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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14. 2022

고생했어 며느리

시댁에서 1박 2일 김장을 했다


주말에 시댁에서 1박 2일 머물며 김장을 했다. 시댁은 경기도 파주이고 동네에 집 보다 논과 밭이 많은 시골이다. 시부모님이 농사지으신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한다. 시부모님께서 토요일 오전에 배추를 소금에 절여 놓으셨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해 수육용 고기와 감을 사 들고 시댁에 갔다.


마당에 커다란 빨간 고무통 3개를 놓고 지하수를 받았다. 통 하나에 한 사람씩 앞에 앉았다. 나와 첫째, 둘째가 나란히 앉아 통에서 배추를 흔들어 씻어 옆으로 넘겼다. 그렇게 세 번 세척된 배추를 막내가 날라 예쁘게 쌓았다. 남편은 총지휘 및 정리를 담당했다. 한 시간 만에 배추 씻기가 끝났다.  


저녁을 먹은 후 무 열다섯 개를 채칼로 썰었다. 커다란 고무 통에 채 썬 무와 쪽파, 갓, 마늘, 생새우, 젓갈, 고춧가루 등 양념을 넣고 버무렸다. 전에는 남편과 아버님이 했었는데 이제는 아버님 대신 첫째가 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어머니와 우리 가족 다섯이 배추 속을 넣었다. 첫째는 어제 채칼질을 많이 해서 어깨가 아프다고 숨어 있다가 남편에게 불려 나와 느릿느릿 예쁘게 속을 넣었다. 막내는 의욕적으로 덤비더니 금세 힘들다고 사라졌다. 우리 집에서 김치를 가장 많이 먹는 둘째 방실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함께 했다. 한 시간 반 만에 김장이 끝났다.


어머니는 항상 김치를 통에 담을 때 꼭꼭 눌러서 비닐을 덮은 후 뚜껑을 덮는다. 어머니께서 한 포기씩 꺼내고 나서도 눌러 놓으라고 하셨다. 귀찮은 게 싫은 나는 대답만 알았다고 하고 비닐은 바로 내 버리고 눌러놓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어제 라디오에 김치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게 과학이라고 한다. 김치를 꽉 눌러서 덮어 놓음으로써 산소를 차단시키면 유산균이 좋아하는 환경이 된다고 한다. 요즘 유산균 영양제가 인기인데, 여기 들어있는 유산균 양보다 김치에 들어있는 유산균 양이 많다고 하니 영양제 챙기기 전에 식탁에 김치부터 챙겨야겠다. 썰기 귀찮아서 달라는 데도 안 준 날들을 반성한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삶아 겉절이와 함께 먹었다. 생배추에 김치 속 양념과 굴을 올려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올 겨울 숙제를 일찌감치 끝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틀 정도 밖에서 익힌 후 김치냉장고 안에 넣어두면 겨우내 아삭한 김치를 먹을 수 있다. 갓 지은 쌀밥에 아삭하게 익은 김치를 얹어 먹는 상상 만으로도 침샘이 요동친다. 저녁에는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굽고 두부를 데쳐 겉절이와 함께 먹었다. 아이들은 고구마로 부족하다며 라면을 끓였다.




몇 해 전에 놀러 가서 김치를 한 포기 사 먹어 본 적이 있다. 예상보다 너무 비싸고 맛없었다. 자식들 먹이겠다고 아픈 허리 달래 가며 농사지은 채소들로 만든 김치랑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요즘 사 먹는 김치도 맛있고 김치 말고도 먹을 거 많은데 뭐하러 힘들게 김장을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뀐다. 김장에 깃들인 정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매년 할머니 댁에서 김장을 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지난 주말이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주말에 김장을 하고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난 마치 티셔츠 앞뒤를 바꿔 입고 나온 듯 답답한 기분으로 지하철 역에 서 있었다. 시댁에 있다 보면 가끔 기분이 상한다. 딸과 아들에게 향하는 배려가 며느리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숨기고 웃으며 1박 2일을 보냈다. 몇 해 전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위는 처갓집에 가면 손님인데 며느리는 시댁에 가면 왜 일꾼이어야 하는 건지 억울했다.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된 그 분위기가 싫다.


김장, 추석, 설날이 지나고 나면 듣지 못한 한 마디가 반나절 정도 나를 답답하게 한다.

아주 쉽고 가벼운 한마디 말.

-고생했어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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