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쓰지 않는 점심값 20만 원 중 4만 원은 배고픈 아이들을 위한 후원금을 내고, 16만 원은 매달 나를 위한 선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글을 썼는데, 8월에 뭘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해서 고민 중이었다.
막내딸 지윤이와 마트에 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을때 조잘조잘 떠들던 지윤이가 날아가는 새를 보고 물었다.
"하늘을 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대답을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바람이 불었다.
"눈을 감고 팔을 쭉 펴봐. 그럼 나는 것 같을 거야."
와~바로 이거다!
요즘 자주 하늘을 본다. 매일매일 다른 하늘의 모습에 감동하면서 사진을 찍고, 산책길에 새들을 보며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패러글라이딩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도 딸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마자, 난 하늘을 날고 싶었어.
그런데 겁이 난다. 할 수 있을까?
하게 만들면 되지.
바로 내 글에 댓글을 남겼다.
글로 남기고 누군가 봤고 응원까지 받았으니 무서워도 일단 GO~!
2일 차:언제? 어디서?
패러글라이딩을 검색하니 단양으로 많이들 가는 것 같다. 단양까지는 어떻게 가지?운전은 하지만 장거리는 불가능 하기에 버스 노선부터 알아봤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단양 터미널까지 2시간 30분 걸린다.
가볼만하다.
날짜는 언제로 하지? 다음날 피곤할 테니 금요일로 해야겠다. 이런, 다음 주가 마지막 금요일이네.
3일 차: 같이 갈 사람 없을까?
남편이 같이 가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슬쩍 얘기했다. 역시나. 대학 때 선배가 패러글라이딩 하다가 기류를 잘못 타서 무릎뼈가 여덟 조각이 났다며 가지 말라고 한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도 안(?) 타는 사람이다.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코로나에 걸려 어제부터 격리 중이라고 한다.
괜찮아. 혼자 할 수 있어.
4일 차:걱정은 넣어둬~
남편이 패러글라이딩 하러 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한다. 그냥 응원만 해주면 좋으련만 속상하다. 하지만 남편을 이해한다.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응원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일로부터 상대를 보호하려는 것도 다 같은 사랑이니까.
남편에게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대신 최대한 조심할게. 미안.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5일 차:내가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었나?
금요일의 날씨 예보를 확인(맑음)하고, 패러글라이딩 체험자들의 포스팅을 검색하며 괜찮은 업체를 고르는 등 여러 가지 정보들을 수집했다. 업체가 꽤 많아서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해지자.1박 2일 팀 및 박보검도 다녀갔다는 패러글라이딩 업체 (단양 패러마을)로 결정.
남편이 걱정하니 패러글라이딩 할 때 유의사항도 꼼꼼하게 체크해 보았다.
<패러글라이딩 유의사항>
탑승전 확인할 것!
항공청 사업자 등록이 완료된 업체인지 확인할 것
보험가입 여부와 유효기간 확인하기, 이용약관 확인하기.
멀미를 많이 느끼는 편이라면 멀미약을 챙기는 것이 좋다.
탑승후 유의사항!
보호장비 정확히 착용하기
전문강사님의 지시사항에 맞추어 체험할 것
비행 중 이상이 느껴진다면 즉시 이야기할 것
6일 차 : 이제 되돌릴 수 없다!
회사에 연차 신청서를 제출하고 패러글라이딩 업체에 예약금 1만 원을 입금하고버스표도 예매했다.
단양 가는 버스표는 동서울 터미널에서 예약을 했는데 단양역은 예매 시스템이 없어 검색을 해보니 역에서 직접 사야 한다는 글 밖에 없어서 도착하자마자 예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불안해서 단양역에 전화를 해보니 '버스타고'라는 예매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기억해 둬야지.
버스타고 : www.bustago.or.kr 시외버스 통합 안내 시스템 / 전국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패러글라이딩 업체에서 단양 터미널로 픽업 오는 시간표를 보내주었다. 나는 12시 30분 단양역 도착. 픽업 차량은 1시 10분. 3시 40분에 다시 터미널로 가서 4시 20분 차로 서울로 올라오는 게 나의 계획이다.
패러글라이딩 9만 원, 사진 2만 원, 버스비 왕복 약 4만 원, 점심값 1만 원 = 16만 원.
완벽해!
7일 차: 드디어 내일이다!
패러글라이딩이 버킷리스트에 있었다거나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나이가 더 들어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너희 셋 키우면서 일까지 하느라고 하고 싶은걸 못하고 살았어. 너희들도 부모가 되면 그렇게 살아야 할 거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해야 하는 일만 하고, 하고 싶은 일은 못한다고 우울해하던 게 불과 석 달 전이다. 지금도 내 상황은 그때와 똑같지만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를 바꾸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