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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Oct 31. 2022

단풍잎을 보며 떠오른 쌍코피 사건


토요일 오전 6시, 어렵게 남편과 막내를 깨워 집을 나섰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깜깜한 거리를 달려 서울역에 도착했다. 남편은 막내와 나를 내려주고 돌아갔다. 언니를 만났다. 서울역에는 나와 같은 목적으로 새벽부터 집을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노란색 깃발을 들고 있는 여행사 직원을 만났다. 우리가 탈 열차 좌석과 정읍역에 내려서 탈 버스를 안내받고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샀다. 기차에 올랐다. 우리가 탄 열차는 단풍놀이 시즌을 맞아 특별 편성된 관광 열차이다.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우리는 단풍이 예쁘게 물든 내장산으로 갔다.


9월 초에 지하철역에서 단풍열차 홍보 현수막을 보았다. 10월엔 언니랑 단풍구경 가야겠다! 바로 예약을 했다.(언니가 예약하고 돈도 내줌) 내장산까지의 기차와 버스가 제공되고 내장산에서 몇 시간 자유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올 때 전통시장 한 곳을 들러 다시 올 때의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우리가 탄 기차는 단풍여행객들을 위한 특별열차였다. 이 열차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곳으로 간다는 뜻이다. 정읍역에 내려 버스에 탔다. 관광버스가 스무 대 정도 됐다.


내장산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쯤이었다. 산 입구에서 더덕 파전과 산채비빔밥에 막걸리를 먹었다. 길가에 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단풍을 바라보며 먹는 막걸리 맛이 달았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언니의 얼굴이 막걸리 한잔에 단풍잎이 됐다. 우리 뒤쪽에 앉아 밥을 먹던 사람들이 가고 나서 이 사람들 갔냐며 식당 이모가 허둥지둥했다. 계산을 하지 않고 가버린 것이었다. 손님이 계속 들어오니 잡으러 갈 수도 없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웠다. 좋은 거 보러 와서 나쁜 짓 하면 몸에 독 됩니다!


내장산 위쪽은 아직 단풍 절정이 오지 않았지만 아래쪽은 울긋불긋 예뻤다. 1시간 정도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내장산 아래쪽 길가 단풍나무

케이블카에 타기 위한 줄이 길었다. 걸어 올라가긴 힘들 것 같고 산 아래서만 놀다 가면 아쉬울 것 같아 한 시간 정도 기다려 케이블카를 탔다. 위에는 별로 볼 것이 없어 다시 줄을 서서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내려왔다.

케이블카에서 찍은 내장산 단풍
케이블카 탑승 기다리며 위쪽에서 찍은 사진

아이들은 항상 재미거리를 찾는다. 딸이 재미있게 생긴 돌을 찾아 물에  던져보기도 하고 예쁜 단풍잎을 주워 내 머리에 꽂아주기도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바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아이는 보고 있었다. 단풍 보러 왔다고 단풍만 보지 말고 내장산 돌도 보고 물도 보자!

다리가 아파 심술 난 막내딸

빨간 단풍나무 아래 언니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단풍처럼 빨간 오래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일이다. 우리 집에는 낡은 철제 책상이 하나 있었다. 언니가 책상 앞에 누워 자고 있었다. 밖에서 놀던 난 그 책상 서랍에 넣어둔 무언가를 찾아 다시 나갈 생각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서랍 안쪽을 보기 위해 서랍을 잡아당겼다. 무게를 못 이긴 서랍이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는 잠든 언니의 얼굴이 있었다. 울며 몸을 비트는 언니의 양쪽 콧구멍에서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내렸다.


"엄마~~~"

안방으로 뛰어간 나는 딱 그 말만 하고는 얼음이 되어 버렸다. 내 표정을 본 부모님은 잠깐의 정적 후 우리 방으로 달려가셨다. 그다음은 기억이 안 난다. 언니한테 욕 좀 먹었겠지. 내가 사과는 했었던가? 언니~그때 미안했어.

막내딸의 손을 잡고 앞서 걸어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뒤따라 걸었다. 우리가 어릴 때 엄마는 항상 바빴다. 늘 화가 나 있었다.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언니가 엄마 역할을 많이 해줬다. 고민에 생기면 언니한테 먼저 말했다. 스무 살 이후 술 먹고 취해 들어가면 엄마 몰래 나를 살펴줬다. 물론 우리도 여느 자매들처럼 많이 다퉜다. 방을 누가 치우네 안 치우네, 내 옷을 몰래 입었네 안 입었네 뭐 그런 일들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언니랑 친해진 것은 언니가 결혼한 이후였고, 더 친해진 것은 내가 결혼한 이후였다. 요즘 드는 생각은 언니가 있다는 것은 인생에 행운 하나가 더 있는 일인 것 같다. 모든 언니들이 다 우리 언니 같지는 않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오후 4시에 내장산에 올 때 탔던 버스에 다시 탔다. 1914년에 문을 열었다는 전통시장에 내려줬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6시에 다시 모이라고 했다. 내가 상상했던 시장은 각종 신기한 먹거리가 넘쳐나고 사람들이 붐비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이 시장 안은 휑했다. 생선가게, 과일가게, 정육점 등이 있었고 식당은 팥죽과 팥칼국수를 파는 식당 몇 군데와 순댓국집이 전부였다. 다른 걸 먹고 싶어 시장 밖을 돌아다녔는데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헤매다가 팥칼국수라도 먹으려고 다시 시장에 갔는데 자리가 없거나 재료가 없다고 했다. 시장 입구에서 찐빵을 사서 근처 공원에서 먹었다. 지역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취지였던 것 같은데 사람들을 모집해 놓고 제대로 준비를 안 한 것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있는 둘째 딸로부터 카톡이 왔다.

-엄마, 장기산 갔다며? 재밌게 놀다 와요~

딸아, 장기 아니고 내장, 내장산 이란다. 내가 니 덕분에 웃는다. 하하하


7시쯤에 서울행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경. 막내딸이 기차에서 잠들어 집까지 어찌 가나 걱정했는데 남편이 마중 나와 주어 편하게 집으로 왔다. 언니와 즐거운 시간을 만들려고 계획한 여행인데 고생만 시킨 것 같다. 내장산은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엔 무리인 것 같다. 다음부터는 가까운 곳으로 다녀야겠다. 기차를 오래 탔더니 삭신이 쑤신다.

세 줄 요약 :  
1. 내장산 단풍 절정시기는 11월 초이다.
2. 내장산은 서울에서 하루 코스로 다녀오기에는 벅차다.
3. 자매는 평생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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