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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Oct 06. 2022

낯선 사람과 나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지?


며칠 전, 볼일이 있어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했다.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막내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갔다. 아홉 살 딸은 평소에 수업이 끝나고 돌봄 교실에 4시 30분까지 있다가 피아노 학원에서 한 시간 수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내가 가끔 일찍 데리러 가면 딸은 너무나  좋아한다.


3시쯤 가서 돌봄 교실 선생님께 전화하니 지금 체육 수업 중이라 체육관에 있다고 알려 주셨다.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체육관으로 갔다. 아이들이 피구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문 앞에 서서 피구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딸은 매우 방정을 떨며 상대팀을 놀리는 동작들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저렇게 까지 까부는 녀석이 아닌데, 밖에서 보니 내가 모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공에 맞았는데도 선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안에 있었다. 왜 규칙을 안 지키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고 놔두나 싶었다. 나중에 딸이 말하길, 그냥 피구가 아니라 '초능력 피구'였다고 한다. 피구 시작 전에 뽑기를 해서 뽑기에 적힌 대로 규칙이 변경된다고 한다. 딸은 오늘 목숨이 무려 세 개였다고 한다. 그래서 공을 맞고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상대팀을 놀리며 게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딸을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잠깐 보았다. 고학년 애들이었는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징어 게임 여파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좀 색다르다. 그냥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상어처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코끼리처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처럼이 붙었다. 아이들은 술래가 돌아볼 때 상어처럼, 코끼리처럼 동작을 만들며 멈춰 섰다. 너무 재미있어 보여 나도 끼워달라고 할 뻔했다.


체육수업이 끝난 딸이 나를 보고 반갑게 달려왔다.

"엄마~~"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딸을 한참 동안 끌어안고 흔들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퇴근, 아니 하교를 하는 딸의 발걸음이 매우 당당하게 느껴졌다. 지나가는 애들마다 불러서 아는 척하며 인사를 했다. 혼자 다닌다고 기죽어 다녔을 아이는 아니지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학교 앞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이름도 정겨운 '만나 분식'이 있다. 첫째 둘째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7년쯤 전에는 내가 일을 하지 않았기에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었던 곳이다. 주인아주머니가 타 주시는 500원짜리 믹스커피도 맛있었고, 떡볶이 김밥 쫄면 냉면 돈가스 등 다양한 메뉴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만나 분식에서 엄마들을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아이들이 왔다. 아이들 한테도 콜팝, 피카추, 회오리감자, 떡꼬치 같은 간식을 하나씩 먹이고 학원에 보내거나 운동장에서 놀게 했었다.


막내딸과 함께 만나 분식에 들어갔다. 만나 분식 안에는 운동장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아이들 중 여자아이들 셋이 중간에 앉아 라볶이와 김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딸이 좋아하는 떡꼬치와 어묵, 순대를 주문했다. 잠시 후에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혼자 들어왔다. 여태껏  분식집에 중년 남자 혼자 오는 걸 본 적이 없다. 힐끗 쳐다보니 손목 양쪽에 붕대를 감고 몸에 상처가 좀 있으며 인상이 어두웠다. 세명의 여자아이들 옆에 앉았는데 앞을 보지 않고 여자 아이들 쪽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 계속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딸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너네 뭐 더 먹을래? 아저씨가 시켜줄게."

 남자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머뭇거리자 한번 더 말했다.

"말해. 김밥 더 먹을래?"

난 속으로 '거절해 거절해'를 외치고 있었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겠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남은 음식을 얼른 먹고는 안 먹겠다고 하고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 남자가 주문한 김밥과 어묵이 나왔고, 그제야 아이들을 보던 눈길을 거두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한번 더 첫째 둘째가 저학년이던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만나 분식에서 간식을 먹고 운동장에 가면 아이들 외에도 운동을 하는 어르신들이 꽤 있었다. 보통 어르신들은 운동장 둘레를 걷는 운동을 하는데, 60대 초반 정도의 건장한 남자분이 항상 철봉 운동을 했다. 철봉 주변은 모래와 미끄럼틀, 정글짐이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노는 장소이다. 내가 아이들과 운동장에 놀러 갔을 때마다 그분을 보았기 때문에 운동을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다. 어느 날 학교에 소문이 돌았다. 그분이 여자아이들에게 돈을 줄 테니 본인 집에 가자고 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이었다. 그 후로 그분은 보이지 않았다.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초등학교 앞에 혼자 있는 년의 남자들은 나를 비롯한 엄마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 여자아이들에게 김밥을 사주겠다고 하셨던 분은 단순히 아이들이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  호의를 베풀고자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남자 어른이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호의를 베풀고자 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뿐더러 요즘 아이들은 낯선 사람의 호의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난 어릴 때 어른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으라고 배웠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거절하고 피하라고 가르친다. 99.99999%가 좋은 사람들이고 0.00001%만이 나쁜 사람들이라 해도, 그 희박한 확률이 당하는 입장에서는 100%인 거니까. 아이들이 하는 초능력 피구처럼 운이 좋으면 목숨이 몇 개로 늘어나는 일은 현실에선 절대 없으니까.


막내딸은 오늘도 혼자 집에 온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불과 5분 거리이지만 아침마다 차조심하라고, 낯선 사람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 숨어있다. 아이들이 낯선 사람을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정말 올 수 없을까?

나의 결론이 우울해 한참 동안 이 생각에 매달렸다. 갑자기 머릿속 전구 하나에 '탁' 하고 불이 켜졌다. 단지 낯설 뿐인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작년에 넷플릭스로 본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이 생각났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상큼한 남녀 주인공, 특히 남자 주인공을 보며 올라간 입꼬리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었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내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좋알람'이라는 어플이 개발되면서 그로 인해 벌어지갈등과 사랑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와 반대로 나를 해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까이 오면 알람이 울리는 어플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런 어플이 나온다면 단지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약자들이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다려 보자. 세상을 구할 영웅이 나올 때가 되었다.



*대문사진, 본문 사진 출처 :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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