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Aug 17. 2022

점심 대신 받은 선물

점심값 20만 원으로  나에게 선물하기


통장이 오랜만에 숫자들로 빽빽하다. 월급이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옜다, 용돈'이라는 문구와 함께 용돈을 보냈다. 이럴 땐 빛의 속도로 답장이 온다.

'엄마 사랑해요. 하트 뿅뿅.'

일 할 맛 난다. 그다음 나머지 돈은 모두 쓰임이 정해져 있기에 통장 속의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해 보인다. 그중에 20만 원을 제외하고는.


나는 석 달째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대신 산책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운동 겸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점심시간에 산책을 했는데, 그 시간이 나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내가 점심을 먹지 않고 산책을 하면서 아껴지는 내 점심값 20만 원은 어디로 간 걸까? 돈이 남지를 않네'

그래서 지난달부터 월급이 들어오면 돈을 따로 빼놓았다. 이 중 4만 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유니세프에 후원금으로 나가고(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것도 나를 위한 선물이다), 나머지 16만 원은 나를 위한 선물을 사기로 했다.


7월에는 뮤지컬 웃는 남자 티켓을 샀다. 이번 달에는 뭘 하지? 나는 괜찮은데 언니가 보기 싫어하는 흰머리를 가리기 위한 염색도 해야 하고, 요즘 부쩍 쭈글쭈글 해진 내 피부에 바를 수분 크림도 필요하다. 쓰지 말고 모아서 명품백을 하나 살까?


아니다. 이 돈은 그렇게 쓸 돈이 아니다.

정해진 생활비 안에서 쓰기 망설여졌던 일, 가족들 다 같이 하기는 부담스럽고 나 혼자 하기는 미안해서 못 했던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모아서 쓰는 거 안된다. 이번 달 안에 꼭, 한 번에 써야 한다는 게 규칙이다.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당장 하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는다. 9월부터 12월까지는 이미 다 정해놓았다.


9월에는 달리기 대회 (마라톤대회라고 하기는 너무 부끄러운 5km)를 신청했는데, 달리느라고 고생한 나에게 16만 원짜리 점심을 먹여 줄 생각이다.


10월에는 기차 타고 단풍여행을 갈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단풍 많은데 뭘 거기까지 가냐며 귀찮은 거 싫어하는 남편과 살면서 가보지 못했던 단풍구경, 이제는 혼자 가도 좋을 것 같다.


11월에는 와인을 한 병 사야겠다. 가끔 마시는 3만 원대 와인 말고 16만 원짜리 와인을 한 병 사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고 싶다. (바뀔 가능성 있음, 남편 하는 거 봐서)


12월에는 올 한 해 내가 감동받은 열 권의 책을 사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보내려고 한다. 책을 받은 사람이 나와 같은 감동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나를 위한 선물이다.




예전의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옷, 가방 등 물건을 사는 것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여행을 다니는 등 경험을 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소비라고 생각했다. 나를 돋보이게 해 줄 비싼 물건들을 지니고 다니지 못함에 속상해하기도 했었다.


얼마 전부터 생각이 달라진 나는 옷이나 가방보다 내 말과 행동, 생각이 나를 더 돋보이게 해 줄 수 있으며 결국 닳아 없어질 물건보다 머릿속에 평생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경험과 추억들이 더 가치 있는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물건이 아닌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경험을 선물할 것이다.


그나저나 저 이번 달에 뭘 하면 좋을까요?
갑자기 16만 원이 생겼다면 뭘 하고 싶은지 댓글 남겨 주시면 제가 대신해 드릴게요~^^




*7월에 나에게 준 선물, 뮤지컬 웃는 남자 보러 갔던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c1ac4f95da42467/31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야~노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