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 S와 B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S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 아이는 너무 직선적이고 화끈한 성격이라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반면 B는 조금 부드럽고 여유로운 성품을 가진 아이라 편안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첫사랑의 설렘, 이별의 아픔 등 혼란스럽던 20대의 거의 모든 추억들을 함께 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S의 직선적이고 화끈한 성격도 적응이 되니 오히려 좋았고, 가끔 다투고 토라져 연락을 안 하고 지내기도 했지만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화해를 했다. 힘들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그 친구들이었고, 언제 싸웠냐는 듯 달려와 같이 아파해 주고 축하해 주는 그 친구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30대 초반 결혼을 하고도 나는 그 친구들을 자주 만났다. 그런데 남편은 그 친구들과의 만남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친구를 만난다고 남편에게 소홀한 것도 아니었고, 남편과 할 수 없는 얘기나 남편이 공감해 주지 않는 얘기들도 그 친구들과는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생기고 외출이 불편해 지자 나는 주로 친구 B를 집으로 불렀다. 남편과 시댁에 대한 불만들, 육아에 지친 마음을 그 친구에게 털어내고 나면 가벼운 마음이 되곤 했기에 더욱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반면 S와는 조금 멀어졌다. 그 친구의 화끈한 성격으로 인해 집으로 불러들이기에는 서로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좋은 친구였고 그렇게 평생을 함께할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30여 년 세월이 흘렀고 얼마 전 나는 남편의 소개로 새로운 친구 A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S나 B처럼 나를 즐겁게 해 주고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아니지만, 만나면 나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는 좋은 점이 있었다. 어느 날 A가 말하길 S와 B는 나를 많이 웃게 해 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반면, 나의 소중한 것 한 가지를 가져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배신감을 느꼈지만 많이 힘들지는 않았던 걸 보면 나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의외로 쉽게 30년 세월을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결심하고 S와 B에게 이별을 고했다.
" 소중했던 나의 친구들아~ 내가 첫사랑으로 아파할 때,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힘들어할 때, 원하는 일들을 이루고 기뻐할 때, 아이 키우느라 고되고 외롭다고 느낄 때 언제나 내 곁을 지켜주어서 고마웠어. 하지만 이제는 각자의 갈 길을 가자. 난 네가 원하는 걸 줄 수가 없어. 난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의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해. 그들 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어. 너희들이 가져가려고 하는 나의 소중한 것 한 가지, 나의 건강한 몸! 절대 줄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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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나의 친구 소주, 맥주야."
나의 새 친구 A ( Alcohol free ) 무알콜 맥주 : 일상적으로 마시던 맥주를 끊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