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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Aug 02. 2022

웃는남자 박효신과 함께 한 완벽한 하루

박효신 님이 볼지도 모른다고 설레면서 쓴 글


"자기야, 그거 제목이 뭐였더라? 입 찢어진 남자 나오는 거 언제 보러 가?"

"하하 아빠~우는 남자~"

"아니야. 웃지 않는 남자야~"

"다 틀렸어. 웃는 남자라고~~~"


지난겨울, 눈 내리는 디지털 미디어시티역 승강장에서 경의선 전철을 기다리는데 눈이 내렸다. 라디오에서는 박효신의 '눈의 꽃'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해마다 겨울이면 즐겨 듣던 노래였다. 박효신의 다른 노래들도 좀 들어볼까 하고 듣다가 'Goodbye'의 가사 어느 부분에서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게 뭐라고 그리 어려웠을까 Goodbye' 힘들게 쥐고 있는 게 있다면 이제 놓아주라는 위로의 말로 들렸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나는 박효신의 팬이 되었다.


뮤지컬 웃는 남자에 박효신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1차, 2차 티켓 판매가 끝난 시점이었고 박효신이 나오는 회차는 전석 매진이었다. 알았다고 해도 몇 초 만에 끝나버리는 피켓팅 경쟁에 뛰어들어 표를 구할 자신은 없다. 어디서 암표라도 구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6월 28일 오후 2시, 뮤지컬 웃는 남자 3차 티켓 오픈! 일단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 남편, 직장동료, 언니, 손 빠른 친구 한 명에게 부탁했다. 정말 떨리는 순간이었다. 2시가 되기 5분 전부터 티켓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검색으로 알아낸 방법인데 효과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티켓팅이 시작되었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날짜 선택을 안 하고 예매하기를 눌렀던 게 대기 순번이 뒤로 밀리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만 명 이상의 대기 순서 로딩 지옥에 걸려버리고 말았고, 남편과 친구는 아예 진입조차 불가, 언니는... 언니가 너무 좋은 자리를 예매했다길래 신나서 보니 박효신이 아닌 다른 분... 실패. 다행히 직장 동료가 성공을 했다. 내가 원하는 1층과 2층 앞쪽 좌석은 이미 끝나버렸고 2층 A석 구석자리만이 가능했으나 괜찮았다. 3층도 아니고 무려 2층이다.

"와~너무너무 신난다. 정말 고마워요. ○○씨 나의 은인이야. 내가 밥 살게. 아니 술 살게요~~ 하하하."

어디 대회 나가서 금메달이라도 딴 기분이었다. 앞으로 한 달 넘게 어떻게 기다리나 했는데 벌써 그날이 온 것이다.




7월 31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뮤지컬을 함께 보기로 한 우리 언니와 광화문에 네이버 검색으로 찾아낸 근사한 식당을 예약하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었는데 양은 적었지만 꽤 맛있었다. 언니가 워낙 소식가라 딱 좋은 양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광화문 거리를 조금 걷다가 교보문고에 들어갔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당선자들의 책이 전시된 부스가 눈에 띄었다. 부러웠다. 나도 열심히 써서 저 자리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교보문고를 둘러보고 세종문화회관 앞 커피숖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언니 친구 중에 동생이랑 이런 공연 보러 다니는 친구 있어?"

"없어."

"자랑 좀 했어?"

"그럼~자랑 엄청 하고 다녔지."

언니 앞에서 오래간만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세종문화회관 앞은 많이 지나다녔지만 안에 들어가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넓어서 2층이라도 3층 높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멀었다. 무대와 내가 몇 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듯했다. 세상 살면서 아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부러워 보긴 처음이다.

"나 저기 저 아래, 아니 저기 2층 맨 앞이라도 앉고 싶다..."

"여기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그새 잊었다. 3층 B석이라도 어떻게 구할 수 없을까 간절했던 마음을. 그런데 잠시 후 내 앞에 키가 크신 남자분이 앉으면서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던 내 마음이 소용돌이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멀어서 답답하게 보이는 무대의 가운데를 떡 하니 가리는 그분의 뒤통수가 정말 얄미웠다. 허리를 이리저리 꺾어가며 보고 있자니 집중이 잘 안 됐다. 저 앞에 노래하고 있는 사람이 박효신이 맞는 건가... 자꾸 잡념이 들었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밥은 먹었을까, 오전에 썼던 글에 최초의 댓글이 달렸던데 답글을 뭐라고 써드리나 생각하며 약간은 지루한 듯 한 85분의 시간이 지나고 1부가 끝났다.


휴식시간에 잠깐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갔을 때 생각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순간인데 왜 이렇지? 난 지금 장애물에 신경 쓰면서 이 순간을 망치고 있어. 지금 박효신 님이 나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고~!'


2부가 시작됐다. 보이지 않는 걸 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소리에 집중했다. 집중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즐길 수 있었다. 음원으로 들었던 깔끔한 음색이 아닌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었던 소리들. 내가 좋아하는 넘버 끝 고음에서 박효신의 음성이 조금 갈라져서 컨디션이 안 좋은가 싶었는데, 바로 이어지는 넘버에서 소름 끼칠 정도의 길고 맑은 완벽한 고음을 냈다. 역시~최고의 뮤지션 인정~!!(나중에 그 공연을 떠올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게 그 부분이다. 음성이 갈라져 살짝 주춤한 듯했지만 그걸 딛고 확 올라가 버리는 그의 경이로운 모습이 내 기억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공연이 끝날 무렵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광화문역 1번 출구 앞 대기 중.'

기대도 안 했었다. 내가 매일 박효신 노래 듣는 걸 지겨워했던 남편이다. (질투했던 걸까?) 자신은 애들 밥 챙겨주라고 집에 남겨 놓고, 언니랑 뮤지컬 보러 간다고 신나서 나간 아내의 비 내리는 늦은 밤 귀갓길이 걱정되어 나와준 남편의 마음이 고마웠다. 박효신의 퇴근길을 보려는 많은 팬들을 뒤로하고 기쁘게 남편에게 달려갔다. (사실 아주 많이 아쉬웠다는 건 비밀~)


내가 본 공연 이후 일부 출연진 코로나19 확진으로 일주일간의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2022년 7월 31일은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였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생텍쥐페리>



특별하고 완벽했던 날로 기억될 2022년 7월 31일

https://youtu.be/HWF0mj2Hz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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