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아람 Feb 10. 2023

이것은 단순한 줄넘기 이야기가 아니다


-또 그 얘기야? 그만 좀 해라. 좀 지겹다.

남편이 내 입을 막으려 했다. 나는 이 얘기를 남편은 물론 첫째에게도 했고 둘째에게도 했고, 지금은 막내에게 하고 있다. 남편은 지겨워하지만 난 해도 해도 신나는 이야기다. 막내딸의 알림장에 '줄넘기 연습하기'라 적힌 걸 보았으니, 오늘이 딱 이 얘기를 해 줄 타이밍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체육시간에 선생님께서 줄넘기 시험을 본다고 하셨다. 종목은 두 번 넘기, 일명 쌩쌩이 열개하기였다. 친구들은 못해도 한두 개씩은 쌩쌩이를 했다. 우리 반에서 나만 단 한 개도 못했다. 체육시간 한 시간 내내 연습했는데 한 번을 못 넘었다. 될 듯 말 듯 나를 약 올리는 쌩쌩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싶었다. 점심시간에도, 수업이 끝나고도 줄을 잡고 늘어졌다.


어느 순간 한 개 두 개 쌩쌩이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힘들이지 않고 오래 쌩쌩이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시험은 만점을 받았고, 얼마 후에 우리 반에서 쌩쌩이를 가장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학교에서 줄넘기 대회가 열렸다. 나는 우리 반 대표로 나가 전교 2등을 했다. 그 후로도 나는 항상 2등이었다. 1등을 하는 그 아이는 너무나 가벼운 동작으로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게 줄을 넘었다. 그 아이를 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6학년 초에 방송국에서 학교 촬영을 왔다. 일요일 아침마다 하는 어린이 프로였는데, 학교를 소개하고 학생들의 장기자랑 같은 것도 했다. 우리 학교는 쌩쌩이 대회를 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떨렸다. 아무 생각 없이 줄을 넘었다. 늘 1등을 하던 아이와 나만 남았다. 계속 아무 생각 없이 줄을 넘었다. 갑자기 주위가 시끄러워져 보니, 그 아이는 멈춰 서 있었다. 내가 그 아이를 이기다니... 그저 얼떨떨했다. 사회자 개그맨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챔피언 메달을 걸어 주었다.


그 후에 열린 대회에서 나는 또 2등을 했다. 방송국에서 촬영을 했던 날도 나는 그 아이를 꺾은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운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었다.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항상 그 아이가 함께 떠오른다. 흔들림 없이 줄을 넘던 그 아이의 경이로운 모습, 그리고 넓은 운동장에서 날마다 쌩쌩이를 연습했던 나. 그 아이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난 그저 감탄했다. 마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같은 느낌이랄까.




-엄마 하는 거 잘 봐.

막내딸이 쌩쌩이 하는 모습을 보다가 답답해진 내가 시범을 보이기로 했다.

-팔이 아니라 손목을 돌려야 해. 그리고 무릎을 높게 올리면 힘들어서 오래 못 해. 최대한 가볍게 이렇게~

어라~ 한 번을 못 넘기고 걸리고 말았다. 다시 시도했는데 또 걸렸다.

-엄마, 쌩쌩이 잘하는 거 맞아?

딸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마음은 때처럼 될 것 같은데 이게 왜 안되지? 해내야만 해!

-아, 줄이 꼬여서 그래. 잘 봐, 한다.

한번 넘기를 몇 번 뛰다가 쌩쌩이로 넘어갔다. 된다! 역시 몸으로 익힌 건 사라지는 게 아니었어. 신나서 서너  더 넘다가 '헉-'하고 주저앉았다.

-엄마 다리에... 쥐 났어. 아... 어트케.... 윽...

-냐~아~옹. 야~옹. 괜찮아?

나의 자랑이었던 쌩쌩이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안 괜찮단 말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