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서 상추, 쌈장과 함께 식탁에 올렸다. 숙주와 팽이버섯을 넣고 라면을 끓였다. 나는 몸 좋아지려고 단식하면서 애들한테 라면 주기 미안해서 채소를 넣었다. 아들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10시에 들어왔다. 아까 했던 음식을 똑같이 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먹고 싶지 않았다. 배고픔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 음식을 참고 있다면 이렇게 평온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 전에 작년에 읽었던 '독소를 비우는 몸(제이슨 펑, 지미 무어 지음/ 라이팅하우스)'을 한번 더 읽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단식의 장점으로 체중과 체지방 감소 외에도 알츠하이머병 예방,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인슐린 민감성 향상, 염증 감소, 수명 연장, 노화가 늦춰진다는 것 등이 있다. 내가 가장 얻고 싶은 효과가 노화 지연이다.
단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도 되지만 예외인 사람들도 있다.
<단식하면 안 되는 사람들>
심한 영양실조 또는 저체중인 사람들
18세 미만의 어린이
임산부 / 모유수유 중인 여성
이 외에 통풍, 당뇨병, 위식도 역류성 질환이 있거나 섭취 중인 약물이 있는 경우는 의사의 조언을 구한 뒤 단식을 해야 한다.
단식 3일 차(금요일)
어젯밤에는 잠을 잘 잤다. 낮에 달리기를 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일어나자마자 체중을 재 보니 어제보다 1kg이 더 줄어 있다. 체중은 대부분 수분의 무게가 빠진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기분은 좋다. 케톤 측정기를 불어보니 0.05가 나온다. 케톤 측정기는 몸이 탄수화물을 다 쓰고 난 뒤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기이다. 일반식을 할 때는 수치가 0이고 저탄 고지 식사를 하거나 단식을 할 때 0 이상의 숫자가 나온다. (입김을 불거나, 당뇨 측정기처럼 살짝 피를 묻히거나, 소변을 채취하는 등 몇 가지 종류의 측정기가 있고 기기에 따라 알려주는 수치 형태가 다르다)
독소를 비우는 몸 56~57페이지. 단식을 하면 우리 몸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식을 할 때는 물을 잘 챙겨마셔야 한다. 맹물이 힘들면 레몬즙을 살짝 떨어트려 마셔도 좋다. 나는 단식 이틀째부터 생수가 달게 느껴졌다. 허기를 너무 참기 힘들 때는 첨가물이 안 들어간 사골 육수, 불린 치아시드 혹은 버터나 코코넛 오일 같은 지방류를 약간 먹으면 허기가 달래 진다. 나는 허기가 심하지 않아서 물과 소금 그리고 연한 커피만 마셨다.
단식을 할 때 허기지고 기운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날 정도라면 단식을 중단해야 한다.
점심시간에 1시간 동안 산책을 했다. 조금 힘들었지만 심호흡을 하고 빨리 걸었다. 오후에는 사무실에 한가로이 앉아있다 보니 몸이 좀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식을 중단하고 뭐라도 먹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내가 글쓰기 수업 시간에 써서 낸 글 중 하나가 <월간 작은 책>에 실린다는 연락이었다.와~갑자기 피로가 사라지고 기운이 펄펄 난다. 기운이 없는 건 기분 탓이었어. 하하하
저녁에 돼지고기 볶음을 하면서 간을 본다고 양념을 찍어 먹었다. 고기도 하나 집어먹고 싶었다. 밥을 푸면서 주걱에 붙은 밥풀을 떼내어 먹을 뻔했다. 습관이 무섭다.
단식 마무리 날(토요일)
어젯밤도 잘 잤다. 6시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8시에 이온음료 한 병을 들고 집을 나섰다. 불광천까지 30분 걸어가 5km를 달리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10시였다.
화요일 저녁 8시 이후부터 시작해서 토요일 오전 8시까지(이온음료를 마신 시점에 단식 종료라고 봄)총 84시간 단식을 했다. 체중은 2.7kg이 빠졌고 케톤 수치는 0.11이다. 몸 상태는 단식을 계속 지속해도 될 정도로 정신이 또렷하고 배가 고프지 않다.
케톤 측정기 / 입김을 불어서 사용
11시에단식 후 첫 식사로 소고기 스테이크를 즐겼다. 맛있다. 그런데 씹는 게 힘들다. 많이 먹지 못했다. 몸을 정화하는 목적으로 단식을 하는 분들이 단식 후 첫 식사로 죽을 추천 하는데 죽에 들어가는 쌀이 정제 탄수화물이라 내 단식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다. 나는 단식을 통해서 살을 빼는 것보다는 탄수화물 중독을 멈추는 효과를 보고자한다. 단식을 하고 나면 한동안은 깨끗하게 비워진 내 몸에 좋은 음식을 채워 넣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87시간 만의 식사
건강을 위한 달리기와 맹수에 쫓겨 달리는 것이 다르듯 단식과 굶주림은 다르다. 단식을 시작할 때는 단식에 대해 확실히 인지하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굶주림을 참는다는 생각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힘들면 쉬라고 말한다. 나는 음식을 쉬는 것이 곧 내 몸을 쉬게 하는 것이고,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들지 않다. 내게 단식은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