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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03. 2022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구 온난화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

오늘은 막내딸이 소풍을 가는 날이다. 6시에 일어나서 시금치를 무치고 당근을 볶았다. 계란을 두툼하게 부치고 나머지 재료들은 공장의 도움을 받았다. 참기름을 따라보니 너무 조금 이었다.

'모자라겠는걸... 밥에 양념도 해야 하고... 앗! 밥.. 을... 안... 했... 다...!'

김밥 싸기의 첫 단계는 밥이다. 밥부터 안쳐놓고 다른 재료들을 준비하는 게 기본인데 밥을 까먹다니! 웃어야겠지. 얼른 쌀을 씻어 넣고 쾌속 버튼을 눌렀다.


밥이 안됐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냉장고에서 떡볶이 떡과 베이컨을 꺼냈다. 떡에 베이컨을 돌돌 말아 구웠다. 잘게 썬 사과와 베이컨 돌돌말이 떡으로 작은 도시락 한통을 채웠다. 한통은 아이가 고른 과자를 채워 넣었고 이제 김밥만 싸면 된다.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손에 밥알이 달라붙지 않게 물을 묻혀가며 하려니 불편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고무 주걱으로 밥알을 펼치는 방법이 있었다.) 일회용 장갑 생각이 간절했다. 지난 추석 이후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겠다 생각해서 일회용 장갑을 사다 놓지 않았다. 


지금은 열일곱 살인 아들이 아홉 살 추석에 빌었던 소원을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아이가 보름달을 보며 빌었던 소원은 '지구 온난화가 되지 않게 해 주세요.'였다. 학교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에 관한 교육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구는 내 것이 아니다. 깨끗하게 쓰고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다. 나는 말로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었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방에서 내가 편하기 위해 사용하던 일회용품을 사지 않기로 했다. 일회용 랩 대신 실리콘 덮개를 샀고, 일회용 장갑 대신 엄마의 손맛을 가미하기로 했다.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물티슈와도 이별했다.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도 내가 사 먹는 많은 제품들이 일회용 플라스틱에 둘러 싸여 있다. 오늘 아이의 소풍 준비로 사 온 과자, 떡, 베이컨, 김밥 재료 모두에서 나온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이 꽤 많았다. 

우리나라의 1인당 플라스틱 연간 사용량은 132.7kg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플라스틱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17년 기준 연간 790만 톤으로, 5년간 30%가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62%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한 플라스틱이 우리 일상을 넘어 북극, 남극에까지 흘러들어 아기 북극곰들이 플라스틱을 뜯어먹고 있으며, 바다거북이와 고래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잔뜩 삼키고 죽는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이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세계는 ‘플라스틱 퇴출’을 외치고 있다. (카카오 같이 가치 : 플라스틱 바다의 피해자 다음은 우리입니다 / 기사 본문 중에서)


나는 보통 김밥을 열다섯 줄 싼다. 아침에 그렇게 싸 놓으면 저녁까지 해결이 된다. 오늘도 열다섯 줄의 재료를 준비했지만 아들이 집에 없기에 열 줄만 쌌다. 아들은 어제 학교에서 2박 3일로 수련회에 갔다. 보통 아침 일곱 시에 나가서 밤 아홉 시, 열시나 돼야 들어와 집에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는 아들이다. 그런데도 이틀 동안 집에 안 들어온다 생각하니 집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고작 이틀일 뿐인데도...


며칠 전 참사 이후 내장산에 단풍 구경 간 이야기를 쓰고도 미안했고, 아이가 소풍 가서 김밥 싼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미안하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은 미래의 아이들이 환경오염으로 고통받게 될 때도 그저 미안하다 말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 아침에 사다 마신 커피가 담겼던 플라스틱 컵과 빨대가 놓여있다. 

써니, 저건 일회용 아닌 거니? 

난...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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