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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람 Nov 24. 2022

남편이 분리불안이라고요?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며 라디오를 켰다. 청취자가 보낸 사연을 상담해 주고 있었다.

-저는 혼자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뭐든지 함께 하려고 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이런 걸 '사랑의 분리불안'이라고 하죠.

듣다 보니 이 사연, 우리 부부랑 비슷하다.

그런데 분리불안? 아기들이 엄마랑 떨어지기 힘들어 겪는 그거?

분리불안이란?
아동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세로서 최초 어머니상(primary mother-figure)의 상실에 대한 위협을 받았을 때 경험하는 공포증. 이러한 공포증은 성장함에 따라 치료되거나 완화되는데 때로는 생활무대(환경)의 변화나 위기 또는 스트레스가 있을 때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다음 백과/사회복지용어사전)


몇 주 전 일요일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해놓고 아홉 시 삼십 분에 집을 나왔다. 열 시부터 열두 시까지 노랑꿈터 아기들을 돌보고 열두 시 삼십 분에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브런치에 올라온 글과 책을 읽었다. 오후 세시쯤 불광천에 가서 달리기를 하고 두 시간 뒤에 돌아왔다. 내가 나갈 때 남편은 자고 있었는데 들어와 보니 아이들에게 새우와 고구마튀김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저녁은 안 해도 되겠구나 싶어 고마웠다. 튀김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하고 씻었다. 내일이 월요일이니 아이들을 일찍 자게 하고 거실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남편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밤 11시쯤이었다.


"자기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냐?"

자다 깬 남편이 나와서 큰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뭘?"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뭐 나쁜 짓 하고 있는 거야? 남들은 다 응원하는데 자기는 왜 그래?"

남편은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계속 글을 쓰고 있을 수 없어 컴퓨터를 끄고 방으로 들어가 남편 옆에 누웠다.


"왜 화가 난 거야? 내가 뭐 잘못했어?"

사실 알고 있었다. 나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봉사활동과 달리기를 하고, 내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딱히 표현은 안 했지만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난 더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데 그렇게 보기가 싫어?"

"아냐. 자기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런데 난 불안한 게 우리 친척들 중에 이혼한 사람이 많잖아. 우리 부모님도 이혼했다가 다시 합쳤고. 자기가 밖으로만 도는 것 같아서 불안해."


우리는 첫 아이 출산과 동시에 각자의 과제에 매달렸다. 남편은 돈을 버는 일, 나는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느라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혼자 있기 싫어서 결혼을 했는데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싸움이 잦았다거나 결혼생활이 힘들었던 건 아니다.


남편은 항상 바빴다. 프로그램 개발자인 그는 늘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을 하거나 세미나에 참석했다. 개발자에서 머물지 않고 항상 공부하고 성장하려 노력했다. 최근 몇 년간 기술 관련 서적을 두권 출간했다. 지금은 남편의 명함에 CEO라 적혀있다. 남편은 더 바빠졌고 주말에는 일을 하거나 골프를 치거나 잠을 잔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화가 났다. 남편도, 나도 열심히 과제를 하고 있는데 늘 제자리걸음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이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혼자라서 못했고,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못했던 일들을 하고 싶었다. 나는 주말이면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술 마시던 예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남편이 나를 응원해 주길 바랐지만 남편은 달라지려는 나를 불안해하고 있었다. 




언젠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가 몇 가지 있다고 한다. 남편이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는 함께 있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언어는 배려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다. 나는 남편이 사랑한다고 열 번 말해주는 것보다 설거지 한번 해줄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 남편은 옆에서 만져주고 웃어줘야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걱정 마. 내가 나가서 누굴 만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혼자 돌아다니는 건데 이것도 기운 달리면 못해. 자기가 그렇게 불안하면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보자."

"그래. 골프는 싫다고 했지?"

골프가 싫은 게 아니라 골프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엄마 골프 쳐야 한다고 애들 학원 그만 다니라고 할래?


"골프 말고 달리기 어때?"

"나 심장 터져 죽는다. 다음에 같이 가서 사진은 찍어줄게. 대신 자기 하는 거 봐서."

웃으면서 남편을 안아줬다.


"아까 자기가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한 거 말이야. 사실은 너무 안 한 거 아니냐고 화낸 거 아냐? 자, 뽀뽀~"

마흔아홉 살 큰 아들 분리불안 증상에는 뽀뽀가 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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