 원했다. 방실이는 자연스럽게 내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순한 아이라 늘 그렇게 내 뒤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얼마 후 방실이는 내가 베고 자던 꽃무늬 베개에 굉장한 애착을 보였다. 엄마가 오빠 쪽만 보고 누워 잘 때면 엄마 대신 베개 가장자리에 붙은 레이스를 만지며 잠들었던 모양이다. 낮에는 그 베개에 엎드려 레이스를 만지작 거리며 놀았다. 차를 오래 타고 여행할 때도 베개만 있으면 됐다. 한 번은 여행지 호텔에 베개를 두고 와서 택배로 받은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베개 레이스를 뜯어 코안에 넣기 시작했다. 레이스 색깔은 약간 어두운 카키색으로 코안에 넣으면 코딱지 같기도 한 게 잘 안보였다. 어느 날 그걸 발견하고는 놀라서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는데 코안에서 동글동글한 레이스 몇 조각을 집게로 빼내야 했던 사건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베개 레이스가 다 떨어져 갔다. 다행히 베개는 두 개였다. 두 개 다 떨어졌다. 다행히 이불과 세트였다.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그 이불이 깔려있으면 좋아서 깔깔 거리며 이불 위를 뒹굴었다. 면소재의 이불이 닳아 뜯어지기 시작했다. 세탁소에 가져가서 닳아진 부분을 잘라내고 레이스를 이어 붙여 작은 이불로 만들었다. 집에서는 늘 그 이불을 끌고 다녔다. 일곱 살 때까지 그랬다. 굳이 이불과 방실이를 떨어트려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고 저 이불마저 닳아 없어지면 대체할 이불을 찾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이불을 버리라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 봐 숨겨두었지만 다시는 찾지 않았고 방실이는 그렇게 애착 이불과 이별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방실이에게 미안하다. 엄마 손길 대신 보드라운 베개와 레이스의 느낌으로 위안받으며 잠들게 되기까지 엄마가 돌아누워 주길 기다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둘 중 하나라도 순한 게 고마울 뿐이었는데, 순하다고 내버려 뒀던 게 뒤늦게야 미안하다. 아이가 물건에 애착을 보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혼자 두는 것은 좋지 않다. 어떤 물건도 엄마의 사랑을 대신할 것은 없다.




방실이는 말을 잘했다. 네 살 때 어린이집 알림장에 선생님이 많이 써 주셨던 말이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그저 칭찬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담을 갔을 때 선생님 말씀이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잘 안 들리는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난 한 번도 우리 애 목소리가 크다고 생각 안 했는데? 왜 목소리가 커진 거지? 내가 말을 잘 안 들어줬나?'

눈물 많고 요구사항도 많은 첫째의 말에 더 귀 기울인 것 같았다. 항상 순하고 애교 많은 방실이는 그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존재감을 표현하고 있었나 싶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방실이는 여전히 말을 잘하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친구들 간의 싸움을 곧잘 중재했는데 그 모습을 본 옆반 선생님이 학교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TF팀 회의 참석자로 방실이를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가끔은 말을 잘한다는 게 미움을 사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최대한 개입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싸우든 말든 알아서 해결할 때까지 그냥 놔두는 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딸이 그다지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라는 이기심 때문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말 잘하는 방실이에게 자신의 딸이 당한다고 생각했는지 친했던 엄마가 방실이를 감정적으로 대했다. 아무리 속상해도 어른이 아이한테 그러는 건 좀 반칙이지 않나.




방실이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이다. 요즘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은 딱 두 가지이다.

방 좀 치우라는 잔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었을 때는 "어 사랑해 엄마 나가."

공부하냐고 관심을 보이며 방문을 열었을 때는 그냥 "나가."

방실이는 마라탕, 초밥, 치킨, 곱창에 행복해하고, 쿠키나 푸딩 같은 디저트 만드는 게 취미이다. 공부를 잘하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하고 자신의 성적에 만족하는 정말 낙천적인 성격이다. (방실이의 성적과 성격을 두고 누구 닮은 것인지 남편과 의견이 맞지 않는다) 타고난 성격이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 집 세 아이의 성격은 모두 다르다. 첫째는 예민하고, 둘째는 낙천적이고, 셋째는 까칠하다. 아이의 타고난 성격이 이러한데 아이에게 다른 걸 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낙천성을 긍정성으로, 까칠함을 정의로움으로 다듬어 주는 것이 내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원석들을 보석으로 다듬을 세공사다.

방실이 여덟살때 사진 / 미끄럼틀 타는 방실이와 막내 / 꽃무늬 베개와 함께 한 방실이와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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