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Dec 15. 2022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저녁 늦은 시간, 좀처럼 울리지 않는 내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하이 프랜~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나 너네 동네 왔는데 잠깐 나올 수 있어?

-아 진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왔지.

-우리 지난번에 만났던 카페 가있어. 바로 나갈게.


나가면서 내심 걱정을 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무슨 일 있는 건가? 친구가 기다리는 카페에 들어서니 걱정과 달리 밝은 얼굴을 한 친구가 앉아 있었다.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지?

-아무 일 없긴~아주 큰 일 났다.

-왜? 무슨 일이야?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 오늘 너 태어난 날이잖아.

-어? 오늘 내 생일이었어?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달력을 보니 음력으로 내 생일이다. 늘 음력으로 생일을 하던 나는 작년부터 가족들에게 음력 날짜 따지기 귀찮다고 양력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나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친구가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작고 반짝이는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친구는 종로에서 금세공과 도매상을 하고 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없을 텐데 내 생일을 기억하고 찾아와 준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친구야, 정말 고마워. 나 눈물 날 거 같아.

-눈물은 넣어두고 귀걸이나 빨리 해봐. 이거 요즘 주문 제일 많은 건데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바로 귀에 달아보았다.

-이거 완전 내 스타일이야. 나 이쁘지? 하하하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친구는 나랑 한 번도 같은 학교를 다녔거나 직장, 사는 동네가 겹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 다녔던 의류회사 입사동기 A 덕분이었다. 음주가무를 즐겼던 A와 나는 날마다 퇴근 후에 술을 마시고 휴일에도 어울려 놀며 절친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친구들, A의 친구들과도 함께 어울려 놀았다.


A의 친구 중 한 명이 성격도 좋고 노래를 엄~청 잘 불렀다. 오디션에 나가보라고 했지만 가수가 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나는 이 친구의 노래와 호탕한 성격에 반했다. A와 이 친구, 나 셋이서 자주 만났다. 그러다가 A가 먼저 결혼을 하자 A를 제외한 우리 둘이 자주 어울리게 됐다.


우리 둘은 결혼과 출산시기가 겹치면서 더욱 끈끈해졌다. 친구가 먼저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고 나도 이듬해에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다. 한 시간 내의 거리에 살아서 아들이 어릴 때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친구네 집만 가면 그렇게 친정에 간 것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점심 먹으러 가서는 맥주 한두병 마시고 늘어지게 자다가 친구가 해주는 저녁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이들이 커가고 서로의 일들이 바빠지며 일 년에 두세 번도 보기 힘든 사이가 됐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친구 생각이 났다. '나중에 친구 만나면 일러야지' 그런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아놨다. 그런데 막상 친구랑 얘기하다 보면 별일 아닌 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친구의 친구였던 이 친구와 친구가 된 지 삼십여 년이 지났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비슷한 게 별로 없다.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많이 달라서 여행이나 취미생활을 함께 하지 못했다. 삼십여 년을 만나면서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뿐이었다. 친구가 힘들 때 내 일처럼 아파하고 친구가 괜찮아지길 곁에서 기다렸다. 내가 속상할 때 친구가 내 얘기를 듣고 더 속상해하며 공감해 줬다. 우리는 그거면 충분했다.



*써니의 추천곡 : <친구라는 건> 박효신&김범수

https://youtu.be/tiYsDVKm9vw




매거진의 이전글 단풍잎을 보며 떠오른 쌍코피 사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